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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이야기

제물포항서 출발한 멕세코 이민 그후100년 - 3.멕시코속의 한인들

by 형과니 2023. 3. 14.

제물포항서 출발한 멕세코 이민 그후100년 - 3.멕시코속의 한인들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1-27 00:33:47


순수 한국인 혈통 10%이하


제물포항서 출발한 멕세코 이민 그후100년  - 3.멕시코속의 한인들
                
 3만명으로 추산되는 한인후손들 가운데 2005년 현재 한국 국적 보유자는 사실상 한 명도 없다고 볼 수 있다.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본국과 완전히 단절된 채 100년을 흘러온 세월이고 보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거꾸로 이제 후손들 가운데 3∼4세로 내려오면서 급격한 혼혈로 순수 한국인 혈통은 찾아볼 수 없고 ‘철저한 멕시코인’으로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목도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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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다 시내에서 차량으로 약 20분 정도 걸리는 노칵 에네켄 농장에는 한인 이민 1세 도창식씨의 자녀 10남매 가운데 3남매가 아직도 살고 있다. 물론 지금은 에네켄 재배를 하지 않고 있고, 폐허가 된 농장 주변에서 거주하며 막노농 등을 하면서 근근이 살고 있다.


거주지 인근에 초등학교는 있으나 중학교부터는 통학 버스를 이용하거나 시내 거주 친척 집에 머물러야 하기 때문에 자녀들의 학업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이들의 거주지는 마야 원주민 전통 가옥인 파하(Paja)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집 앞과 뒤에 문이 나있는 파하는 섭씨 40도를 넘는 메리다의 고온다습 지대에서 바람이 잘 통하게 지어진 가옥이다. 보통은 흙바닥으로 돼있는데 이를 두고 ‘토굴에서 비참하게’ 생활했다는 일부표현은 현지 생활조건을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잘못됐다고 볼 수 있다. 흙바닥으로 된 것은 그물침대인 아마카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파하는 현대적인 주거시설과 거리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우리의 초가집과 같은 형식의 농촌지역 거주형태라고 봐야 한다.


도씨 집안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첫 이민 정착지였던 메리다 일대 거주 5천여 후손들 상당수는 현재 이 지역 현지인들과 마찬가지로 농촌에서 농사일과 막노동을 하며 가난하게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계급 및 도농간 빈부차가 격심한 멕시코의 현실을 감안해야 하며, 메리다 농촌 지역 후손들의 현 모습을 전체 후손들의 모습으로 봐서도 안된다는 지적이다.


후손들 가운데 한국말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지만 한국 음식문화는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지금도 많은 후손들이 고추장, 된장, 콩나물, 만두, 미역국 등을 알고 있다. 밥 또한 멕시코 식이 아닌 한국식으로 지어 먹을 줄 안다. 서울올림픽은 후예들에게 혈연적 자긍심을 심어준 계기가 됐다.


또한 현재 멕시코 많은 후예들은 멕시코 주류사회에 기여하고 있다. 의사, 변호사, 교수, 기자, 고위관리, 회계사, 목사, 사업가 등 각종 전문분야에 진출해 활약중이다.

 

메리다 지역 한인후손 회장을 맡고 있는 한인 3세 울리세스 박(64)씨는 자동차 매연검사소를 운영하는 지역 유지다. 다비드 김 멕시코시티 후손회장은 공인회계사로 현재 멕시코 진출 한국 기업들의 회계 업무를 적극 돕고 있다.


이민 4세로 동양계 이민 여성이라는 약점을 극복하고 킨타나 로 주(州) 대법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리스벳 로이 송(51) 판사 역시 대표적 성공 사례. 각고의 노력 끝에 법학사 및 문학사 학위를 받은 그녀는 1982년 같은 주 법원 가정판사로 임용, 2000년 3월 마침내 주 대법원장이 됐다.


유카탄 마야 유적지를 상징하는 치첸잇사 관리소장을 맡고 있는 이민 3세대 라몬 리(47)씨 스토리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할아버지가 멕시코로 이민왔다고 말하는 그는 메리다 소재 대학에서 정부 장학금을 받으면서 경영학을 전공했으며 올해로 25년째 공무원으로 근속 중이다.


후손들 가운데 지방의회 의원으로 정계에 첫 진출한 제도혁명당(PRI) 소속 이민 4세대 노라 유 의원은 1세대 유진태의 증손녀로 ‘서유견문’을 쓴 유길준 집안 후손이라고 한다. 그녀의 지역구는 멕시코 북부 미국 접경지인 치와와 주(州) 후아레스시(市)다.


메리다에서 10년째 한인 후손들을 돕고 있는 조남환 목사는 “한국인 피의 순수성이 10% 이하라고 할지라도 자신들의 마음가짐이 한국인 후예라고 하면 후손들로 봐야 한다”면서 후손들에게 다문화적 민족정체성을 심어주는 한국 정부의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