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아침의 나라 한국을 사랑한 노르베르트 베버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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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23 14:50:45
노르베르트 베버P. Norbert Weber OSB
노르베르트 베버는 1870년, 독일 바이에른 주 랑바이트에서 철도 건널목지기의 2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딜링겐에서 소신학교와 대신학교를 차례로 졸업하고, 1895년 아우크스부르크 교구의 사제로 서품되지만, 선교를 소명 삼아 서품 한 달 만에 성 베네딕도회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에 입회했다.
‘노르베르트’는 일 년 후 수도서원을 하며 받은 수도명이다. 1900년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의 부원장으로 임명되었고, 1902년 32세에 초대 아빠스로 선출되었으며, 1914년 초대 총아빠스로 축복되었다. 30년 가까이 수도회를 이끌며 스위스, 오스트리아, 한국, 중국,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등 11개국에 12개 수도원을 설립했다.
1931년 총수도원장직을 사임한 이후에는 탄자니아 리템보로 파견되어 1952년 아빠스 축복 금경축으로 상트 오틸리엔을 한 차례 방문한 것을 빼고는 모국 땅을 밟지 않은 채 선교 소명에 헌신하다가 1956년 선종했다.
1911년에는 칭다오와 일본을 거쳐 서울·공주·안성·수원·해주·평양 등을 두루 방문하고, 1925년에는 촬영기사와 함께 함경도·북간도·금강산 등을 여행하면서 한국의 문물와 풍속과 전통을 글과 영상으로 기록하여 『고요한 아침의 나라』Im Lande der Morgenstille(1915/23)와 『금강산』In den Diamantenbergen Koreas (1927) 등의 저술을 통해 서양에 소개했다.
노르베르트 베버신부의 저서 고요한 아침의 나라 중에서
나는 변혁이 막 시작된 이 머나먼 한반도, 고요한 아침의 나라를 주유周遊했다. 나의 지칠 줄 모르는 펜과 내가 찍은 사진들이 많은 걸 기록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이렇게 모은 자료들을 힘겨웠던 내 과업에 대한 상급으로 여겼으므로, 귀향할 때 가지고 가서 나 혼자만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싶었다.
내가 받은 인상과 옛 기억에서 건진 것들을 공개하라고 부추기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는 이 압박을 꽤 오래 견뎌 냈다. 그러나 황급히 퇴락하는 옛 문화의 흥미롭고 가치 있는 잔해들을 세상에 알릴 수 있겠다는 생각에, 결국 내 고집을 꺾고 말았다
남자들이 성내로 가고 있었다. 필수품인 담뱃대는 입에 물거나 오른팔 소맷자락을 접어 끼워 넣었다. 그러면 손을 쓰지 않고도 긴 담뱃대를 입으로 가져갈 수 있다. 골무만 한 작은 반원형의 담배통에서는 푸르고 향기로운 담배 연기가 꼬불꼬불 피어올랐다. 담배는 고산 지대에서 자라는 질 좋은 자경작물이다. 남자들 중에 가톨릭 신자가 있었다. 그는 우리를 보자 담뱃대를 밭으로 멀리 던져 버렸다. 손아랫사람이 손윗사람 앞에서, 아들이 아버지 앞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담뱃대를 들고 있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 한국의 범절이 그리 엄하다. 여인들도 공공장소나 남편 앞에서는 절대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그러나 혼자 있거나 여인들만 있는 곳에서는 진정한 한국인의 후예로서 담배를 즐긴다. 그들도 예순 번째 생일이 지나면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한다는 성가신 관습에서 해방된다. 그래서 노상에서 끽연하거나 전차 한구석에 앉아 담뱃대에서 피어오르는 구름을 보며 즐기는 양반댁 부인들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한국인은 꿈꾸는 사람이다. 그들은 자연을 꿈꾸듯 응시하며 몇 시간이고 홀로 앉아 있을 수 있다. 산마루에 진달래꽃 불타는 봄이면, 그들은 지칠 줄 모르고 진달래꽃을 응시할 줄 안다. 잘 자란 어린 모가, 연둣빛 고운 비단천을 펼친 듯 물 위로 고개를 살랑인다. 색이 나날이 짙어졌다. 한국인은 먼산 엷은 푸른빛에 눈길을 멈추고 차마 딴 데로 돌리지 못한다. 그들이 길가에 핀 꽃을 주시하면 꽃과 하나가 된다. 한국인은 이 모든 것 앞에서 다만 고요할 뿐이다. 그들은 꽃을 꺾지 않는다. 차라리 내일 다시 자연에 들어 그 모든 것을 보고 또 볼지언정, 나뭇가지 꺾어 어두운 방 안에 꽂아 두는 법이 없다. 그들이 마음 깊이 담아 집으로 가져오는 것은 자연에서 추상해 낸 순수하고 청명한 색깔이다. 그들은 자연을 관찰하여 얻은 색상을 그대로 활용한다. 무늬를 그려 넣지 않고, 자연의 색감을 그대로 살린 옷을 아이들에게 입힌다. 하여, 이 소박한 색조의 민무늬 옷들은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하고 원숙하고 예술적이다
노르베르트 베버P. Norbert Weber OS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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