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척으로 변모한 인천 안동포
仁川愛/인천이야기
2009-08-17 22:24:10
‘바다 잃은 마을’은 삶이 변하고 수난도
(29)간척으로 변모한 인천 안동포
인천시 서구에는 간척사업의 역사를 온몸으로 겪어온 마을이 있다. 바다와 갯벌, 섬을 무대로 생활을 해오던 안동포 주민들의 삶은 간척으로 인해 생활환경이 크게 변했다. 1980년대 동아건설에 의한 대규모 간척사업으로 인해 바다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 최대·최장의 수도권매립지가 마을 앞에 들어서면서 극심한 환경문제를 겪기도 했다.
안동포는 바다와 갯벌을 대상으로 하는 전형적인 포구마을로 김포지역의 생선과 쌀 등을 제물포로 나르던 중요한 어항이었다. 예전에는 ‘부자로 성하게 사는 갯마을’의 뜻을 가진 ‘부성(富盛)개’로 불렸지만 각종 향토자료에는 안동 권씨(安東權氏)가 입향(入鄕)해 안동포라고 부르게 됐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 안동 권씨는 한 명도 없으며 하동 정씨(河東鄭氏)를 비롯한 몇 가구만 그 일가를 이루고 있다.
오히려 인근에 있는 사월마을이 안동 권씨의 집성촌으로 19대 째 살고 있다. 400년 전 안동 권씨가 외진 이곳에 정착하면서 일가를 이루었고 가까운 곳에 있는 포구로 이용하면서 자연스럽게 안동포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으로 추정된다.
# 매립이 초래한 피해
서울의 쓰레기 매립지였던 난지도와 경기도 일대의 매립장들이 포화상태에 이르자 새로운 매립지를 찾던 도중 선정된 곳이 수도권매립지다.
세계 최대, 그리고 세계 최장의 매립지에서 가장 인접한 직접 영향권에 속해있던 안동포는 극심한 환경피해를 겪어야만 했다.
“아침부터 시작되는 기계소리와 함께 여름엔 견딜 수 없는 악취. 악취로 인한 해충들의 난리. 우리가 함께 마시고 있는 물. 끓여먹지 않으면 감히 손도 못대는 실정. 예전엔 공기 좋고 물 좋고 인심 좋던 마을이 사납고 지저분한 동네로 변모하기까지는 지금 김포매립지가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 매립지 인근 주민이 쓴 글 중에서
악취 주민들이 느끼는 가장 심각한 환경피해였다. 지금은 위생매립 등 많은 노력으로 인해 그 피해가 거의 없어졌지만 쓰레기 반입이 시작된 초기에는 악취가 심해 숨쉬기가 어려웠으며 더운 여름에도 창문을 열지 못했고 파리와 모기 등의 해충의 피해가 크게 늘어나 사람이나 가축들에게 많은 피해들 주었다.
1992년 매립이 시작되던 당시 환경피해에 대한 보상금 18억 원으로 마을 소유였던 당산(堂山)에 동아연립 45가구를 건축했다.
이주하지 않은 주민 45세대가 새로 만든 동아연립에 입주하면서 신(新)·구(舊) 거주공간 두 개가 존재하게 됐다.
# 대동우물
예전에는 전각(殿閣)이 있었고 정제(井祭)를 드리던 용(龍)우물이다.
출항 전에 만선을 기원하는 뱃고사를 크게 지내고, 조기잡이 배에서도 이 물을 떠다가 썼기 때문에 어업활동에 크나큰 역할을 했다.
수도권매립지의 침출수문제로 상수도가 보급되면서 사용이 중단됐다.
# 풍어 기원 ‘도당 굿’
동짓달에는 조기가 많이 잡히라는 뜻에서 매년 대동굿을 했는데 인근 7개 마을이 이곳 안동포 당산(堂山)에서 합동으로 도당굿을 했으니 그 당시 마을의 비중이 매우 높았음을 알 수 있다.
굿을 하는 집인 당집은 마을 뒤에 있는 당산(堂山)에 있었는데 동아연립을 건축하면서 규모가 축소되고 담장 밖으로 밀려나 있다. 이는 포구마을이 육지화 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원로들의 증언에 의하면 1970년대 말까지 100여호의 큰 마을이었으며 지명과 같이 중선 10척, 소형선 20척이 멀리 연평도 근해까지 가서 조기를 많이 잡고 민어 새우 등을 많이 잡은 부자 마을로, 조기를 많이 잡아 말리던 ‘조구내리’라는 지명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최원길·서인천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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