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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시인들과 인천 문단

by 형과니 2023. 7. 7.

작고 시인들과 인천 문단

인천의문화/인천배경책과영화&문학

2022-02-15 10:41:23

 

작고 시인들과 인천 문단

 

인천의 현대문학' 을 논할 수 있는 시기는 대략 1920년대부터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른바 경인기차통학생들의 문예활동에 의해서였다. 당시 경인기차 통학생들은 서울로부터 새로운 사회 풍조를 본떠 인천에 문화 활동을 태동시킨 것이다.

 

"인천 문화 운동사의 첫 장은 경인기차통학생친목회 문예부에서 열었다. 한용단(漢勇團)의 어머니 격인 친목회는 인천의 문학 청년을 아들로 탄생시켰던 셈이다. 그들은 표면적으로는 운동 경기를 내세웠으나, 독립 정신을 바탕으로 한 민족 문학 운동을 펼쳤다. 정노풍(鄭盧風), 고유섭(高裕燮), 이상태(李相泰), 진종혁(秦宗婦), 임영균(林榮均), 조진만(趙鎭滿)과 필자는 문학 동호인으로서 습작이나마 등사판 간행물을 발행했었고, 제물포청년회 시절에는 이길용, 송건우, 장건식과 필자 등이 제물포, 라는 이름의 기관지를 역시 등사판으로 간행하였고, 신정회(新正會) 기관지 정의를 필자 혼자서 편집하였는데, 창간호 전부를 압수당하고 신정회마저 해산하게 되었다.

 

진우촌이 극작가로 진출한 것은 물산장려회의 희곡 현상 공모에 입선된 후이며, 함세덕은 그 후에 등단한 신진 극작가였다. 그는 인천상업학교 출신으로 일본 축지(築地) 극장에서 처녀작 청춘을 초대받아 공연한 일이 있으며, 작품에 에밀레종」 「낙화암」 「동승」 「암탉등이 있다. 진우촌은 문예지 습작시대를 인천에서 발행했는데 박아지, 엄흥섭 등이 호응하였고, 김도인이 그 후에 종합 문예지 월미(月尾)를 펴냈다.”

 

이 글은 전 언론인 고일(高逸)의 저서 인천석금의 기록으로, 경인기차 통학생들에 의한 인천의 현대문학의 발아' 를 증언하고 있다. 등사판 간행물 형식의 회지를 발간하는 정도였지만 이것이 인천 현대문학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이처럼 새로운 문예, 연극 등의 활동이 시작되기는 했으나, 그 수준은 향토사가 신태범(愼兌範)의 지적대로 애호와 계몽의 역할을 했을 뿐 뛰어난 업적은 남기지 못한 것이 사실이었다.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문학적 습작 활동의 결과로 앞에서 말한 대로 문예지 습작시대월미가 발간되고, 1930년대 후반에는 아동문학지 아이생활 이 발간된다. 이 시기에 또 남생이의 작가 현덕(玄德)이 등단한다.

 

1940년대에 들면서는 희곡작가 함세덕(成世德)이 문단에 모습을 드러낸다. 이 시기 문학 경향을 보면 인천에서는 시보다는 산문, 즉 소설이나 희곡 분야의 활동이 더 활발했음을 알 수 있다.

 

8·15 광복부터 6?25전쟁이 발발하기까지는 해방 열기와 함께 인천의 문학 활동도 매우 활발했다. 이 시기에 활동한 사람이 바로 김차영(金次榮), 배인철(裵仁哲) 등의 시인들이었다. 2

 

김차영은 광복 후 인천에서 최초로 문예탑(文藝塔)이라는 등사판 동인지를 발간했는데, 이것은 광복 이후 우리나라에서 발간된 최초의 문예동인지라고 할 수 있다.

 

배인철은 일본대학 영문과 출신으로 인천에 주둔한 미군부대에서 통역관으로 있었다. 그는 조 루이스에게등 일련의 흑인 시' 를 연속적으로 발표하여 당시 문단의 눈길을 끌었으나, 1947년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총격 사건으로 요절하고 말았다.

 

이 시기에 탄생한 또 하나의 동인회가 시와 산문동인이었다. 이 동인회는 후일 인천 문단이 형성되는 하나의 바탕이 되기도 했다. 표양문(表良文) · 함효영(咸孝英최태호(崔台鎬한상억(韓相億김차영 · 강춘길(姜春吉최병욱(崔炳旭이진송(李秦松) 등이 참가하여 동인지를 7집까지 간행했다. 또 이 시기에 개인적으로 활동을 하고 있었던 문인으로는 조수일(趙守逸) · 이인석(李仁石조병화(趙炳華) 등이었다.

 

6·25전쟁 후 인천의 문화 기반을 다진 문사들은 전쟁 직전 결성된 문총(文總) 인천지부 참가자들이었다. 이들은 9·15 인천수복과 함께 '인천문총구국대' 로 개칭하여 활동하였다. 시와 산문 동인을 주도했던 표양문이 인천문총구국대 대장을 맡았다. 신태범(愼兌範)과 화가 우문국(禹文國)이 부대장을 맡았다. 뒤에 이경성(李慶成) 인천시립박물관장이 부대장을, 조병화가 총무국장, 이인석과 유희강(柳熙綱)이 선전국장과 차장을 맡았고, 회원으로는 조수일, 최성진(崔星鎭), 이민(李民), 최성연(崔聖淵), 박세림(朴世霖), 장인식(張仁植), 김차영, 김응태(金應泰), 김양수(金良洙),김영달(金泳達), 박윤섭(朴允燮), 최영섭(崔永燮), 백석두(白錫斗) 등이었다.

 

문총구국대는 '멸공 문화인 궐기대회 나 공산주의의 만행과 전쟁 범죄를 탄핵하는 글들을 신문지상을 통해서 또는 벽시전 행사를 이용해서 토로하고 절규했다. 그 외의 문학 활동리라고 하면 문총구국대가 기념행사때마다 개최하는 시화전(詩畵展)과 문학강연회가 전부였다.

 

전쟁과 휴전, 그리고 전화로 피폐했던 1950년대를 마감할 무렵 조병화·정벽봉(鄭僻峰이홍우(李興雨) · 이인석 · 임진수 · 윤부현(尹富鉉)등이 모두 생활 터전을 서울로 옮겨갔다. 이렇게 1950년대 중반까지 인천에서 활동한 조병화, 이인석 시인들을 인천 시단의 개척기 사람들이라고 한다면, 중반에서 말기까지 인천에서 머물렀던 정벽봉, 이홍우, 임진수, 윤부현과 홍윤기(洪潤基), 낭승만(浪承萬) 등을 진취기(進取期)의 시인들이라 하겠다.

 

이후 인천에서 최초로 동인지 운동을 시작한 사람은 최병구 시인이었다. 최병구가 결성한 초원(草原)에 이어 이정태(李鼎泰) 등의 사파(砂坡)동인, 김영달(金泳達), 홍명희(洪明姬) 두 사람의 2인 동인 시집 소택지대(沼澤地帶가 출현했다. 또 그 무렵 장년층의 산문 작가들로 구성된 소설 동인지 해협(海峽)이 발간되었다. 조수일, 김창흡(金昌治), 심창화(沈昌化), 김창황(金昌蹟), 최정삼(崔定三) 등이 회원이었다. 이 밖에 최승렬(崔承烈), 이광훈(李廣薰)도 개인적으로 꾸준한 활동을 벌였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인천 문단은 당시 경기도문인협회 지부가 위치한 지역 문단으로서 활동이 늘어나고 강화되기 시작했다.

 

419혁명과 5216정변을 거치면서 대학생 문학 그룹인 타원()이 허욱(許旭), 이석인(李錫寅) 등에 의해 탄생했고, 이것이 뒤에 사라호동인으로 변신했다. 1965년 고등학교 3학년인 조남현, 김흥규, 김윤식, 신상철, 이운원, 정승렬, 박대석, 손문수 등에 의해 탄생한 동인이 문혼(文魂)이었다. 이 동인의 애초의 명칭은 해일()동인이었다.

 

이 연배로서 문혼동인에 동참하지 않은 사람들은 조우성(趙宇星), 김상렬(金相烈)과 이원규(李元楼), 최무영 등이었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젊은 세대 문인들이 활발하게 등단했고, 아울러 전국적으로 주목을 받는 문학 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등단한 문인은 김구연, 김흥규, 조남현, 김상렬, 조우성, 우선덕, 조일도, 이동렬, 정승렬 등이었다. 이 시기에 등단한 평론가로 최원식, 윤영천 등이 있고, 희곡작가로는 이 무렵에 인천으로 이주한 희곡작가 윤조병이 있다. 인천문학은최병구는 손설향에 의해 간행됐고, 최경섭, 심창화, 이정태, 김일주, 김창황 등도 이 무렵 왕성한 문학 활동을 폈다.

 

1980년대에 들어서는 시부문에 김영승, 장영기, 김윤식이 등단했고, 이어 서동익, 박서혜, 이경림, 이효윤, 장종권, 채성병, 이영유도 인천에 정착했다. 하면서 인천의 소설부문을 크게 보강해 주었다. 착하며 인천문인들과 합류해 참신한 작품을 보여 주었으며, 장영기가 198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조부문에 당선하고 활발한 시작활동을 보여 준 것이 모두 이 무렵이다. 수필가로서는 김성제, 한상열, 한미령을 비롯해 이부자, 김정옥 등이 있다. 이 밖에 이 시기에 시로 등단한 사람은 나혁채, 이은미, 최건, 박일 등이 있다. 소설부문에서 이원규, 정동수, 정태륭, 등이 있고, 문광영은 평론으로 등단했다.

 

1990년대에 인천문단에서 합류한 평론가로 홍정선이 있다. 이가림이 인천작가회의를 이끌었고 김학균, 고창환, 고광식, 신현수, 류제희, 이세기, 박영근, 오석균, 최성민, 배선옥 등도 활발하게 활동했다.

 

소설부문은 강인봉, 방현석, 김한수, 최임순 등이 두각을 나타내었고, 여류소설가로서 이재숙, 고형옥, 김진초, 이목연 등과 이해선, 이옥금 등이 등단과 함께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아동문학 흰모래(이희철), 구경분이 활동을 폈고, 장현기가 서해아동문학회를 이끌었다. 이정길, 김구연, 이동렬 등과 함께 장영애, 현금순, 강혜기, 원유순, 안선모, 김경희 등이 새로 등단하면서 인천 문단에 합류했다.

 

 

인천시사 문학편 내용을 축약 정리한 글 / 작고 인천 문인 선집1 ()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