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지대에서 탁본한 기억들
인천의문화/해반문화사랑회
2009-11-18 14:39:13
망각지대에서 탁본한 기억들
이 종 복 시인, 향토사연구가
동암역 북 광장에서, 노래를 평생의 화두로 삼았을 법한 ‘카수’ 한 사람을 보았다. 종량제 쓰레기 더미가 마치 무대처럼 놓인 게 안쓰럽긴 했지만, 그로 인해 불편해 하거나 코를 틀어쥐고 광장을 지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봄볕이 따갑다는 게 조금은 걱정스러운 듯, 챙이 넓은 모자를 푹 눌러 쓴 늙수그레한 카수는 헐거워진 입술로 연실 노래를 털어내고 있었다. 입술로 노래 부른다는 걸 의아해 할 독자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카수와 달리 가수는 이빨로 제 가슴 속 잘 영근 허파꽈리들을 잘근잘근 씹어 뱉어내는 사람쯤이라는 것을 알아차렸으면 좋겠다. 그래서 가수가 아니라 카수라 했던 점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어쨌든 그 늙다리 카수는 인파에 휩쓸리지도 않았을 뿐 더러, 억센 조선족 말과 다국적 언어들이 말풍선으로 떠다니는 광장 한 구석에서 발기된 노새처럼 꼿꼿이 서서 노래 부르고 있었다. 동암역 북 광장은, 그동안 직시하지 못했던 인천적 코드의 단면을 그렇게 봄볕에 투과시키고 있던 거였다.
깃발과 현수막으로 대변되고 있는 인천 지역 서른여덟 곳 개발지역들은 현재 소화불량 상태다. 새로움과 묵음과의 대치상황인 것이다. 한꺼번에 밀어닥친 음식물을 처리하느라 버거워하는 것은 시 행정부뿐만이 아니었다. 불가지적인 경기전망에 대한 섣부른 해법은 요원한 강을 맨 손으로 헤엄쳐 건너는 일과 같다고 시민들 또한 불안해하고 있었다.
하룻밤만 자고나면 동서남북을 관통하는 길이 새로 생겨나고, 몇 날 며칠을 무심코 지내다 보면 어느 틈엔가 매머드 같은 건물이 우리 곁에 불쑥 들어차는 상황의 연속. 그러다 보니 성취감보다는 심리적 위축감을 겪는 일이 더 잦아졌기 때문이다. 딸기 아이스크림이 맛 좋다고 주구장창 먹어댄 탓에 된장 맛을 잃어버린 우리 아이들이 불현듯 떠올랐다.
이러한 세태에 새로운 것이 늘 좋은 것만은 아니다 라고 귀엣 말로 읊조려 주는 동네 어른들은 오리무중 밖에 존재라도 하는 것인지. 대치와 대립의 틈 사이, 아니 이 세상 모든 경계에 꽃이 핀다는 시구에 중독돼 철부지처럼 살아가는 동안 오래된 집 한 채가 또 사라져버린 것이다.
코미디언 고 서영춘 씨가 간들 맞게 목 놓아 부르던 “인천 앞 바다에 사이다가 떴어도 고뿌 없이는 못 마신다.” 고 했던, 오늘날 칠성 사이다의 원조격인 ‘인천탄산’ 제조사의 건물이 어느 날 갑자기 황망히 사라져버렸다. 1905년에 지어진 일본식 건물이었지만 ‘인천탄산’이란 이름을 만방에 떨쳐 인경철도 객차의 옆구리에 ‘별표 샴페인 사이다’와 ‘인천탄산수제조소’ 상호를 자랑스레 붙이고 다녔던 원류를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물론 여기에도 ‘양날의 칼’ 법칙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왠지 이 시점에서 가슴이 싸하게 다가오는 허탈감과 모종의 패배감은 쉽사리 감춰지지 않았다.
하기야, 몇 년 전에도 이러한 일들은 종종 인천 연구자들에게 적잖은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던 문제였었다. 현재 근대건축전시관으로 활용하고 있는 18은행을 보더라도 그랬다. 18은행의 부속 건물로 사용됐던 목조 2층 건물은 개항 당시 일본 건축의 전형이라 할 만큼 보존이 잘 돼 있던 사무실 겸용 가옥이었다.
적산가옥을 접수해 개인적 용도로 사용된 이후 과정에서 필자가 목격한 이 건물의 변화 과정은 심드렁 그 자체였다. 무역사무소, 번역 사무실, 모 스탠드 바, 모 슈즈 살롱 등이 그것이었다. 그러나 근대건축물 지정과정에서 협상의 주체였던 구청과 류 모 씨의 거듭된 난항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철거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허탈감과 패배감의 근저는 이랬다. 우리민족 수난기의 상징들을 문화적으로 극복해 내지 못했다는 현재적 책임감이 그것이었다.
인천의 지형도가 급속도로 바뀌고 있다. 불편함을 벗어나고자 하는 갈망들이 수 없는 바벨탑을 만들어내 하늘을 찌르는 형국이 되었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 했던가. 절대 다수의 눈물을 섞어 만든 지상의 모든 경계에 그나마 처절함과 비애로 요약되는 인본주의가 사라질 위기에 처한 이즈음. 생식기능을 상실한 노새 한 마리가 등짐 하나 가득 뭔가를 싣고서 바다로 향하는 것을 보고 있다. 발기된 채. 아무도 더는, 어느 누구도 들어주지 않는 노랫가락으로 광장이 떠내려가라 외치던 늙은 카수의 배웅을 받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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