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1차 인천시민사회포럼 - 공공디자인, 도시를 바꾼다
仁川愛/인천이야기
2009-07-21 15:54:10
디자인 행정, 잘못하면 빛 좋은 개살구
제71차 인천시민사회포럼 - 공공디자인, 도시를 바꾼다
‘왜 공공디자인인가?’
인천시는 지난 2월 도시경관과를 도시디자인추진단으로 확대, 개편했다. 어느 때부터인가 행정기관에서 ‘디자인’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일부 기초자치단체는 기존 경관녹지과에 도시디자인팀을 신설하기도 했다. 부평구의 경우는 도시경관과 외에 부구청장 직속 ‘도시디자인추진단’을 따로 둘 정도로 중요시하고 있다.
예술 영역에 국한돼온 디자인이 행정으로 퍼지고 있는 것이다. ‘빛 좋은 개살구’란 말이 있다. 지극히 외양만을 강조하다보면 내실이 빈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디자인을 강조하는 사이 시민들의 삶의 질 향상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가 과제다.
지난 16일 오후 7시 전교조 인천지부 교육실에서 이 주제를 놓고 ‘제71차 인천시민사회포럼’이 열렸다. 디자인평론가 활동을 하는 최범 희망제작소 간판문화연구소장은 이날 ‘공공디자인, 도시를 바꾼다’를 주제로 최근 민과 관에서 유행이 되고 있는 공공디자인의 의미와 과제 등을 짚어봤다.
#사적디자인에서 공공디자인으로 = 디자인의 공공성을 거론하기 위해선 그 사회에 근대적 공공성이 있어야 한다. 도로가 있어야 자동차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한국사회에서 근대적 공공성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 상황에서 공공디자인을 말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젠 디자인을 공공적 관점에서 어떻게 보느냐가 관건이다.
사적(Private)디자인이란 표현은 일반적인 용어가 아니지만 개념적으로 따져보면 주로 시장을 통해 매개되는 소비재의 디자인을 일컫는다. 쉽게 상품디자인이라고 말한다.
디자인은 소비생활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 도로, 공공건물, 교통표지판, 또는 도시 전체 등 공공영역에도 디자인이 있다. 설령 사유물이라고 하더라도 건물의 외관이나 옥외광고물 등은 포함된다.
공공디자인의 대상은 상당히 넓다.
공공시설 뿐만 아니라 정부나 행정기관의 홈페이지 디자인, 국가 상징물, 정부 간행물, 포스터, 지자체의 CI 캐릭터 등도 공공정보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 도쿄의 롯본기지역에 가면 가로시설물로 만들어진 벤치 하나도 예술 작품 수준으로 꾸며져 있다. 스위스는 여권을 만들 때도 유명한 디자이너가 관여,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권으로 꼽힌다. 한국의 여권은 대한민국의 문장인 무궁화 그림이 있지만 그 기능까지는 못하고 있다.
#백화점과 거리의 이중성 = 한국근대화는 불균형 발전 양상을 보였다. 디자인도 마찬가지. 한국의 디자인은 산업화 과정에서 사적디자인 중심으로만 발전했을 뿐이다.
이름난 백화점의 내부는 미적 개념이 도입될 정도로 상품이 넘쳐나지만 백화점에서 나가는 순간 수준 이하의 거리를 맞닥뜨리게 되는 등 극심한 부조화를 보인다. 학교도 다르지 않다. 학교 앞의 세련된 카페에 비해 강의실의 현실은 어떠한가? 선진국은 사적 공간과 공공역역이나 디자인의 차이가 심하지 않다.
한국의 상황은 우선 산업 중심의 디자인 교육으로부터 기인한다. 대학의 디자인 관련 학과는 오로지 기업을 위해 존재할 뿐 공공영역의 디자인은 가르치지 않는다. 행정에서 디자인이란 관점이 올곧게 설 수 없는 이유다. 지자체마다 간판개선 사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관주도의 획일적인 방법으로 추진하는 실정으로 1970년대 새마을운동처럼 비칠 뿐이다.
시민의식도 필요하다. 자동차, 운동화, 휴대전화 등 소비제품의 디자인엔 관심이 많지만 공공영역은 그렇지 않은 현실이다.
#공공디자인도 시민운동의 대상이다 = 공공디자인이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재임할 때 청계천 프로젝트로 큰 재미를 보면서 디자인이 유행하고 있다. 미적인 감수성 증진까지 이어지지도 못했는데도 말이다. 민간영역도 공공디자인을 또 하나의 시장으로 보는 등 상업적 관점이 농후한 편이다. 즉 공공디자인이 신개발주의나 상업화로 오용되는 데 대한 경계가 필요하다.
교육, 주거, 노동 등 절박한 과제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디자인을 추구하는 것은 사치일까?
큰 사회적 의제는 아니지만 건축이나 도시계획에 앞서 디자인은 사회 구성원의 미의식이나 가치를 담보할 수 있는 근원적인 요소(fundamental)인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공공디자인은 단순한 개인의 취향이 아니라 사회 주민들의 감수성의 영역이다. 공공역역에 대한 감수성이나 미의식이 없다면 그 자체로서도 불행이거니와 디자인이 관료나 장사꾼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뻔하다.
결국 공공성이 있기 때문에 공공디자인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공공디자인을 통해서 사회의 공공성을 만들어가야 한다.
김창문기자 asyou218@i-today.co.kr
“똑같은 간판개선사업
관주도 방식 탈피해야”
▲최범 희망제작소 간판문화연구소장
최범 소장은 얼마 전 인천문화재단의 의뢰로 심사차 인천에 왔다가 놀랐다. 시청에 붙은 ‘세계일류명품도시 인천’이란 문구 때문이었다.
도시에 명품이 붙을 수 있을까? “인천도 여느 도시와 전혀 다를 바 없구나”라며 그는 아연실색했다고 한다.
대한민국이 구호의 공화국이라는 점을 알긴 했지만 전국 어느 도시를 둘러봐도 명품 도시를 추구한다는 선전만 나부낄 뿐이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차별화를 찾아볼 수 없다.
관과 비즈니스 차원에서 공공디자인은 ‘블루오션’이 됐지만 시민 영역으로도 확대될 것으로 최 소장은 내다봤다.
“자동차 번호판의 디자인을 바꾸었을 때 당시 많은 시민들이 너무 촌스럽다고 대대적으로 비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이 사건(?)을 디자인과 관련한 최초의 시민적 저항이었다며 그 상징성을 평가했다. 단지 숫자를 크게 하면 좋을 것 같다는 공무원의 관료주의적 생각은 여백이나 글자 개념 등은 물론 문화나 감수성이 없다는 비판까지 제기됐기 때문이다.
최범 소장은 자동차 번호판에서 끝날 게 아니라고 전망한다. “왜 우리 동네 거리의 보도블록은 보기 싫은가?” “아름다운 거리를 만들어 달라”는 등 요구 뿐만 아니라 심지어 주민등록증의 디자인까지 시민들의 요구가 분출할 때가 왔다는 것이다.
문화나 삶의 질을 얘기하는 마당에 디자인도 당연히 공공적 의제로 생각해야 한다는 게 최 소장의 시각이다.
인천에서도 간판개선사업이 진행되는 가운데 관주도 방식에서 탈피할 것을 주문했다. 공적 자본을 가지고 개인의 사유물인 간판을 바꾸는 것이 정당한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필요하고, 공공사업의 이익이 다수의 시민에게 귀결될 수 있도록 사업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내놓은 방안은 민간전문가에 의한 일종의 문화운동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것.
부산 광복로 프로젝트는 문화광광부와 부산시가 추진하는 과정에서 주민 참여를 빼놓지 않았다. 전북 진안군 백운면 프로젝트의 경우는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접근, 지역 정체성을 살린 간판으로 소개되고 있다.
‘새마을운동’처럼 진행되는 인천과는 차원이 다르다. 시와 구가 나서 도시디자인추진단이나 도시디자인팀을 신설하고, 선진지 등을 둘러봐도 인천의 공공디자인이 지역의 정체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이유다.
김창문기자 asyou218@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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