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빈슨 할머니
인천의문화/오광철의전망차
2009-06-15 16:26:31
라빈슨 할머니
성경에 간질병 환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예수께 환자의 아버지가 아들을 고쳐달라고 데려와 치유해주는 장면이다. 귀신이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파리해진다는 것이었다. 간질이라는 표현은 없으나 증상으로 보아 간질환자인 것이 분명하다. 옛날 유대인들은 병을 귀신의 소행으로 생각했었다.
간질의 증상은 환자가 아무데서나 갑자기 의식을 잃고 입에 거품을 물며 전신에 경련을 일으키는 것으로 되어 있다. 유전성이라고도 하고 급성전염병이나 뇌손상으로 나타난다고 하는데, 발작이 있을 때 주위 사람은 당황하지 말고 호흡장애 등이 없도록 해주어야 한다. 근래 의술의 발달로 난치병들이 그렇듯 간질도 불치병이 아니며 유전성도 아니며 병의 정체를 규명하고 있다고도 한다.
이 간질병 퇴치사업을 위해 노년기를 몸바쳐 헌신한 미국인 선교사 할머니가 있다. 인천에서 간질병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장미회를 구성하여 환자를 돌본 라빈슨 선교사이다. 1963년 그는 당시 59세의 나이로 내한, 30년을 환자들을 치료하고 관리하여 그들에게 ‘간질병자의 어머니’라는 칭호를 받았다. 그 역시 생의 보람을 키워준 한국이 ‘제2의 고향’이라고 하면서 노연복이라는 한국이름을 가졌다.
1994년 90세의 노구로 미국에 돌아간 그는 올해 2월20일 향년 106세로 타계했다. 그리고 한국땅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에 따라 유해 일부가 파주시 기독교공원묘지에 안치되었다. 그는 장미회를 지원하는 일 말고도 고아 50여명을 돌보았다. 이로써 우리 정부는 국민훈장 목련장을 수여한 바 있다.
1960년대이던가. 어느 여름 전망차자는 일시 귀국하는 그를 인터뷰한 바 있다. 동구 창영동 선교사숙소에서였다. 태풍이 우리나라를 엄습하고 있을 때였는데 공교롭게도 태풍 이름이 그의 이름과 같았었다. “라빈슨이 가니까 또다른 라빈슨이 옵니다만 순하게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조크했었다. 신문에 실린 고인의 사진을 보니 밝고 쾌활했던 특유의 웃음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는 갔지만 그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오래도록 살아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