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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광철의 전망차

이화에 월백하고

by 형과니 2023. 5. 25.

이화에 월백하고

인천의문화/오광철의전망차

2009-04-28 11:26:59


이화에 월백하고

樂天敢比楊妃色(낙천감비양비색) 太白詩稱白雪香(태백시칭백설향) 別有風流微妙處(별유풍류미묘처) 淡煙疎月夜中央(담연소월야중앙)-조선 선조때 여류시인 이옥봉의 ‘詠梨花’(배꽃을 노래함)이다. 풀이하면 이러하다. “백낙청은 양귀비에 비교했고/이태백은 시에서 백설향이라 했다/풍류객은 멋대로 별스럽게 읊었으니/한밤중 달빛 아래 자욱한 꽃 보았음이라”

어찌 그이는 이국의 백낙천과 이태백은 알았으되 고려 시인 이조년을 몰랐을까. 참으로 기막힌 그의 시조 한수를 놓쳤으니 말이다.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랴만은/다정도 병인양 하여 잠못들어 하노라”-배꽃 하얗게 핀 고고한 밤중 때마침 달빛 받아 더욱 하얗고 두견새 울음에 깨어 다시 잠못드는 시인의 심정이 느껴지지 않는가.

배꽃은 잎과 더불어 백설 같이 흰꽃이 모여서 핀다. 이같은 배꽃을 옛사람들은 좋아했다. 하얗게 꽃잎이 비내리듯 내리는 달밝은 봄밤을 이화우(梨花雨)라고 했거니와, 중종때 여류시인 매창(梅窓)도 노래했다. “이화우 흩내릴 때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옛날 당나라 현종은 가곡에 능하여 배밭에서 제자 300명을 모아 가르쳤는데, 이를 ‘배밭의 형제들’(梨園子弟)이라 했다. 배밭은 여러가지를 상징한다. BC 1053년 소강석(召康奭)은 배나무 아래에서 정의의 도를 베풀어 배나무가 현명과 선정의 상징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정의의 상징이기도 하다. 효종의 북벌계획때 훈련대장을 지낸 이완(李浣)이 죽은 후 집을 빼앗기자 그가 심은 배나무에 열매가 맺지 않았다. 그러나 후손이 억울함을 소송하여 집을 되찾으니 열매가 다시 맺혔다고 한다.

예전 인천 근교에는 배나무밭이 많았다. 제물포 역전에서 숭의초등학교에 이르는 언저리와 용현동 군부대터 언덕 일대였다. 그러던 것이 시가의 확산으로 지금은 구월·수산·도림동 인근에서 명맥을 잇는다. 그곳 산등성이 골짜기의 도로들은 이를테면 과수원길이다.

그곳에서 지난 일요일 남동배꽃축제가 있었다고 한다. 때마침 봄비를 촉촉히 맞은 청아한 모습으로, 또한 순결을 상징하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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