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길, 사람의 길
인천의문화/해반문화사랑회
2009-11-18 14:29:39
인천의 길, 사람의 길
이 종 복 시인, 향토사연구가
고산자 김정호 선생이 ‘대동여지도’에 묘사한 인천(제물)의 길은 그야말로 단출하기 짝이 없다. 서울에서 제물진으로 가는 길을 크게 두 갈래 길로만 묘사했기 때문이다.
더 이상 그릴 필요가 없었던 건지 아니면, 분첩으로 접고 다녀야 했기에 크기를 줄이기 위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기를 관둔 건지, 자세한 속셈은 알 수가 없다. 혹여 친구인 혜강 최한기 선생이 내내 입버릇처럼 사해세계의 광활함과 지도제작의 역설을 논하는 사이에 잠시 딴 맘을 먹고 있다가 그려야할 시점을 놓쳐버렸기 때문은 아닌지, 더더욱 그 내막을 알아낼 길이 없다.
여하 간에 인천에서 주안을 지나 부평을 지나는 길 하나와 인천에서 문학도호부를 지나 교주(橋舟, 배다리, 도장포 물길을 건너기 위해 배로 만든 다리)를 거쳐 부평 마장으로 지나가는 길을 대표적으로 그려 넣었을 뿐이었다. 물론 문학도호부 인근에서 주안을 가로질러 김포로 가는 사이길이 그려지기는 했다.
첫 번째 길은 이른바 경 인가도로 추정되는 오래된 길일 것이고 두 번째 길은 승학산 지류와 문학산 지류의 샛길로 추정되는 길이다. 길은 사람의 발길에 의해서 편의적으로 조성된 것이라 쳤을 때, 누군가 묵은 발자국을 더듬어 찾아내어 행려의 체중을 다시 실었을 때 비로소 길이 열리고 완성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길은 대부분 행정과 군사적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결정되는게 일반화된 사례이다. 결국 길은 사람이 만들고 길이 만들어짐으로 해서 다시 사람이 만들어지는 호환적 관계로 볼 수 있다.
인천의 개항은 인천에 처음 발을 디딘 떼 무리 일본인들에게 길의 편리성을 실험적으로 실천할 수 있었던 공간이었다. 우리보다 앞서 개항했던 과정에서 체득한 서구식 길의 본보기를 인천에서 재구성해 만들어보는 식이었다. 마치 요코하마 모토마치(元町)의 재현을 머릿속에 그리듯, 인천 영사관을 중심으로 깍두기처럼 닦아 놓은 현재 중구청 일대의 길이 그것이다.
신작로의 개념은 두 개의 정의가 한 몸으로 되어 있는 야누스처럼 근대시대 길의 정체성을 확실히 드러내 주고 있다. 새로움과 편리함의 이면에 깃든 문명화되고 세력화된 집단의 야욕이 쉽게 신장할 수 있다는 점이 신작로의 정체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난 역사의 이해 과정을 통해 증명됐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저들의 중심지에서 벗어난 최초의 신작로라고 떠벌리던 홍예문 길은, 인천 풍경을 담은 다수의 사진첩들 가운데 가장 많은 배경사진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후 신흥초등학교에서 해광사를 지나 부도유곽이 있었던 신흥 시장 길이 만들어지고, 다시 일본감리교회였던 금광교(현 신흥동 중앙교회) 옆으로 만들어진 이른바 긴담모퉁이길, 연이어 십 여 미터 이상을 깎아내려 만든 싸리잿길 등은 군사력으로 무장한 강제병합의 술수를 능란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길을 닦아준 거나 진배없는 통로라 말할 수 있다.
요즘 불거지는 길의 재편을 두고 인천의 길이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이미 동구 배다리 관통도로는 혓바닥이 마르고 닳도록 언죽번죽 떠들어 댔고, 남동구 일대는 자전거 도로의 느닷없는 신설로 자가운전자들의 원성을 높이 사고 있어 길의 길(道)로서 위신이 추락한 상태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문제는 ‘느닷없음’이다. 시행공고 및 시민대중의 소통구조가 빤히 있음에도 영화제목처럼 ‘어느 날 갑자기 내게 생긴 해프닝’인 거였다.
자전거 전용도로에 대한 개인적 숙원이 이처럼 비루하게 만들어지는 배경이 지난 제국주의자들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에 눈 꼬리가 시리고 아려온다. 시민을 위한 성실한 섬김과 다정한 소통 그리고 강인한 추진력을 보여주겠다는 위정자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흡사 신종 제국주의자의 위세와 다를 바 없이 독재(獨裁)의 가위를 휘두르는 모습에 이골이 날 정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딴죽 거는 게 아니다. 역사가 증명하는 인간의 모든 길은 자연스러움을 벗어났을 때 재앙이라는 역류 현상을 막아내지 못한다는 것을 일갈하고 싶어서였다. 최근 독일의 ‘막스 플랑크 생물학연구소’에서 내 놓은 한 연구결과가 유독 눈에 들어온다. 길을 잃었을 때, 인간은 제 주위를 원을 그리듯 반복해서 돌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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