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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반문화사랑회

신포동 왕 떡볶이

by 형과니 2023. 5. 31.

신포동 왕 떡볶이

인천의문화/해반문화사랑회

2009-08-06 20:37:09

 

신포동 왕 떡볶이

이 종 복시인, 향토사연구가

 

인천에, 아니 신포동에 떡볶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60년대 말 어느 겨울이다. 넓적한 쇠 불판에 가래떡을 엇비스듬 갸름하게 자르고 멸치 국물에 고추장을 풀어 말캉말캉 먹기 좋게 조리해 팔던 것이 그 처음이다. 지금은 전국 어디를 가든 간에 떡볶이란 이름이 통용되고 떡볶이는 곧 고추장을 연상시켜 붉은 색깔을 띤 매콤한 맛으로 고착됐지만, 원래 떡볶이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1974년 발간된 이희승 국어사전에 떡볶이는 흰떡을 토막 내서 고기와 양념을 섞어 볶은 음식으로 희멀건 색깔을 띤 볶음채류였음을 설명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이희승 국어사전에는 당시의 떡볶이에 대한 개념설명이 오늘날과는 다른 것이었음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이랬던 떡볶이의 개념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사건이 신포동 왕 떡볶이 집의 등장이다.

 

간판도 없이 빨간 페인트로 떡볶이와 우무 그리고 오뎅이라고 그려 넣은 것이 전부인 벽면을 따라 깊숙이 난 통로를 지나면, 제법 너른 공간에 몇 개의 탁자와 선술집에서나 볼 수 있는 선반, 그리고 한 가운데에는 쇳덩어리로 만들어진 떡볶이 불판이 놓여 있었다. 불판을 중심으로 귀퉁이 공간 한 켠에 연탄난로에 올려진 오뎅이 끓고 있고 어지간해서는 구경하기 힘든 우무도 불판 건너편 물 양재기에 담겨져 있었다. 바다풀의 일종인 우뭇가사리를 쑤어 묵으로 만든 한씨 할머니의 정성도 정성이지만 초장 맛이 일품인 고로 입소문의 끝은 가없어 연일 문전성시를 이뤘다. 나무로 만든 사각 통의 한 면은 철사로 바둑판처럼 엮어 망을 쳐놓고 우무를 넣어 밀대로 누르면 우무는 네모난 국숫발처럼 가지런히 잘려져 나왔다.

 

신포동을 찾는 나이 지긋한 맛객가운데, 당시 주전부리에 일가견이 있었다면 틀림없이 신포동 왕 떡볶이 집을 그냥 넘어가진 않았으리라. 1971신포우리만두가 바로 옆 건물에 들어서고부터 몇 해 간 주춤하다가 어느덧 잊혀진 명소가 되었지만 기다란 가래떡을 성둥성둥 자르며 어서옵쇼!’ 인사하시던 삐쩍 마른 한씨 할머니와 두루뭉술한 며느리의 묘한 조합은 더는 볼 수 없는 기억 속에 묻히고 말았다.

 

2마력짜리 발동기를 돌려가며 쌀을 빻다가 가끔씩 뫼비우스의 띠를 연상케 하는 피대가 회전 속도를 못 이겨 일탈하곤 했던 1960년 대 방앗간. 가래떡 뽑아내는 제병기가 처음으로 기계화된 모습으로 방앗간에 안착됐을 때, 새벽 통금해제 호루라기 소리가 나불자마자 장사진을 친 1970년대 설 전날 풍경은 뜨악치 않았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끊임없이 삶의 족적을 새롭게 펼쳐가는 선배 어르신들의 놀라운 재생능력을 돌이켜보건대, 삶에 대해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사고가 아니면 결코 이룰 수 없었고, 나아가 우리의 생활문화로 전승되는 단초를 마련하게 됐던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여하튼 절구에 불린 쌀을 넣어 찧어대고 다시 가마솥에 쪄서 손이 부르트도록 길쭉하게 가래떡을 만들던 것에 비해 원-스톱 시스템으로 바뀐 1960년대 말엽. 수요와 공급의 불가분의 관계는 우리 사회에 먹을거리 혁명을 낳는 계기가 됐음은 부인할 수 없다. 신포동 왕 떡볶이의 탄생배경은 이랬다.

 

그러나 오랜 세월의 부침 속에서도 여타지역에서 만들어지는 손가락 크기만 한 떡볶이와 달리 신포동 시장일대에서 만들어지는 떡볶이가 여전히 사랑받는 것은 어린 아이 손모감지만한 굵기 때문만은 결코 아니다. 근대 문물의 유입과도 무관치 않고 역사적으로 새롭게 조성된 삶의 터전을 향한 선배 어르신들의 개척정신과도 궤를 같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척에 따른 도전과 창의성은 양념이다. 이런 바탕에 탄생한 것이 어디 신포동 왕 떡볶이 뿐이겠는가 마는.

 

살기 어렵다, 경제가 불통한다고 한 목소리다. 인류역사가 부침을 거듭해 오면서 오늘에 이르렀음을 인식하는 순간, 벼랑 끝에 서 있다고 느끼는 우리 자신에게 제2, 3의 라이트 형제의 의기를 분명히 추슬러 볼 일이다. 신포동 왕 떡볶이 한 접시를 다 먹어보고 난 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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