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우측보행 관습’ 日帝 강제로 바꿔
인천의문화/김윤식의 인천 재발견
2010-04-02 15:44:15
(59) 우측보행 관습’ 日帝 강제로 바꿔
보행자의 우측통행은 지난해 10월 1일 시범 실시되었다. 전국 476개 철도역, 670개 지하철역, 15개 공항이 시범 대상 장소가 되었다. 정부가 보행자의 안전을 고려하고 세계적인 보행문화 추세에 맞춰 개선 계획을 확정한 것이다.
특히 보행 속도가 증가하고 사고가 감소한다(20% 정도 감소한다는 주장이 있다)는 것이 국토부의 우측보행을 추진하는 핵심 주장이다.
그러나 몇몇 교통 관련 단체는 이에 대해 우측보행 규제는 ‘국민을 괴롭히는 조치’일 뿐으로 사고 감소 등의 수치가 근거 없는 것이라고 항변이다. 과연 양측의 주장 어느 쪽이 옳은지는 알 수 없으나 시행 몇 달 동안 보행자들이 다소 혼란을 느꼈던 것은 사실이다.
우리나라가 보행자의 좌측통행을 규정한 것은 1921년 일제에 의해서 였다. 1921년 10월 25일자 동아일보 기사를 보면 “조선에서 지금까지 실행하던 도로의 우편으로 통행하는 제도는 가까운 중국과 일본에서 실행하는 제도와 정반대가 되기 때문에 실제에 적지 아니한 불편이 있는 까닭에 왼편쪽 좌측통행 제도로 제정하자는 공론이 당국자 사이에도 일찍이 큰 문제가 되어 있었고 민간에서도 이에 대한 연구가 적지 아니하여” 새롭게 좌측통행을 결정했다는 내용이 실려 있는데, 1921년 10월 24일 총독부 경무국에서 법령 개정을 발표를 하고, 11월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간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는 애초에는 우측보행 관습을 가지고 있었는데 1921년 11월부터 일제에 의해 좌측보행으로 바뀐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강제로 바꾼 뒤에 일제는 좌측통행 홍보를 위해 별의별 수단을 다 쓴 것 같다.
소학교 생도들에게는 종이로 된 선전 기를 나누어 주고 “체조를 하거나 유희를 할 때” 사용하여 가정과 학교에 홍보하고, 인쇄물에는 “좌측통행이라는 표어를 기록하여 정거장이나 연극장 기타 요릿집 등 다수한 사람들이 모이는 데에 게시”하여 선전하는 한편, 11월 1일부터 “시내에 있는 인력거나 자동차나 전차나 화물차나 무엇이든지 사람이 타거나 끄는 모든 바퀴 달린 차에는 좌측통행이라는 기를 배부하여 일제히 달게 할” 계획도 발표하고 있다. 물론 경찰서 앞에 선전탑도 빼놓지 않고 세우고 있다. 문제는 전차인데 전차가 우측통행을 해 온 까닭에 그 궤도 등 설비를 온통 바꾸어야 한다는 점까지 지적하고 있다.
이 같은 ‘소동’이 인천에 전파되지 않으란 법이 없으니, 인천도 한바탕 좌측통행 선전 운동을 벌인다. 그 내용은 역시 1921년 12월 4일자 동아일보에 “인천 좌측통행 선전”이란 제하에 기사가 실려 있다.
“거 1일에는 전 조선을 통하여 좌측통행의 선전을 하게 되었으므로 인천시에서도 당일 오전부터 모든 수레에는 선전기(宣傳旗)를 꽂고 경관들은 도로에 서서 좌측통행을 인도하였으며 오후 1시에는 상업은행 전(前) 광장에 집합한 각 소학교 생도 등이 선전가(宣傳歌)를 고창하며 주요한 도로로 행렬 순회하였고 기타 자동차, 자전거, 인력거 등의 장식(裝飾) 행렬 또는 우육상조합(牛肉商組合)의 생우(生牛) 행렬이 일기관(一奇觀)이었다더라.”라는 내용이다. 1921년 무렵에 소학교를 다닌 분이라면 이 노래를 기억할 터이나 지금은 거의 다 타계하고 안 계실 듯싶다. 일본이든 어디든 혹시 그 ‘선전가’ 구절이 남아 있지 않을까 자못 궁금하다.
일제시대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제도를 바꾸었으면, 그리고 그 제도가 옳고 바른 것이라면 좀 더 확실한 선전과 홍보를 통해 지하철 계단에서의 통행자의 뒤엉킴이라도 막아야 할 것이다.
김윤식·시인/인천문협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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