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안창남이 비행한 仁川
인천의문화/김윤식의 인천 재발견
2009-11-29 22:23:45
떨어지는 해를 쫓듯 西로 西로…
(44) 안창남이 비행한 仁川
“인천행! 인천을 가야겠는데 시간이 너무 늦어서 해는 저물기 시작하고 일기는 점점 차오고 곤란이 거듭 쳐와서 불안이 적지 아니하였으나 일전에 못가게 되어 어쩌지 못할 일기의 탓이라고는 하나 인천의 시민 여러분께 미안하기 그지없어 밤이 되더라도 갔다 오겠노라 하고 4시24분에 다시 여의도 마당을 떠나서 떨어지는 해를 쫓을 듯이 서편(西便)으로 서편으로 갔습니다.
부끄러운 말씀이나 나는 이제껏 인천을 가본 일이 없었습니다.
비행기로 못갔을 뿐 외(外)라 기차로도 보행으로도 가본 일이 없었습니다. 경부선, 경의선 방면으로만 몇 곳 가본 일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나침도 없이 그냥 지도만으로 방향을 대강 짐작하고 서(西)으로 서으로만 갔습니다.
공중에서 두리번두리번하면서 찾아가는 중에, 원래 조그마하나마 시가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그 공중에 연기 같기도 하고 안개 같기도 한 것이 뽀얗게 떠서 시가를 덮고 있는 것이라. 나는 그냥 그것이 눈에 뜨이기만 기다리면서 갈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십 수 분이면 넉넉히 갈 곳인데 15분이 되도록 아는 수가 없어서 적지 아니한 불안한 마음이 생기게 되자 언뜻 그것을 발견할 때에 어떻게도 나는 반가웠는지 아지 못합니다.
‘오, 인천!’ 비행기 위에서 혼자 소리치면서 그야말로 뛰는 중에도 뛰어갈 듯이 달려갔습니다.
처음 보는 시가이니까 동명(洞名)도 무엇도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측후소(測候所) 넘어 공설운동장에 모여 있겠으니 거기서 저공비행을 하여 달라는 말씀을 일전에 들었었던 고로 그럴 듯한 마당을 찾아 내려다보니까 별로 많이 모여 있지도 아니한 모양이라.
짐작컨대 일전에도 온다 하였다가 못왔었고 오늘도 온다고만 하고 오기가 늦은 고로 또 낙망하고 헤어지신 것 같아서 어찌도 몹시 미안하였던지 아지 못합니다.
그래서 거기서는 몹시 더할 수 없이 얕게 떠서 저공비행으로 인천의 시가를 바다 위까지 휘돌아 두 번을 휘돌았습니다.
인천서는 200미돌(米突)의 저공비행을 하였으므로 시가 길거리에 모여 서서 쳐다보고 손뼉을 치는 모양까지 자세히 보였습니다.
그리고 비행기 온 것을 알고 공설운동장에 이르는 세 갈래 신작로로 달음박질하면서 모여드는 것까지 보여서 나는 그것을 보고 반갑고 기꺼운 미소를 금치 못하였습니다.
해는 바다 저 편으로 기울어지기를 시작하는데 돌아갈 길이 급한 것도 잊어버리고 나는 거기서 고등비행술(高等飛行術)을 여러 가지로 하야 인천 여러분이 되도록 만족히 보시게 하고 나서 다시 시가의 위를 두 번 돌면서 가지고 간 종이를 뿌려 경의를 다여야 인사를 드리고 돌아서서 여의도로 돌아와 착륙할 때는 저으기 날이 저문 때였습니다. 가기에 17분쯤, 오기에는 14분, 전부에 35분쯤 쓴 것이었습니다.”
(한국 최초 비행사 안창남의 경성과 인천을 왕복한 비행 관련 글이 실린 당시 신문.)
이 글은 한국 최초의 비행사 안창남(安昌男 1901~1930)이 1922년 12월15일, 자신의 비행기 금강호(金剛號)를 조종해 경성, 인천 간 처녀 왕복 비행에 나서 인천 상공을 날던 상황을 적은 글이다.
시각은 오후 4시42분. 그는 총 4분 간 인천 상공에 떠있었다. 애초 10일에 비행하려던 것이 일기가 불순해 미루다가 이날 결행한 것이다. 그가 말한 측후소는 지금의 인천기상대이고 공설운동장은 제물포고등학교 교정이다.
그 인천이 지금은 세계 최고 수준의 국제공항을 가지고 있으니 그가 저 세상에서 인천을 내려다보는 감회가 어떠할지. 공항에 다녀오면서 문득 안창남이 생각났던 것이다. 김윤식·시인/인천문협 회장
'김윤식의 인천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46) 윤갑로 인천시장 (0) | 2023.06.05 |
---|---|
(45) 초대 인천박물관장 이경성 (0) | 2023.06.05 |
(43) 인천사람의 창의성 (0) | 2023.06.05 |
(42) 대청도 (1) | 2023.06.05 |
(41) 인천을 노래한 시들 (1) | 2023.06.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