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이 담긴 詩 ⑤ 최 병구의 월미도
인천의문화/인천배경책과영화&문학
2021-08-18 15:41:37
인천이 담긴 詩 ⑤
최 병구의 월미도
글·김학균 시인
비온 뒤의 하늘은 가을이라서 그런지 더 맑다. 장화를 신지 않고 걷기에는 힘든 학익동 구치소 가는 길, 새로이 길을 내느라 황토 흙이 발에 들러붙어 천근만근이다. 불미스럽게 연루된 K중고교의 서무과 도난사건으로 학익동 구치소, 속칭 붉은 돌담집에 잠시 들어앉게 된 최병구 시인이 출소하던 날의 고통.
동구 재향군인회 황 회장과 손설향 그리고 선생의 부인 손 여사와 필자 이렇게 네 사람이 간단한 출소식(두부 먹는 일)을 마치고 들른 곳은 학익동 도살장 인근 대포집. 술은 이럴 때 참으로 안성맞춤이다. 이때부터 최병구 시인의 소문은 ‘돌았어 돌았나봐’로 인천이 술렁거렸다. 그러나 모르는 사람들의 입방아였지 정작 먼저 보낸 아들(대혁)을 잊지 못한 몸부림인 것을 알기나 했을까.
송학동 이당기념관. 여름을 보낸 지 눈 깜박할 사이이건만 서늘했다. 선생의 49제 몇몇 지인들끼리 마련한 추모제라 해야 할 것 같다. 딸 숙희, 외손자 등의 가족과 손설향, 고촌(화가, 작고), 김윤식(현 문협회장) 그리고 필자 등 30여명이 모였다. 사람들은 다 어디갔을까. 살아있을 때 말 많던 그 사람들 말이다. 참아도 참아도 흘러내린 눈물, 아마 그때 참석한 사람들의 눈물이 장강을 이뤘다고 표현한다면 믿을 사람 있을까. 참으로 슬픔의 두께가 엄청났었다. 고인이 된 손설향 시인은 열흘을 몸살앓이 하며 최병구 시인을 잃은 슬픔을 토해냈다.
24년생, 호는 성문(聲文). 경기도 용인에서 출생한 최 시인은 해방되었을 쯤에 인천으로 이주해 인천시청에 근무했다. 동인회(초원)활동을 시작으로 문학에 입문, 51년 이후 본격적으로 글을 써 57년 자유문학에 ‘시인과 여인’을 발표, 1회 추천을 받으며 늦깎이 시인으로 데뷔했다. 그 이듬해 다시 동일 문예지에 ‘나무’ 등을 내놓고 명실상부한 시인으로서의 길을 재촉하였다. 그 전에 이미 ‘인천문학’의 동인지를 주간하며 문학의 토양을 다진 인물로 언론계에 종사하며 종횡무진 인천을 위한 인천 문사로서 몫을 다한 시인이었다.
한국일보 문화부장, 전시에는 대한신문 특파원, 시사통신, 경기연합, 경인, 경기일보 논설위원 등을 지낸 언론에서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하지만 문인의 길 또한 소홀함이 없었다. 59년 4월 15일 ‘님의 말씀’등 주옥같은 시 31편을 수록한 「원죄근처」(법문각, 57판 98쪽)를 상재, 자연을 인간상황으로 치환하려는 깊은 심미안을 표출하였다.
‘인천문학’, ‘중앙문학’ 등을 발간해 문학의 폭을 넓혀 갔다. 외롭고 불우한 한 사람으로서 무늬만 시인인 사람과 달리 순정의 시인으로서 암울한 시대에 태어나 고통의 세월을 산 시인이었지만 그가 심은 묘목은 오늘날 인천문학의 숲을 이루게 했던 것이다.
인천문협회장, 시분과 위원장을 지내며 경기도 문화상(문학부분, 66년)을 수상하기도 한 시인은 도원동 산마루 판자집에서 간암으로 58세에 상주없이 재로 갔다. 「버리고 간 노래」(유고시집, 81년 출간)처럼….
월미도
미친년 산발(散髮) 같이 살아 온 생활
해 저문 항구에는
항구라는 곳이 무엇인가를
아는 사람만이 남아서
고별과 항해와 정박을 생각한다.
평생을 바다와 월미도를 바라보며
그 한숨을 해풍에 날리며 살아온 사람들
안정된 생활의 영일(寧日) 없어도
소년들의 해변을 즐거워 뛰며 자랐다.
청관거리 늙은 중국인은 한가로이
콧구멍을 쑤시고
생선 양동이를 머리에 인 여인들은
낙엽지는 항구의 거리를 총총히 달린다.
제 고장이면서 제 고장이라고
느끼지 못하는
월미도가 보이는 만국공원
지친사내는 석상같이
술을 마신다.
불신과 배신과 도주 그런 것들이
일상 같은 파도의 소리 기적소리
정말 더럽기만한 취안에는
그 옛날 사슴과 얌전한 토끼와 곰과
순진한 동물들이 살던
월미도 그 동물원도 이제는 없다.
그의 시 ‘황혼에 떠나는 영구차’에서 노래한 것처럼, 죽음의 예언처럼,
산야에 뿌려져 조류들의 혀끝에 쪼여 노래로 들리고 있나.
출처 http://goodmorning.incheon.go.kr/board/54/1479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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