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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반문화사랑회

스페이스 빔의 선택

by 형과니 2023. 6. 1.

스페이스 빔의 선택

인천의문화/해반문화사랑회

2009-08-17 21:35:36

 

스페이스 빔의 선택

도 지 성 정회원

 

배다리 주변은 30여 년 전에서 크게 변한 것이 없다. 달라진 점은 그 당시에는 꽤나 번화한 거리였는데 그 이후에는 계속 침체돼 왔다는 것. 헌 책방 골목엔 이른 저녁인데도 문 닫은 상점이 대부분이다. 삼거리에서 창영교회 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인천양조주식회사 팻말이 붙은 건물이 하나 있다. 입구에 양철로 만든 큼지막한 로봇이 서 있는데 이곳이 스페이스 빔이다.

 

반쯤 열린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하늘을 비닐과 천막으로 가린 넓은 공간이 나타난다. 호텔로 치면 현관 로비 같은 곳으로 사람들이 모여 각종 행사를 하거나 전시 또는 간단한 목공 작업 등을 할 수 있는 다목적 공간으로 우각홀이라 불리는 곳이다. 양쪽에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안쪽 깊숙이 좁은 공간이 보인다. 왼쪽 벽 위로 옆집 기와지붕의 처마가 불쑥 튀어 나와 있는데, 집과 집 간에 경계가 참으로 모호하다. 공간은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개인적인 취향과 정신세계를 반영하는 곳이다. 스페이스빔의 민운기 대표는 미술의 경계를 부수고 미술의 영역을 서민들의 생활 속으로 확산시키는데 그의 열정을 쏟고 있다. 집과 사람이 서로 닮아 있다.

 

오른쪽 벽에 붙은 계단을 올라가면 사무실이 있다. 책꽂이와 책상이 길게 이어져 있는데, 재활용해서 만든 책상도 보인다. 재활용 컵에 따뜻한 차를 한 잔 받아 마시면서 외진 곳에 자리를 잡고 들어온 이유가 궁금하다고 물었다. “스페이스 빔 팀은 도시탐사를 하면서 이곳을 발견했어요. 배다리 일대를 산업도로가 관통하게 됨을 알게 되었죠. 비록 낡은 동네지만 나름대로의 문화와 역사가 있는 곳이 무자비한 개발과 경제 논리로 손실되는 것을 막고 이곳을 보존하려는 동네 주민들과 함께 하기로 했어요. 현재 이곳은 주민감사 청구로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어요.”

 

스페이스 빔은 각종 전시, 세미나, 실기수업, 영화상영 등 동네 문화센터의 역할을 하고 있다. 올 여름에 기획한 땜빵은 이곳의 성격을 잘 대변한다. 민운기공장장은 네 명의 땜빵 요원(화가)들과 함께 동네 술공장 땜빵을 차렸다. 예술의 특권의식을 버리고 생활 속에 살아 있는 미술을 주장하는 이들은 동네주민들이 가져온 헌가구등을 재활용해서 멋진 창작품을 만들었다. 미술관은 유명예술인들의 작품을 소개 전시한다. 대안 공간은 아직 제도권으로 흡수되지 못한 작업들을 주로 전시한다. 스페이스 빔은 일반인들을 미술판으로 끌어들인다는 점에서 미술관이나 대안공간과는 다른 제3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스페이스 빔이 배다리를 선택했다는 것은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문화의 중앙 집중에서 벗어나 소외된 지역에 바탕을 둔 예술 활동, 일방적 지배권력을 주체적으로 극복하려는 노력, 자본주의의 이익 논리를 극복하고 인간대 인간,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려는 노력을 하면서 기존의 제도권 예술문화에 새로운 물음을 던지고 있다. 그들의 질문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을지라도 자본과 권력, 상업적 욕망으로 얼룩진 미술판에 전하는 새로운 메시지를 우리 모두 새겨 볼 필요가 있다.

 

 

해반소식지 752008.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