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해반문화사랑회

신포동, 그 낯익음에 대한 낯설음

by 형과니 2023. 6. 7.

신포동, 그 낯익음에 대한 낯설음

인천의문화/해반문화사랑회

2010-01-31 14:22:18

 

신포동, 그 낯익음에 대한 낯설음

이 종 복 시인, 향토사연구가

 

화구를 향한 불기둥은 요란한 폭발음을 연속적으로 내더니만, 출발선상에서 옹크리고 서 있는 육상선수처럼 증폭되는 박동을 고르듯 평저음으로 뒤바뀌고 있었다. 이러한 평저음은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고음으로 높아질 수 있는 저력이 숨은 귀곡성처럼 경계를 가름하는 분기점이 되곤 하였다. 그럴 때마다 새벽과 아침이, 일의 시작을 알리는 하루의 시점을 어느 시간대에 두느냐에 늘 갈등을 빚고 있었다.

 

수조가 달궈지면서 압력계의 바늘이 달아오르면 잔뜩 화기를 머금은 물 입자들이 최후의 방사 지점을 향해 돌진해 보지만, 헛김으로 공중에 분해된다는 걸 알아차렸을 무렵엔 그것이 예열과정일 따름인 것에 허탈한 듯 배수관 밖으로 헛물을 쫄쫄쫄 흘리고 있었다. 뭉실뭉실 펴오르는 떡 김에 휩싸인 채, 하루는 이렇게 시작되었고 이러하기를 이십 년 넘게 해 왔다는 상념이 불현듯 들었다. 아버지가 그렇게 해오셨고 힘에 부쳐 일을 그만 둔 둘째 형님도 그랬고 나 또한, 그렇게 반복적으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반추되는 20091026일 새벽녘.

 

신신옥 우동 집 옆에 들어선 교회는 새벽 네 시 반 예배가 끝나기 무섭게 시장 사람들과 다투기 시작하였다. 인근에 내리교회, 답동성당에서 울리는 종소리와 찬송가에 이골이 난 터이지만, 잠도 못 자게 시장 안에서 새벽예배를 본다고 푸념하는 상인들과 멸시의 눈빛으로 시종일관 가슴에서 성경을 떼지 못한 채 거칠게 항변하는 젊은 목사와는 새벽의 통과의례처럼 반복되는 싸움질이었다. 간혹 거센 난투상황으로 전환될 무렵엔 이들을 뜯어 말리는 것은 전화를 받고 미적거리며 출동한 방범과 젊은 순경이었다. 통금해제는 하는 둥 마는 둥 시간의 흐름에 맡겨버리는 게 통상적인 관례였다. 자정임을 선포하듯 호각을 불어대고 반말하듯 고함을 지르고 윽박지르다가 말대꾸라도 하면 파출소로 끌고 가버리던 지난 밤 긴박했던 통행금지에 비하면, 잠에 쫓겨 만사가 귀찮은 듯 굵고 점잖은 목소리로 상황종료를 만들어 버리는 것은 언제나 늙수그레한 방범의 몫이기 때문이었다.

 

연생동, 의흥덕양화점, 염 씨 야채가게를 비롯해 푸줏간을 운영하는 왕 씨 등은 늘 새벽에 문을 열고 자정 무렵이 되어서야 비로소 합판때기 같은 조각문들을 일련번호의 역순으로 밀어 넣었다. 염 씨 할매가 전족 걸음으로 뒤뚱뒤뚱 공중변소로 향할라치면 새벽미사 복사를 마치고 화장실로 가던 나와 자주 눈이 마주쳤으므로 가벼운 눈인사는 새벽의 일상이기도 했다. 똥이 눈앞에 아른거리고 오줌냄새로 눈을 시리게 만들던 재래식 화장실을 허물고 현대식 주상복합 상가를 지어 올린 것은 1973년의 일이었다. 졸지에 주식회사로 전환된 시장 번영회가 좌충우돌 운영되는 상황에서도 소위 끗발 날리던 어른들은 저마다 제 목소리를 담아내려고 충우회호남향우회화랑친목회’ ‘황해도민회등을 만들어 경쟁적으로 관광버스를 빌려 단풍놀이를 다녀오곤 했을 무렵이었다.

 

네모난 나무 시루에 널찍한 광목을 깔고 쌀가루를 올려 찌면, 네모나게 흰떡이 만들어진다는 걸 늘 경험했던 망막의 배후에는, 이렇듯 지난 시절의 신포동 풍경들이 속절없이 저장돼 있는 거였다. 양은냄비 들고 줄을 섰던 해장국 집 답동관,

 

멋쟁이지만 가난했던 작가들의 안식처였을 백항아리 집, 닭대가리 젖혀 숨통을 끊고는 뜨거운 물통에 잔인하도록 쳐 넣던 닭전 골목, 미군부대에서 빼내온 물건을 팔던 양키골목, 기차표 고무신과 우주소년 아톰 신발을 팔던 강남신발 가게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과거가 열쇠 말을 입력시켰다하면 용수철처럼 툭툭 튕겨져 나오는 게 신포동의 새벽 만상들이었다. 눈이 흐려지고 이빨 틈새마저 벌어져 세상 잡사가 죄다 흔들려 보이는 지천명을 앞둔 나이에, 천명조차 모르쇠 설레짓 하듯 또렷이 기억되는 반역의 시간들이 문득 길을 잃고 빛에 파묻혀버리고 있을 무렵. 아침이 되었다.

 

언젠가는 신포동도 수도국산이나 배다리처럼 어렵사리 다져 살아온 추억들이 철거될 날이 올 것이다. 붉은 스프레이가 뿌려지고 이마빡에 두건을 두르며 깃발이 헤지고, 목이 쉬어 터지도록 무지와 비인간적인 막개발에 저항해 피를 토할 날이 분명 오고야 말 것이다. 현재적 삶의 진일보도 우리의 몫이지만 현재를 일궈낸 일체의 과거 또한 우리가 지켜내야 할 대상임에는 틀림없다.

 

다시 어둠이다. 어느 해의 1026일처럼. 미네르바의 부엉새 깃털이 떨어지기 전에, 이번에는 대구리 단단히 싸매고 익명의 그대들에게 장문의 편지를 써야할 어둠이 드디어 내리고 있다.

 

'해반문화사랑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개항과 담배  (2) 2023.06.07
인천과 이민(移民)  (0) 2023.06.07
망각지대에서 탁본한 기억들  (3) 2023.06.05
인천의 길, 사람의 길  (0) 2023.06.05
제물포조약과 인천  (0) 2023.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