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문화재
仁川愛/인천이야기
2009-09-22 03:02:17
근대 문화재
/조우성의 미추홀/
광복 후 첫 인천 부윤(府尹)으로 취임한 이는 표양문(表良文) 씨였다. 부윤이란 일제 강점기 때의 명칭을 답습한 것으로 지금의 시장(市長) 격인데, 그가 부윤이었다는 직함 이외에 그의 이력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표 시장은 1907년 서울서 출생해 인천 전동에서 살았다. 1930년 전문학교 입학자격 검정에 합격하여 이듬해 세브란스의전 기수로 미생물학 교실에 근무했다. 1944년에는 원산 구세병원 임상병리검사과장으로도 있었다. 하지만 그와 관련한 의학이나 시정 연관 문서 혹은 지역사나 개인사적 사료가 전해지고 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반면에 최근 1917년 세브란스에 근무했던 DJ의 장인이 남긴 인턴수료증이 발견돼 사계의 화제다.
그런가 하면 숭의동 해변에 별장을 짓고, 제물포구락부에 자주 들렀던 알렌의 진단서와 검안경(檢眼鏡), 같은 제물포구락부의 멤버였던 고종황제 시의 분쉬가 사용했던 외과도구 등이 근대문화재로 지정된다는 소식이다.
특히 알렌이 1885년에 발급한 서양식 진단서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것으로 인천해관(仁川海關ㆍ지금의 인천세관) 직원 웰쉬(C. A. Welsch)에게 '1~2주 요양이 필요하다'는 내용으로 발급한 것이라는 데 눈길이 끈다.
바야흐로 근대문화 유산이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그 현장이었던 개항장 인천에서는 건축물을 제외하고는 거의 발굴된 일이 없었다. 전쟁으로 망실되거나 영욕의 시대를 살아온 선대들이 그 행적을 남기지 않으려고 훼손시킨 사례도 없지 않았던 듯싶다. 어쨌거나 지금이라도 그를 발굴하는 데 관심을 쏟아야겠다.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