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윤식의 인천이야기

(61) 인천시립박물관

by 형과니 2023. 6. 11.

(61) 인천시립박물관

인천의문화/김윤식의 인천 재발견

2010-04-02 15:48:22

 

몽골서 온 매머드 상아 '생뚱맞은' 개관식 전시

(61) 인천시립박물관

 

 

인천시립박물관이 문을 연 것은 194641일이다. 그러니까 바로 어제가 개관 64주년이 되는 날이다. 작년 11월에 작고하신 이경성(李慶成) 선생이 초대 관장이 되어 불과 6개월의 준비 끝에, 시립(市立)으로서는 국내 최초로 문을 연 것이다. 박물관 자리는 중구 송학동 11번지, 옛 세창양행 숙사 건물이었다.

 

개관 당시에 진열된 유물은 386(토기 47, 도자기 53, 사기 3, 석기 28, 서화류 19, 목기 2, 잡류 96, 금속류 25, 골각류 1)에 달하였는데, 이것은 이 관장이 6개월간의 개관 준비 기간 중 널리 유물을 수집하기에 온갖 노력을 다하였음은 물론 일인 소유 미술품의 접수, 기증, 권유에도 주력한 노력이 크게 작용했다.

 

맘모스 상아 화석. 사진제공=인천시립박물관

 

당시 시립박물관은 서울 국립민족박물관과 국립박물관의 지원을 얻어 진열품의 충실을 기하고, 또한 서울 독지가 장석구의 기부 또는 기증을 받아 초창기의 토대를 쌓았다. 194594일에 국립민족박물관으로부터 진열품 75점을 차용하고, 동년 913일에는 국립박물관으로부터 진열품 19점을 차용하였으며, 동년 12월에는 장석구로부터 현금 20만 원의 기부와 20만 원 상당의 진열품을 기증받았던 것이다.”

 

인천시사의 기록인데 진열품을 빌려오랴, 기부금을 얻어오랴 개관 상황이 상당히 급하고 궁색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중에도 당시 서울신문 48일자에 실려 있는 시립박물관 개관 기사는 그 내용이 재미있다. 다른 진열품보다도 유독 매머드 상아에 대해서만 특별히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천시립박물관은 41일 성대한 개관식을 거행하였는데 동 박물관의 진열품 중에는 세계적 희귀한 진품이 적지 않은 중에서도 주목을 끄는 것은 매머드라는 상아(象牙). 이것은 5만 년 전 세계의 생물체인 코끼리의 어금니로서 8·15 이전 일본군이 몽골로부터 저의 나라로 가져가던 도중 인천 항구에 이르러 8·15를 만나 이 박물관에 나타난 것이다. 이것은 전 세계를 통하여 10수 개에 지나지 않는 귀한 것이라고 한다.”

 

그나마 인천시립박물관이 이 상아를 소장하게 된 것은 다행한 일이라고 하겠지만, 한편 몽골에서 온 매머드 상아를 진열했던 것은 좀 생뚱맞은 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이 거대한 상아가 그런 연유를 가지고 있었고, 또 그렇게 희귀한 것인지는 모른 채 처음 관람한 것이 1960년 봄. 그때는 이미 지금의 구 제물포구락부건물로 박물관이 옮겨와 재개관한 뒤였다.

 

첫 박물관 자리는 6·25 중에 파괴되었고, 그와 관련한 이 관장의 공로에 대해서는 최성연(崔聖淵) 선생이 개항과 양관 역정에서 이렇게 찬사를 보내고 있다.

 

끝으로 특기할 것은 인천박물관장이었던 이경성 씨는 6·25 동란 중 무도한 괴뢰군의 눈초리를 피해가며 소장품 전부를 안전한 처소에 은닉하였기 때문에, 향토 인천의 출토 석기 등을 위시로 3백여 점의 귀중한 이 나라 역사적 유물을 오유(烏有)의 참변으로부터 모면케 한 것은 참으로 불행 중 다행이라 하겠으며, 신변의 위험을 무릅쓰고 적절한 조치를 감행한 이 관장에게 진심으로 꽃다발을 올리지 않을 수 없다.”

 

지금도 궁금한 것은 어째서 우리 인천에 전국 최초의 시립박물관이 들어선 것일까 하는 점이다. 광복 직후인 194641, 혼란과 격류와 무분별의 사회 형편에서 과연 무엇이 우리 인천 땅에 박물관 문부터 급히 열게 했던 것일까. 그것은 영원한 인천인 우현(又玄) 고유섭(高裕燮)으로부터 발원한 문화 의식과 정신이 이경성 관장에게 흘러내린 때문이 아니었을까. 김윤식·시인/인천문협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