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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기,라디오 소리로 혼빼다

by 형과니 2023. 6. 22.

유성기,라디오 소리로 혼빼다

인천의관광/인천가볼만한곳

2011-12-23 12:59:45

 

유성기, 라디오

소리로 빼다

 

 

글 조우성 시인·인천시 시사편찬위원 사진 홍승훈 자유사진가

 

 

독일제 녹음기(유성기).

19세기 말 제품이다. 거울이 달렸고, 문짝을 열면 나무스피커가 내장되어 소리를 냈다.

 

근대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왔을까? 그것은 소리의 형태로써 우리의 귀에 속삭이면서 서서히 자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문명개화라는 시대적 명제와 쉽사리 뿌리칠 수 없는 청각적 향기에 조선 백성들은 얼마나 당황해 하면서 그에 빠져들었을까?

 

18999, 집채보다 더 큰 화륜거(火輪車)가 하늘을 찌를 듯한 기적소리와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경인선을 달리는 위력적인 힘에 전율했을 터이고, 19023월 민간에 첫 선보인 덕률풍(德律風·전화)’을 통해 들려오는 귀신 곡할 신묘한 소리에 적이 놀랐으리라.

 

그런가 하면 사과상자보다 큰 라디오 속에는 필경 소인국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어림없이 믿었던 것이 조선 백성들이었다. 그렇듯 근대의 소리는 걷잡을 수 없이 문명개화라는 이름의 물결이 되어 밀려들어 왔다.

 

1926년 경성방송국 발족, 216일 첫 전파

 

그러나 근대의 소리는 가장 강력한 계몽 수단으로서 무장되어 일상화되어 갔다. 그 대표적인 예가 라디오 방송(放送)이었다. 이 땅 최초의 방송은 192611월 사단법인 경성방송국(JODK)이 발족되고, 이듬해 216일 첫 전파를 띄움으로서 출발하였다.

 

이때의 출력은 불과 1KW였고, 호출부호는 일본 것을 그대로 가져다 썼다. 일본 도쿄 방송이 JOAK, 오사카 방송이 JOBK, 나고야 방송이 JOCK, 그 다음 경성방송국이 JODK였다. 이는 일제가 한반도 침탈의 가장 강력한 도구로써 소리를 사용하기 위해 얼마나 공을 들였던가를 알 수 있게 하는 예이다.

 

주목할 것은 일제가 우리 스스로의 소리를 가로막았다는 점이다. 192412월 당시 조선일보, 동아일보사 등 단체, 개인 등 모두 11곳에서 민간 방송국을 설립하려 했지만, 총독부는 이를 모두 막고 경성방송국의 문만 열게 했다. 소리를 내지 못하게 입을 틀어막았던 것이다.

 

그러면서 일제는 일방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소리의 보급에 열을 올렸다. 자동차, 전차, 일력거가 오가는 거리의 쇼윈도나 다방에서 귀물 대접을 받았던 유성기가 그것이다. 1908년 미국의 빅타(Victor) 사를 필두로 컬럼비아, 오아시스 등 여러 나라 회사들이 만들어 낸 유성기와 음반들이 들어와 큰 인기를 끌었다.

 

고일 선생의 인천향토사 유저 인천석금주명기 형제가 신포동 닭전거리에 주단포목점을 냈던 무렵, 손님 끄는 방법으로 인천 최초로 유성기를 틀어놓았는데, 명창과 가수 등의 노래를 듣기 위해 연일 시민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는 대목은 바로 그 같은 정황을 말해 주는 것이라 하겠다.

 

19세기 말 미국제 나팔 녹음기로 미국 빅타사에서 만들었다.

 

응봉산의 정오를 알리던 오포

 

유성기판에는 더불어 체조 구령도 들어 있었다. 아침마다 학교에서는 국민계몽 차원에서 이를 틀어 체조를 시켰다. 건강한 황국신민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는데, 이 유성기의 보건체조는 후에 라디오 체조로 변형되어 1970년대까지 행해졌다. 끈질기게 이어진 소리 가운데 하나였다.

 

이 말고도 대표적인 근대의 소리가 또 있다. 우리나라 최초로 하루 24시간을 두 단위로 나누어 활용키 위해 대포로써 정오를 알렸던 인천 응봉산의 오포(午砲)가 그것이다. 오포의 후속으로 지금의 홍예문 근처에 설치됐던 사이렌도 그와 유사한 기능을 가진 소리의 하나였다. 온 시내가 떠나가도록 정오와 통행금지 시간인 자정을 알렸고, 학교나 공장의 소규모 사이렌은 과업의 시작과 정지를 정확하게 지켜야 했던 군국주의적 소리였다.

 

개화문명 혹은 군국주의 광기에 실려 들어온 소리들은 그렇듯 우리 근대의 명암 속에 점철되었던 기억의 모자이크다. 더불어 시공적 한계를 넘어 일상을 확대시켜 가면서 인간적 욕망을 확대해 간 측면 또한 없지 않았다. 그 대부분이 인천 제물포 개항장에서 비롯된 것들인데, 그것들이 오늘날 어떻게 변형되어 삶을 바꾸어 놓았는지는 오늘 우리가 실증적으로 체험하는 바와 같다.

 

별난 역사, 별난 물건 시리즈에 게재된 소리 관련 기기 물건 및 사진은 중구 차이나타운에 있는 <인천근대박물관>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곳엔 희귀한 근대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관람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관람료는 성인 2천원, 학생 1천원. 문의 764-19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