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양산의 소중함을 일깨워준 ‘롯데’
仁川愛/인천이야기
2009-06-25 15:41:52
계양산의 소중함을 일깨워준 ‘롯데’
노현기 계양산 골프장 저지 인천시민위 사무처장
작년 6월 비오는 날 밤이었다. 새봄교회 이진권 목사와 박병상 박사, ‘계양산 친구들’ 몇 명과 계양산 목상동 초지를 찾았다. 땅속 어딘가에서 굴을 파고 잠을 자다가 장마철 비오는 날 느릿느릿 기어나와 짝짓기를 하는 맹꽁이 울음소리를 듣기 위해서였다. 약 16만5천㎡ 넓은 초지, 그곳은 나무를 일부러 뽑아 초지가 된 곳이다. 그래서 훼손부지라고 부르는데 이는 적절치 않은 것 같다. 숲에서 바로 연결된 초지는 생태조건이 풍부해졌고,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종인 맹꽁이는 그 일대에 넓게 퍼졌다. 어쨌든 우리 일행은 목상동 쪽 골프장 예정부지 한가운데 있는 작은 웅덩이 앞에 섰다. 그리고 조용히 숨소리까지 낮춰 주변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비 내리는 밤중에 계양산 산줄기들은 마치 수묵화를 연상케 한다. 먹물에 진한 농담을 줘서 어둡게 그려낸 듯한 풍경, 그리고 산너머에는 도시의 불빛이 아련히 비추기도 한다. 그곳에서 우리는 거대한 공연장에서 들려오는 오케스트라 연주를 들을 수 있었다. 청개구리가 멀리서 울기 시작하면 주변 개구리들이 따라 운다. 멀리서 들리던 청개구리 소리에 돌림노래처럼 더 많은 개구리들이 노래를 따라하고 그 소리는 점점 가까워 온다. 그렇게 청개구리가 울기 시작하면 삑익삑익하는 새들과 맹꽁이도 따라 운다. 서로 다른 음색을 가진 가수들이 합창을 하는 것처럼. 그러다가 ‘시끄러~’하고 인기척을 내면 내 주변부터 노래를 멈추기 시작해 일순간 산이 고요에 빠진다. 우리는 7월 말까지 비오는 날 밤마다 그 오케스트라를 감상할 수 있었다.
최근 애반딧불이와 파파리반딧불이가 나오는 계절이라 다시 계양산으로 밤소풍을 몇 번 갔다. 한번은 자정이 다 됐는데 마을사람들 조성혜 대표가 “야 번쩍번쩍 거리면서 나는 게 있어!”라고 말했다. 거의 2~3초에 한 번씩 점을 찍듯이 빛을 내며 나는 파파리반딧불이 수컷이었다. 며칠 뒤 해가 뉘엿뉘엿할 때 산을 넘어 다남동쪽으로 산행을 했다. 그리고 일전에 파파리반딧불이를 봤던 그곳에 진을 치고 앉았다. 부엉이와 소쩍새가 울고, 뻐꾸기도 한창 뻐꾹거리고 있다. 그날 롯데 신격호 회장에게 감사의 편지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계양산에 골프장을 짓겠다고 나서지 않았다면 비오는 날 한밤중에 산속에서 연주되는 오케스트라와 하늘에 그려진 거대한 수묵화를 감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 가을밤 산능성이까지 보석처럼 점점이 박힌 늦반딧불이가 마치 패션쇼라도 하듯 교대로 무대 한가운데로 나는 황홀한 풍경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솔숲 향기와 바람 소리도 알지 못했을 것이며, 솔숲으로 밀려드는 아침 햇살과 오색딱따구리 향연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신격호 회장 덕분에 하느재에서 비친 넓은 하늘에 노랗고 붉은 낙엽이 활짝 퍼지는 멋진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첨단장비를 갖고도 한나절 뒤 비가 오는 것을 알기 힘든 인간에 비해 비오기 전날이면 어김없이 집을 수리하고, 이사 가는 개미들을 보면서 정말 미물은 저 작은 생명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만든 것도 신 회장이 추진하는 계양산 골프장 덕분이다. 무엇보다 늘 그 자리에 있기에 잊고 있었던 계양산의 소중함을 가슴 절절히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지난 21일 계양산을 사랑하는 이들이 모여 계양산 골프장을 저지하기 위한 축제한마당을 했다. 인천지역에서 단일사안을 두고 1090일을 싸웠던 것도 드문 일이고, 계양산 하나를 지키기 위해 1천명 가까운 인원이 모이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무엇보다 참석한 이들 모두가 직접 현수막과 피켓을 만드는 등 각자 무언가 준비를 해왔다. 어떤 어린이들은 가면에 글씨와 그림을 그려서 왔고, 어느 마을모임의 어린이들은 계양산의 생명을 노란천에 그려서 들고 왔다.
다음날 계양산 인근 식당 주인들이 “어제 굉장했다면서요?” “계양산 골프장 정말 막아야 해요” “손님들은 골프장 찬성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던데 왜 골프장을 지으려는 거야”라고 한마디씩 했다.
신격호 회장님, 계양산이 얼마나 소중한지 느끼게 해줘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이제 정말로 ‘사랑한다 계양산’을 외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계양산을 지켜내야 한다는 시민들의 염원도 당신 덕분에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인천시민들은 계양산 골프장을 꼭 막아낼 것입니다.
인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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