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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장환 : 해항도(海港圖)

by 형과니 2023. 7. 2.

오장환 : 해항도(海港圖)

인천의문화/인천배경책과영화&문학

2019-08-19 22:16:37

 

https://youtu.be/U-D7gAEsT58?si=itZMSa1gSgeiMFJ6 

 

낭독 - 김 현관

 

 

오장환 : 해항도(海港圖)

 

폐선(廢船)처럼 기울어진 고물상옥(古物商屋)에서는 늙은 선원(船員)이 추억(追憶)을 매매(賣買)하였다. 우중중한 가로수(街路樹)와 목이 굵은 당견(唐犬)이 있는 충충한 해항(海港)의 거리는 지저분한 크레용의 그림처럼, 끝이 무디고. 시꺼먼 바다에는 여러 바다를 거쳐온 화물선(貨物船)이 정박(碇泊)하였다.

 

값싼 반지요 골통같이 굵다란 파이프. 바다 바람을 쏘여 얼굴이 검푸러진 늙은 선원(船員)은 곧잘 뱀을 놀린다. 한참 싸울 때에는 저 파이프로도 무기(武器)를 삼아왔다. 그러게 모자(帽子)를 쓰지 않는 항시(港市)의 청년(靑年)은 늙은 선원(船員)을 요지경처럼 싸고 두른다.

 

나폴리(Naples)와 아덴(Aden)과 싱가포르(Singapore). 늙은 선원(船員)은 항해표(航海表)와 같은 기억(記憶)을 더듬어본다. 해항(海港)의 가지가지 백색(白色), 청색(靑色) 작은 신호(信號), 영사관(領事館), 조계(租界)의 각가지 깃()발을. 그리고 제 나라 말보다는 남의 나라 말에 능통(能通)하는 세관(稅關)의 젊은 관리(官吏). 바람에 날리는 흰 깃()발처럼 Naples. Aden. Singapore. 그 항구(港口) 그 바의 계집은 이름조차 잊어버렸다.

 

망명(亡命)한 귀족(貴族)에 어울려 풍성(豊盛)한 도박(賭博). 컴컴한 골목 뒤에선 눈자위가 시푸른 청인(淸人)이 괴춤을 훔칫거리면 길 밖으로 달리어간다. 홍등녀(紅燈女)의 교소(嬌笑), 간들어지기야. 생명수(生命水)! 생명수(生命水)! 과연(果然) 너는 아편(阿片)을 가졌다. 항시(港市)의 청년(靑年)들은 연기(煙氣)를 한숨처럼 품으며 억세인 손을 들어 타락(墮落)을 스스로히 술처럼 마신다.

 

영양(榮養)이 생선(生鮮)가시처럼 달갑지 않는 해항(海港)의 밤이다. 늙은이야! 너도 수부(水夫)이냐? 나도 선원(船員)이다. 한 잔, 한 잔, 배에 있으면 육지(陸地)가 그립고, 뭍에선 바다가 그립다. 몹시도 컴컴하고 질척거리는 해항(海港)의 밤이다. 점점 깊은 숲속에 올빼미의 눈처럼 광채(光彩)가 생()하여 온다.

 

 

 

 

-海港圖(시인부락, 1936.12) 중에서 -

 

위의 시는 늙은 선원의 항해담과 그 얘기에 몰두하는 항시의 청년들의 모습과 그들을 에워싸고 있는 항구의 풍경들에 대한 묘사로 이루어져 있다. 늙은 선원을 요지경처럼 싸고 두르는 청년들의 모습에는 시적 화자의 항구에 대한 기대가 내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기대감은 컴컴한 골목 뒤의 풍경에서 무너져 버린다. “망명한 귀족에 어울린 풍성한 도박”, “괴침을 훔칫거리는 淸人”, “홍등녀의 嬌笑에 의해 퇴폐적이고 타락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항구의 뒷골목에 대한 풍경들은夜街(시인부락, 1936.11)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묘사되고 있다.해항도夜街는 비슷한 시기에 창작되었는데 그래서인지 시어나 이미지에서도 유사한 점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항구의 퇴폐적인 모습을 묘사함에 있어 오장환이 빠뜨리지 않는 인물이 있다면 매음녀(기녀, 홍등녀, 매음부, 계집)’이다. 이것은城壁에 등장하는 여성인물의 공통적인 특징이기도 하다.11) 그렇다면 오장환은 왜 여성인물의 성격을 매음녀 등의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는가. 그 첫째 이유는 항구의 퇴폐적인 분위기를 극대화함으로써 새로운 만남의 세계 역시 부정의 편력’12) 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여성인물을 남성과 상대적으로 유형화하여 여성을 남성의 쾌락의 도구로 치부하려는 것이다. 남성에 대한 쾌락적 도구로서의 여성이 상징하는 것은 당시 사회의 남녀간 계급적 위상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전통부정과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에서 비롯되는 상실의식, 그에 대응하는 퇴폐적이고 위악적인 몸부림은城壁이 간행되던 시기에 나타난 오장환의 시적 경향이라 하겠다.

 

오장환의 시적 편력과 비판적 인식중에서 이 원 규 (박사과정수료) blog.daum.net/alzade57/1795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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