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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광철의 전망차

이종화 공립병원장

by 형과니 2023. 6. 14.

이종화 공립병원장

인천의문화/오광철의전망차
2010-09-28 05:20:18

 

인천신문 연재물 김윤식 시인의 인천산책사진자료중에 공립병원이란 간판을 보고 반가웠다. 신흥초교에서 답동광장 그리고 인천우체국을 향한 거리풍경-키네마극장 자리의 외환은행이 건립되기 이전이니 아마도 1960년대초 사진들인듯 하다. 그때 이 도로를 5·16도로라고 했었다. 전쟁의 폐허를 걷어내고 군인시장이 권총 차고 개설했다고 해서 그렇게 불렀었다.

 

그 이전 검진 지정병원이던 공립병원은 내동 중소기업은행 곁에 있었다. 이종화(李宗和) 원장이셨다. 그분은 때때로 사진기를 들고 촬영을 다니셨다. 그의 소책자 문학산은 귀중한 자료로 남아있지만 또한 그가 출판한 인천사진문화사는 별로 아는 사람이 없다. 그것을 펴보면 인천의 사진작가 이름들이 줄줄이 나오는데 오래된 책자여서 인쇄조차 희미하다. ‘인천신문을 게재한 경기연합일보에 연재했던 것을 조한길 시인이 편집했었다.

 

이원장은 당시 인천신문에도 연재물을 투고하고 있었다. ‘행림낙수(杏林落穗)’란 제호였는데 제목의 뜻처럼 의료계에 종사하면서 있었던 사건들을 독특한 필치로 회고담을 집필, 독자들에게 회자 되었었다. 그시절 인천에서 대규모 폭발사고가 있었는데 소위 답동화약공장 폭발사고였었다. 현장에서 10명이 사망하고 50여명이 화상을 입었으나 시일이 지나면서 사망자가 늘었다. 피해자는 거의가 어린이였으며 그중에 세발자전거를 끌고 나온 어린이도 있었다. 그 주간의 행림낙수에서 이원장은 세발자전거 타고 원퉁이 고개를 넘어라고 원고를 써서 독자들의 심금을 울렸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공동묘지가 원퉁이고개 너머에 있었던 것이다.

 

사진가인데다 행림낙수의 인기로 인해 그분은 예총지부장이 될수있었다고 전한다. 초대와 3대지부장으로였다. 당시 예총회관은 율목동 도서관에서 병원 맞은편 시립공보관으로 내려와 있었다. 그후 편집책임자가 된 전망차자는 여러번 행림낙수를 다시 연재하려고 필진을 물색했으나 찾지 못하고 수원역전의 박모 소아과원장이 몇회 집필했었다.

 

지상의 병원간판 사진을 보면서 원장님!”하고 외쳐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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