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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어디서 이선균만한 배우를 찾을 수 있을까

by 형과니 2024. 1. 3.

 

이제 우리는 어디서 이선균만한 배우를 찾을 수 있을까

[윤세민의 영화산책] (14) / 배우 이선균
- 윤세민 / 경인여대 영상방송학과 교수. 시인, 평론가, 예술감독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참된 어른 멘토로서 전한 명대사는, 이제 고인이 된 이선균의 상황과 대비되면서, 안타까운 눈물을 머금게 한다.

 

‘사회적 타살’, 이선균의 죽음

참 아까운 배우를 잃었다. 비극이다. 비극의 주인공은 정작 극 중에선 아무리 비극적 상황에서도 끝내 선한 성품과 의지와 용기를 잃지 않았었는데...

그 바보 같은 착함이, 가족과 지인과 그를 아끼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안 가져도, 아니면 조금만 가져도 되었을) 죄책감과 미안함, 배우와 연기에 대한 순수한 애착과 책임감 등이 끝내 그 스스로를 죽음으로 몰고 만 것인지...

미결로 끝난 마약 투약 혐의(간이 시약 검사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정밀 감정에서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음)에도 알게 모르게 피의사실 공표, 경찰의 세 차례 소환 조사 – 3차 소환 때는 19시간이란 강압적 모멸적 조사(얼마나 심하게 느꼈으면 고인은 ‘거짓말 탐지기’마저 동원하자고 항변했을까), 그를 희생양 삼은 두 여인의 인간 이하의 사술과 탐욕, 이에 편승한 쓰레기 유튜브 방송과 기레기 언론의 자극적 보도, 여기에 저 밑에 똬리 틀고 있는 우리들의 이기적 관심과 탐욕의 관음증 등등. 이 모든 것이 빚어낸 ‘사회적 타살’ 아닌가.

이제 우리는 어디서 이선균만한 배우를 찾을 수 있을까. 동굴목소리와 꿀성대라 불린 그의 중저음 매력, 그만의 선한 눈빛과 순수한 표정, 주어진 캐릭터에 최선을 기울였던 그의 진지한 연기 등이 더욱 그리워진다.

 

배우 이선균의 필모그래피

1975년 서울 출생인 이선균은 대한민국 최고 예술인 양성소로 유명한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1기 출신으로 배우가 되었다. 졸업 후 한동안 백수 생활을 하다가 2001년 MBC 시트콤 《연인들》로 TV 무대에 첫 데뷔하였다. 백수 신분의 배역으로 “아, 어쩌라고?”를 쏟아내며, 사고뭉치 트러블 메이커로 진상 코믹 연기로 주목을 받았다.

 

이후 2000년대 초중반에는 베스트극장이나 드라마시티와 같은 단막극에 자주 출연하며 연기파로서 입지를 다져 나갔고, 2007년에 《하얀 거탑》의 최도영 역을 성공적으로 연기하면서 큰 주목을 받았다. 철없는 백수 이미지에서 진중한 성격의 내과의로 성공적인 변신이 대비되어 커리어의 큰 전환점이 되었고, 이후 《커피프린스 1호점》(2007), 《파스타》(2010), 《골든 타임》(2012) 등의 드라마가 모두 성공하면서 입지를 굳혔다.

 

영화에서는 한동안 부진하였지만 《쩨쩨한 로맨스》(2010), 《체포왕》(2011), 《화차》(2012), 《내 아내의 모든 것》(2012) 등을 거치면서 영화배우로서의 입지도 다져 나갔다. 이와 함께 홍상수 감독의 독립·예술영화 《옥희의 영화》(2012), 《우리 선희》(2013) 등에도 출연하며 연기력을 뽐냈다. 그러다 2014년 《끝까지 간다》에서의 열연으로 같은 작품의 투톱 주연을 맡았던 조진웅과 함께 2015년 백상예술대상에서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하였다.

 

이선균은 마침내 드라마 《나의 아저씨》와 영화 《기생충》으로 명배우 반열에 들어서며, 각종 호평과 함께 인기 정상을 달리게 된다. 이후 2022년 《킹메이커》 및 2023년 《킬링 로맨스》와 《잠》에 출연했으며, 미개봉 유작으로 영화 《탈출: PROJECT SILENCE》와 《행복의 나라》를 남기게 된다.

 

이선균의 인생작 《나의 아저씨》와 《기생충》

이선균이 ‘이선균다운’ 명배우로 등극하게 된 작품, 또 그의 인생작으로 평가되는 작품은 뭐니 뭐니 해도 《나의 아저씨》와 《기생충》일 것이다.

 

2018년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는 삶의 무게를 버티며 살아가는 아저씨 박동훈 역을 맡았다. 여기서 이선균은 안팎으로 치이는 온갖 고달픔 속에서도 착한 심성과 선한 의지를 바탕으로 극중 지안(아이유)의 ‘나의 아저씨’를 넘어 ‘국민 아저씨’로 등극하는 ‘이선균다운’ 명연기를 선보인다. 무겁고 어두운 환경 속에서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좋은 어른이란 무엇인지’ 화두를 던진 명품 드라마였다.

 

두 사람의 열연에 힘입은 이 드라마는 제55회 백상예술대상에서 TV 부문 드라마 작품상과 극본상을 수상하며 뛰어난 작품성을 입증받았을 뿐만 아니라, 국내외를 막론하고 호평을 받은 웰메이드 명작 드라마로 평가되고 있다.

 

이어서 이선균은 2019년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 출연, 세계적 IT 기업 CEO이자 엄청난 부자 사업가인 박동익 사장 배역에 그대로 어울리는 연기를 보여주며 호평을 받았다. 여기서 이선균은, 범죄나 악행을 저지르지 않고 누구에게나 예의를 지키려고는 하지만, 그 내면에는 깊은 선민의식과 편견을 가지고 있으면서 ‘선(線)’과 ‘냄새’라는 잣대로 사람들을 구분 짓는 박사장의 입체적 캐릭터를 그만의 절묘한 연기로 선보인다.

 

결국 《기생충》은 뛰어난 연출과 연기로 역대급 호평을 받으며, 흥행 성공은 물론 칸 영화제에 이어 아카데미 시상식의 메인을 장식하면서 세계적인 대작으로 등극하였다. 당연히 이선균도 배우로서 최고 전성기를 맞이했다.

 

‘나의 아저씨’ 이선균이 남긴 명대사

배우 이선균은 코미디, 스릴러, 드라마, 멜로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에서 주어진 캐릭터에 열정을 쏟아내는 혼신의 연기로 다양하면서도 확고한 팬 층을 형성했다. 출연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도 각종 명대사와 명장면이 회자될 정도로 사랑받는 배우로 자리매김 되어 있다.

 

특히 《나의 아저씨》에서 참된 어른 멘토로서 극 중 지안(至安)에게 전하는 명대사는, 이제 고인이 된 이선균의 상황과 대비되면서, 안타까운 눈물을 머금게 한다.

 

“네가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면 남들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네가 심각하게 받아들이면 남들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모든 일이 그래, 항상 네가 먼저야. 옛날 일 아무것도 아니야. 네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이름대로 살아 좋은 이름 두고 왜.”

 

“다들 평생을 뭘 가져보겠다고 고생고생하면서 ‘나는 어떤 인간이다’ 보여주기 위해서 아등바등 사는데, 어떻게 원하는 걸 갖는다고 해도 ‘나’라고 생각했던 것들에 금이 가기 시작하면 못 견디고 무너지고, ‘나’라고 생각했던 것들, 나를 지탱하는 기둥인 줄 알았던 것들이 사실은 내 진정한 내력이 아닌 거 같고...”

 

“거지같은 내 인생 다 듣고도 내 편 들어줘서 고마워. 나 이제 죽었다 깨어나도 행복해야겠다. 그러니까 봐. 다 아무것도 아니야. 쪽팔리는 거? 인생 망가졌다고 사람들이 수근거리는 거? 다 아무것도 아니야. 행복하게 살 수 있어. 나 안 망가져 행복할 거야. 행복할게!”

 

《나의 아저씨》 마지막 장면. 긴 고통의 시간을 지나 이제는 안정과 평안에 들어선 두 사람. 우연히 마주친 둘은 서로 악수를 나누고 격려하며, 서로 뒤돌아서 각자의 사무실로 향하면서 마음의 대화를 나눈다.

 

“지안, 편안함에 이르렀나?”

“네... 네!”

 

우리가 ‘나의 아저씨’ 이선균에게 큰 감동과 위안을 얻었듯, 그 또한 편안한 곳에서 영면에 들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