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영화는 영화다
인천의문화/인천배경책과영화&문학
2011-08-31 13:34:25
인천대교 배경으로 두 남자의 '현실같은' 갯벌 격투
[영화, 인천을 캐스팅하다] 19. 영화는 영화다
'영화는 영화다'라는 동어(同語) 반복의 제목은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라는 설법을 떠오르게 한다.
'영화는 영화다'는 '영화'와 그 대립물인 '현실'을 충돌시키며 영화가 무엇이고 현실이 무엇인지 깨달음을 도출하는 영화다.
마치 몸싸움으로 점철하는 액션영화에 어떤 '성찰'을 요구하는 영화다.
두 남자가 있다. 한명은 중간 보스급 깡패(소지섭)고 다른 한명은 스타급 액션배우(강지환)다. 전자는 후자의 삶을 살기는 어렵지만, 후자는 스크린에서 가상으로나마 전자의 삶을 살아볼 수 있다. 배우 장수타는 지나치게 다혈질이고 폭력적이다. 영화배우가 되지 않았더라면 강패 정도의 깡패가 되었을 사람이다. 출연하는 영화의 액션신에서 욱하는 성질을 참지 못해 상대 배우를 무참히 폭행한다. 어떤 배우도 깡패 같은 배우 수타의 상대역으로 나서지 않아 영화는 제작 중단 위기에 처한다. 그는 궁여지책으로 룸싸롱에서 우연히 만나 사인을 해주며 알게 된 조직폭력배 넘버 투 이강패를 찾아가 영화 출연을 제의한다.
한때 영화배우를 꿈꾸기도 했던 강패는 수타의 제안에 흥미를 느끼며 출연에 응한다. 대신 한 가지 조건을 내건다. 액션신은 연기가 아닌 실제 싸움을 하자는 것. 깡패 못지않은 ‘한 성질’하는 수타도 이 조건을 흔쾌히 받아들인다. 바로 두 사람의 치열한 전쟁과도 같은 영화 촬영이 시작된다. 옷차림은 블랙과 화이트로 정반대다. 마치 바둑판 위의 흰 돌과 검은 돌이 충돌하듯 팽팽한 대국이 벌어진다.
수타는 스타로서의 자의식이 팽배한 자로 영화를 현실세계로 끌고나와 산다. 그의 생활 세계는 영화로 잠식되어 있다. 반면 강패는 한때 배우를 꿈꾸었고 홀로 극장을 찾는 영화광이지만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리얼’ 액션의 세계에 산다. 분장도 필요 없이 실제 모습 그대로를 가지고 영화로 들어온다.
주먹과 연기라면 자신있는 두 남자는 처음에는 카메라 안팎에서 사사건건 충돌하지만, 촬영이 막바지로 달려갈수록 서로에게 물들고 조금씩 닮아간다. 수타는 ‘영화→현실’이며 강패는 ‘현실→영화’이다. 이렇듯 ‘영화는 영화다’는 ‘영화-현실’의 대립개념을 충돌시키며 그 경계를 끊임없이 질문하는 영화이다.
영화 속의 ‘감독’은 코믹하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실제 영화의 감독(장훈) 대신 영화 속에서 들어와 영화와 현실이라는 두 개념의 격돌을 중계하는 역할을 한다. 그는 배우들에게 “좀 리얼하게 못하나?”하고 주문한다. “리얼하다”며 좋아하다가 진짜임을 알고 “진짜 때리면 어떡해? 이건 영화야”라고 말한다. 그는 영화를 ‘진짜처럼’은 좋지만 ‘진짜’는 곤란한 이중구조로 이끌어 간다.
‘영화는 영화다’는 장훈 감독의 데뷔작이다. 원작은 장 감독의 스승인 김기덕 감독이 썼고 그는 제작자로도 참여했다. 장훈과 김기덕. 최근 이 두 사람의 관계가 영화보다 더 흥미롭게 전개되고 있다. 마치 강패와 수타처럼. 무대는 지난 5월13일 프랑스의 칸에서 펼쳐졌다. 김기덕 감독의 ‘아리랑’은 64회 칸국제영화제 공식 부문인 ‘주목할 만한 시선’에 올라 현지에서 시사회를 가졌다. 그는 시사회 뒤 기자회견을 통해 장훈 감독이 자신을 “배, 배, 배신했다”고 털어놓아 영화계를 벌집 쑤셔놓듯 했다.
장훈 감독은 스승의 오랜 콤플렉스였던 비흥행성을 딛고 일어선 ‘신통방통한’ 제자였다. ‘영화는 영화다’가 무려 130만 관객을 끌어들이면서 김기덕의 최고 흥행작 ‘나쁜 남자’(74만 명)의 성적을 두 배 가까이 넘어섰던 것이다. 그 뒤 구체적인 이야기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두 감독은 영화 한 편을 함께 만들기로 하고 투자배급사와 협의하던 중 헤어지게 되었다. 장훈은 스승과 결별하고 ‘의형제’를 연출해 관객 540여만 명을 모으면서 ‘스타감독’의 자리에 올랐다. 최근엔 100억 원이 넘는 제작비를 들인 블록버스터 ‘고지전’을 연출했다. 김기덕과 장훈, 그 둘 사이에서 영화는 그야말로 영화일 뿐이었다.
‘영화는 영화다’는 인천에서 중요한 신들을 촬영했다. 개봉하는 2008년 그해 5월부터 7월까지 모두 다섯 차례 촬영이 이뤄졌다. 자동차 추격이 벌어지다 전복 사고가 난 장면을 담은 공항남로를 비롯해 영종도 삼목선착장과 선녀바위해변 그리고 인천 교직원수련원 등이 무대로 펼쳐진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시퀀스는 인천대교를 배경으로 한 갯벌 격투 장면이다. 둘은 누가 강패이고 누가 수타인 지 전혀 분간되지 않을 정도로 개흙에 엉겨 붙어 끈덕지게 싸운다. 말그대로 ‘이전투구’를 벌인다.
이 장면을 촬영할 때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물때를 맞추는 것이었다. 바다는 하루에 두 번 달의 힘에 의해 자
신의 벗은 몸을 보여준다. 밀물 시간을 피해야했기 때문에 배우와 스태프는 식사마저 거르며 촬영을 강행군했다. 광성중과 광성고를 나온 인천출신 배우 소지섭은 오랜만에 자신의 고향 바닷가에서 갯벌과 한몸이 되어 원 없이 연기했다.
촬영현장에는 스태프보다 일본팬 특히 아줌마 일본팬들이 더 많았다. 그들은 오로지 소지섭을 보기위해 비행기에 몸을 싣고 현해탄을 건너왔다. 한국말로 ‘오빠’를 외치며 갯벌에 뒹구는 소지섭을 보며 안타까워했다. 소지섭은 갯벌에서의 멋진 액션을 마무리하고 개흙을 뒤집어 쓴 채 걸어 나오며 아줌마들을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아줌마들은 그대로 거의 실신상태로 넘어갔다.
갯벌 격투 장면의 배경에는 인천대교의 모습이 희뿌옇게 보인다. 당시 다리는 끊어져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아직 상판이 연결되지 않은 상태였다. 끊어진 모습은 마치 도달할 수 없는 현실과 허구의 세계를 비유하는 듯 보였다. 일부러 일정을 맞추진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갯벌 위의 미완성 다리 모습은 포스터로도 멋지게 사용되었다.
인천대교는 2005년 12월 영국 건설전문지 컨스트럭션 뉴스지에 의해 ‘경이로운 세계 10대 건설’로 선정돼 개통 전부터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영종도와 송도국제도시를 연결하는 총연장 21.38㎞의 다리로 사장교 형식으로는 세계에서 4번째로 길다. 2005년 7월 착공하여 4년 4개월 만인 2009년 10월 완공하였다.
인천대교의 하이라이트는 주탑이다. 역Y자 모양의 2개 주탑 높이는 238.5m로 여의도 63빌딩의 높이에 육박한다. 주탑과 상판을 연결하는 208개의 케이블은 마치 기하학을 적용한 세밀한 계산에 의해 정밀한 시공방법으로 그 간격과 길이를 맞춰 지진과 강풍에도 손색없게 설계됐다. 케이블의 굵기는 최소 9.7㎝에서 최대 15,3㎝에 불과하지만 케이블 하나가 2000t의 무게를 견딜 수 있을 만큼 강력하다. 한반도 관측사상 최대풍속으로 유명한 태풍 매미의 풍속을 능가하는 72m/sec 강풍에 대비했다. 선박이 10노트의 속도로 10만톤급의 무게로 다리에 충격을 주었을 경우, 또 리히터 규모 7의 지진 등 사고와 천재지변에 대비해 안전성에 비중을 두고 설계했다.
어제부터 인천대교가 밤에 더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인천경제청은 시비 32억원을 들여 사장교 1.5㎞, 접속교 1.8㎞ 등 3.3㎞ 구간에 야간 조명기기를 설치했다. 사장교 케이블에는 176개의 ‘컬러체인저’를 설치했고 접속교 아치 거더부에는 조명 600개를 추가로 달았다. 기존 조명보다 눈부심이 적고, 다리의 곡선미를 최대한 살릴 수 있도록 설계했다. 이같은 조명 설비로 인천대교는 과거 백색조명 중심의 연출에서 벗어나 다채로운 빛깔을 낼 수 있게 됐다.
밤이 되면 인천대교의 빛깔은 하늘과 바다와 육지에서 조망할 수 있다. 밤에 비행기로 인천국제공항에 오는 국내외 승객들은 영국의 런던브릿지, 호주의 하버브릿지와 같은 멋진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 크루즈를 타고 인천항에 입항하는 관광객들도 인천대교의 환상적인 빛깔을 볼 수 있다. 송도국제도시와 해안도로 등 인천 연안 지역의 시민들도 인천대교의 입체 조명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인천대교를 타는 사람들은 대부분 인천국제공항을 가기 위해서 바다를 건넌다. 공항을 통해 나라 밖으로 나가는 사람들은 비행기 안에서 잠시나마 ‘영화’와 같은 시간들을 꿈꾼다.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지낸 그들은 다시 공항을 통해 들어와 인천대교를 건너며 ‘현실’로 돌아온다. 이렇듯 인천대교는 ‘영화는 영화다’ 처럼 현실과 영화의 경계선이기도 하다.
‘영화는 영화다’에서 가장 오래 잔상이 남는 것은 갯벌에서의 싸움이다. 갯벌은 바다인가 땅인가. 물이 차면 바다이고 빠지면 땅이 되는 곳이 갯벌이다. 갯벌은 바다와 육지의 경계이자 현실과 허구의 경계이다. 강패와 수타는 그 공간에서 현실처럼, 허구처럼 그렇게 싸운다. 마지막에 육지로 걸어 나온 것은 수타였다. 강패는 갯벌에 눕는다. 수타는 현실세계로 나오지만 강패는 결국 비극으로 끝나는 자신의 영화 속에 그대로 남는다.
갯벌에 누운 강패 눈에 뭐가 들어 왔을까. 스크린에 비춰지진 않았지만 그는 분명 인천 하늘을 높이 나는 한 마리의 갈매기를 보았을 것이다. 유동현 굿모닝 인천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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