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인천 같아요!
인천의문화/해반문화사랑회
2009-07-12 00:19:49
너무나 인천 같아요!
박 재 윤(인천대 재료공학과 교수)
“아빠, 너무나 인천 같아요! 그런데 여기는 왜왔어요?” 9살 짜리 눈에 보이는 미국 뉴올리언스에 대한 첫 반응이다.
지난 1년을 미국 알라바마 대학교에 교환교수로 지내던 중, 뉴올리언스에 역시 방문 연구원으로 나와 있던 해양연구소의 친구로부터 반가운 초대 연락을 받게 되었다. 그곳은 살던 곳에서 차로 4시간 정도 거리로 미국에서는 가까운 거리라 볼 수 있는 곳이다. 뉴올리언스의 방문은 과거 국제학술회의 참가를 포함해서 이번이 3번째 방문이었다. 첫 번째 방문에서 받은 인상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던 터였다.
뉴올리언스, 미국의 젖줄인 미시시피강이 카리브해와 만나는 곳에 위치한 항구도시로 과거 프랑스 식민지시대 미국 대륙의 물산들과 유럽대륙의 문물이 이 강과 바다를 통하여 교류하던 장소이다. 현재 미국에서 과거 식민지 시대의 풍광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도시중의 한곳이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째즈라는 음악의 한 장르가 탄생된 고장으로, 테니시 윌리암스의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 등 그의 작품 무대로도 잘 알려진 곳이다. 미국인들이 국내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도시중의 하나로 알려져서 인지 국제 회의가 연중 열리는 도시이다.
그러면 이 도시에 무엇이 대단해서 디즈니 월드에도 ‘뉴올리언스 거리’라는 테마거리가 조성되어 있을 정도로 유명할까? 세계에서 가장 긴 33km의 다리가 있어서, 째즈의 발상지이기 때문에, 브라질의 삼바 축제에 버금가는 ‘마디그리 축제’와 째즈 축제의 유명세 때문일까? 아니면 아직도 거리를 천천히 달리고 있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St. Charles 전차)’ 와 영화 속에 등장하는 양쪽에 물레방아처럼 생긴 수레로 움직이는 증기선을 탈 수 있어서 일까? 물론 이런 것들이 이 도시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드는데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그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우선 French Quarter를 향하여 간다. 이곳은 사방 1㎢되는 크기에 과거 프랑스식 가옥과 창고건물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보기에 따라서는 약간 지저분하게도 보인다. 그러나 여기가 오늘의 뉴올리언스를 있게 한, 그리고 이 도시의 정체성을 함축적으로 보여 주는 곳이다. 바로 그곳이 어린아이 눈에 “너무나 인천과 똑 같다”는 것이다. 내게는 너무도 충격적인 말이었다.
그렇다 그곳에 인천과 너무나도 흡사한 도시의 겉모습이 있었다. 오래된 벽돌 건물들과 다소 좁으면서도 인간적으로 느껴지는 격자형의 도로들, 항구적인 분위기 등이 그랬다. 그런데 왜 우리는 뉴올리언스가 되지 못할까?
또 정체성타령 일지 모르나, 정체성이란 것이 무엇인가? 우리가 사는 고장이 자랑스럽게 간직하고 있는 그 무엇이 있다면 그것이 정체성이 아닐까? 그 정체성이 함축적으로 모여 있어야 하는 곳이 소위 말하는 ‘구도심지(중앙동, 신포동 일대)’라는 곳일 것이다. 거기에는 우리가 관심을 두지 않아서 그렇지 중국, 일본, 그리고 한국 등, 동양 3국의 건물들과 서양풍의 양식들의 건물들이 역사를 간직한 채 서있다. 그곳을 잘 가꾸어 좋은 문화적 내용을 채운다면 정체성 운운의 얘기도 필요 없고, 뉴올리언스를 부러운 시선으로 쳐다 볼 필요도 없지 않겠는가?
며칠 전에 신포동에서 10년 가까이 가계를 운영하는 사람을 만났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거기에는 지금 장사가 잘 되지 않아서 비어 있는 점포들이 즐비하다. 그 사람은 이 거리에 매려되어 아직도 이곳을 못 떠나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많은 후배들이 아직도 여기를 사랑하고 매력적으로 생각하고 있어서 그런 후배들을 생각하면 더 더욱 문을 닫지 못한다고 하였다. 조금은 안타깝게 느껴지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인천 토박이들조차도 만남의 장소를 구도심지로 하길 꺼리고 있으니 말이다. 상황 이 지경까지 온 것은 과거 도시 계획을 근시안적으로 시행한 행정 당국의 책임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대부분 주거지는 부평과 만수, 연수지구로 퍼져 있는데 환상형의 타 도시와 달리 인천의 도심지는 반도 모습으로 바다를 향해 불쑥 튀어 나와있는 인천만의 도시성격을 몰이해한 것이다. 따라서 구도심은 사람들이 밤과 낮으로 움직이는 동선상에서 외따로 떨어져있어 사람들의 발길이 갈수록 멀어지고 동네의 모습은 쇠락해 가고 있는 것이다.
이 고장에 사는 사람들도 외면하는 곳을 국제적인 명소로 가꾼다는 것이 얼마나 헛된 발상이냐. 신문과 방송을 통하여 전해지는 얘기는 이곳에 비로써 행정당국에서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이지만, 그 모든 출발은 이 거리에서 사람들의 모습이 자주 눈에 띠게 그리고 사람냄새를 맡을 수 있게 하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내수 저변이 없이 수출이 불가능하듯이 인천 시민들이 외면하는 곳에 어떻게 국제적인 명소가 조성 될 수 있겠는가?
아무리 도로를 새로 포장하고 주차장을 건설하고 패션거리를 만들어도 거리는 활성화되지 않을 것이다. 구도심 활성화를 위한 전문적이며 거대하고도 잘 재단된 프로젝트도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우선하여 고려할 것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는 거시적 도시계획상의 동선 변화이다. 이것이 없이 구도심을 활성화한다 것은 공염불이 될 것이다. 그런 사고의 연장선에서 서북부 매립지, 영종도와 구도심의 연계를 고려한 새로운 도심 동선의 패러다임을 구축하는 것이 송도신도시의 개발 못지 않게 고려되어야 할 부분이다.
과거를 보라. 60년대만 해도 강화도를 비롯한 뱃길이 지금의 인천역 부근에 닿았다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곳에 거주하였다. 그래서 사람과 물산들의 동축상에 구도심이 위치하여 도심은 활기가 있었다. 그러던 것이 인천내항의 도크화로 바닷길은 닫혔고, 사람들도 시 외곽으로 떠나서 도시는 공동화되어 사람의 자취를 쉽게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하나의 작은 생각이지만 북성부두로 연안 여객선부두를 이전하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거기는 인천역과 인근거리로 이미 교통 인프라가 어느 정도 구축되어 있다. 객선 부두가 이전된다면 연안섬으로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이 자연스레 인천역 부근에 이어질 것이고 항구에 어울리는 건물과 문화적 분위기가 만들어지게 될 것이다. 이런 것들이 하나 둘씩 이루어지면 송도신도시의 건설과 같은 거대한 자본과 긴 시간의 소요 없이도 구도심은 되살아나고 그런 기반에 뉴올리언스 같이 문화적 기풍이 있는 도시로 인천은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뉴올리언스와 비교될 수 있는 그릇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 그 그릇을 채울 내용도 없고, 닦고 빛을 낼 의지도 부족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을 해야 하는 것이 이 시대 이 고장에 사는 이들의 후손에 대한 책무가 아닐까? 지난해 뉴올리언스에서 느꼈던 아쉬움에서 몇 자 적어 보았다.
소식지 문화사랑 31호 2001년7-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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