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관극장, 국내 최초의 극장
仁川愛/인천-원조&최초&최고인것들
2006-12-26 01:15:51
애관극장, 국내 최초의 극장
110년 역사의 풍상 속에서도 꿋꿋이 / 김준기 영화평론가
1895년에 세워진 국내 최초의 극장인 애관극장
인천광역시 중구 경동 238번지, 이곳은 국내 최초의 극장 애관극장이 위치한 곳이다. 인천의 애관극장은 110년의 역사를 지닌 국내 최초의 극장이다. 애관극장은 1895년 을미개혁이 단행되던 시점에 인천 경동 네거리에 협률사(協律舍)라는 이름으로 개관했다. 1902년 황실에 의해 서울 정동에 세워진 협률사(協律社)보다 무려 7년이나 앞선 극장이며, 1907년에 개관한 종로의 단성사보다 무려 12년이나 앞선 것이다. 다만, 협률사에 관한 정사(正史)가 존재하지 않고 인천의 시사(市史)에만 자료가 남아있어 공식적인 기록으로 올라가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1895년 협률사(協律舍)는 부산 출신의 인천 갑부 정치국에 의해 단층 창고 형태로 세워졌는데, 당시에는 <흥부놀부전>과 같은 인형극에서부터 신파극이나 창극, 남사당패들의 땅재주 등 각종 공연물들이 공연되었다.
1905년 인천 중구 사동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회전무대가 설치된 공연장 가무기좌(歌舞技座)가 세워졌다. 주로 일본 신·구극을 공연하면서, 가끔씩 마술 같은 흥행물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 공연장은 1930년에 화재로 사라졌다.
그리고 1909년 지금의 신포동 외환은행 자리에 표관(瓢觀)이란 극장이 개관하였다. 당시 표관은 주로 일본영화와 뉴스를 상영했는데, 객석은 약 800석 규모로 대형 공연장인 셈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당시의 좌석은 남좌여우(男左女右)로, 남자는 왼편 줄에, 여자는 오른편 줄에 앉도록 엄중하게 구분하였다는 것이다. 해방 후 문화관(文化觀)으로 개칭되었으며 인천시에서 운영하다가 한국전쟁 중 화재로 소실되었다.
한편, 협률사는 잠시 개항장 인천의 이미지를 따서 축항사(築港舍)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가 1920년대부터 애관(愛觀)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이미 예상했겠지만, 애관이라 함은 곧 ‘보는 것을 사랑한다’라는, 매혹적인 이름인 것이다.
이름이 변화하면서 건물형태도 뒤바뀌게 된다. 초창기 단층 창고 형태에서, 왼쪽의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2층 벽돌 구조물로 변화한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애관극장은 한국전쟁 중에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960년 9월에 재건축되었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애관극장(愛觀劇場)이라는 이름은 1960년 9월 재개관 때부터 사용된 것이다. 좌석규모는 약 400석이었는데, 영화와 악극을 함께 보여주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당시 이미자, 나훈아 리사이틀이 있는 날이면 몰려드는 인천 관람객들로 인해 사고도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또한, 애관극장이 위치한 인천 경동거리는 그야말로 '시네마천국'이었다. 오성극장, 피카디리극장, 명보극장, 중앙극장 등 인천의 주요 극장들이 모두 이곳에 위치했고, 인근에는 제물포고와 인화여고가 있어 학생들이 주요 고객들이기도 했다. 특히 <무영의 악마>(인천건설영화사), <복지강화>(합동영화사), <날개 없는 천사>(국보영화사) 같은 영화는 이곳에서 직접 제작, 배급되기도 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애관극장의 열기는 차츰 사그라지기 시작한다. 현재 극장 운영주인 탁경란 사장은 1960년 애관극장을 재건한 이봉열씨에게서 1972년 극장을 인수한 탁상덕씨(91년 별세)의 막내딸이다. 아버지의 별세 후 애관극장이 점점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외환 위기 때 부도를 맞자 미국에서 들어와 경매로 이 극장을 재인수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1999년 11월 18일 화려하고 세련된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대명사 CGV인천14(약 4000석 규모)의 개관으로 경동거리에 있던 애관극장, 씨네팝극장, 피카디리극장, 미림극장 등 기존 극장들은 시설 개보수라는 맞불카드로 맞섰다. 그러나 멀티플렉스 영화관으로의 관객이탈은 막을 수 없는 대세였다. 그리고 중심가 상권 역시 남동구 쪽으로 옮겨가는 터라 예전의 부흥을 다시 기대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현재의 애관극장
이후 애관극장은 2004년 1월, 5개관 860석 규모의 멀티플렉스 영화관으로 재개관했다. 애관극장의 탁경란 사장도 멀티플렉스라는 시대적 흐름을 벗어날 수는 없었을 터이다.
현재 경동거리에는 애관극장만 유일하게 남아있다. 110년 역사의 풍상 속에서도 지금까지 꿋꿋하게 버텨준 것은 (국내 최초의 극장인,) 아버지의 가업을 다시금 일구어내고픈 탁경란 사장의 의지이다. 또한, 지역상권의 발전을 위해서도 동네 상인들은 애관극장이 다시 일어서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것은 국내 최초의 극장에 보내는 응원이다.
110년 역사를 지닌 국내 최초의 극장. 아직은 비공식적인 기록으로 남아있지만, 애관극장은 우리의 극장사에서 반드시 다시 되돌아봐야 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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