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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사람들의 생각

배다리는 보존해야 한다

by 형과니 2023. 5. 29.

배다리는 보존해야 한다

仁川愛/인천이야기

2009-07-05 21:28:51

 

배다리는 보존해야 한다

이원규 소설가

 

배다리 관통도로 개설 문제로 시민들과 인천시 당국이 긴 시간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시당국은 송도경제자유구역과 청라경제자유구역을 직선으로 연결하기 위해 이 길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막무가내로 밀어붙였고, 시민모임은 이곳이 가진 문화 역사적 가치를 훼손할 수 없다 하여 두 팔을 벌려 막고 있는 것이다.

 

인천에서 배다리는 무엇인가. 인천 근대사와 인천인들의 생활사가 고스란히 묻어 있는 거리이다. 1883년의 피동적·수동적인 개항 이후 외세와 외지인이 북적거린 곳이 신포동·중앙동 쪽 워터프론트 거리라면, 배다리는 인천 원주민들이 살며 근대사의 영욕을 묵묵히 받아 안았던 거리였다.

 

최초의 근대교육 요람인 창영학교와 영화여학교, 여 선교사 숙소, 창영학교와 인천고 학생들의 3·1 만세시위 현장, 양키시장과 꿀꿀이죽 골목, 헌책방 골목. 수십 년 동안 개발에서 소외되어 온 탓에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그곳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인천인의 정신적 근원이다.

 

지난 달, 인천고교 동창생들과 대화 중에 배다리 관통도로 이야기가 나왔다. 배다리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그들은 한결같이 그곳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러면서 관통도로를 계획한 인천시 당국자가 외지인이 아니겠느냐는 말을 하는 친구도 있었다. 인천은 원주민이 10%밖에 안 되는 도시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말도 나왔다.

 

조상 대대로 400 년을 살아온, 마치 아메리칸 원주민과도 같은 인천 원주민인 필자는 괜히 억울한 느낌이 들기까지 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와 인천의 신생 시사비평지인 리뷰인천배다리가 배출한 인물들이라는 원고를 기고했다. 빛나는 밤 별빛 같은 인물들이 배다리에서 태어나고 성장하고 공부해서 각계를 대표하는 존재로 활동했다. 그것은 배다리의 영광이자 인천의 영광이었다.

 

가스통 바슐라르가 말했듯이 고향의 기억을 생생하게 하는 것은 추억이 담긴 거리이다. 필자의 동창생들 대화처럼 고향을 떠나 이방(異邦)이나 타향에 살 때, 문득 고향이 그리워지면 떠오르는 것은 가장 유명한 고층건물이 아니라 정들고 애환이 묻은 거리이다. 배다리는 인천정신의 중심이며 인천인들의 그리움의 본향이다. 워터프론트 쪽의 유서 깊은 건물들은 무수히 부서지고 옛 거리의 형질은 찾아볼 수가 없다. 이제 인천인의 생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은 배다리뿐이다. 그래서 더욱 보존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인천은 일제 강점기에는 식민지 수탈의 창구로, 한국전쟁 시기에는 비극과 영욕의 현장으로 떠올랐던 도시였다. 분단시대 북방의 항로가 막히면서 한 시기 움츠렸으나 산업개발에 몸을 맡겨 정신없이 긴 시간을 달려왔고 지금은 약동하는 몸짓으로 세계를 향해 뻗어나가고 있다. ‘행복하게 사는 도시’, ‘명품 같은 도시를 지향하고 있다.

 

행복한 도시와 명품 도시는 바다를 메워 신도시를 건설하고 구도심권을 부순다고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외국에서 도시설계를 전공하는 유학생들의 말에 의하면 한국을 걸핏하면 부수고 새로 짓는다 하여 컨스트럭션 스테이트라고 부른다고 한다. 구체적인 통계를 들이댈 수 없으나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판을 벌이고 부수고 새로 짓는 도시가 인천일 것 같다.

 

행복한 도시, 명품 도시는 신축 건물로 즐비한, 외화(外華)로 번쩍이는 찬란한 거리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따뜻한 숨결이 있고 넉넉한 여유가 있는 거리도 있는 도시이다. 국민소득 4~5만 달러가 되는 북유럽의 도시를 여행할 때 느끼는 것은 결코 외화로 번쩍이는 거리가 아니라 옛것과 새것이 공존하는 따뜻하고 넉넉한 분위기였다. 생각날 때마다 그 도시들이 부럽다. 땅값이 싼 덕으로 배다리는 근년에 문화예술 공간으로 부상해왔다. ‘인천신문보도를 보니 배다리를 지키는 시민모임은 최근 단순한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 지나간 역사와 오늘의 배다리가 가진 문화콘텐츠를 결합한 다양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듯하다. 그동안 귀를 막고 있던 시당국도 그들과 발전적인 대화를 하고 있는 듯하다.

 

배다리 문제는 최종 결정을 할 때가 다가왔다. 시의회가 나서거나, 시장님이나 시 당국자가 시민모임과 웃으며 머리를 맞대고, 배다리가 행복한 도시 인천의 중요한 일부로 살아남도록 도시 재생의 공통분모를 찾아주기 바란다. 배다리의 보존과 창조적 복원, 그것은 인천에서 살아갈 후손들을 위한 우리의 중요한 책임기이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