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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이야기

응봉산 계단이야기

by 형과니 2023. 3. 20.

응봉산 계단이야기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2-17 16:10:31

 

응봉산 계단이야기

손장원의 인천근대문화유산답사

 

계단은 높낮이가 다른 곳을 오르내리는데 쓰이는 통로로 층계, 층층대라고도 한다. , 계단은 2차원공간을 연결하는 복도나 길과 달리 3차원 공간을 연결한다. 이와 같이 다른 차원의 공간을 연결하는 계단의 기능 때문에 문학작품이나 영화에서는 지상과 천국의 연결고리로 혹은 두려움의 대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공간을 이동함에 있어 필요한 시설 가운데 하나인 계단은 그리 편리한 것만은 아니어서 가끔 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개항장 인천에 정착한 외국인들은 만국공원이 설치된 해발 69m의 응봉산을 오르기 위해 대략 5개 정도의 계단을 설치했다. 화강암을 정으로 다듬어(줄정다듬) 만들어진 계단은 돌 표면이 적당히 마모되고 세월의 흔적이 퇴적된 색으로 변해 나름대로의 정취를 느끼게 했다.

 

그런데 몇 해 전에 실시된 리모델링 공사로 청일조계지 경계계단과 제3패루가 있는 계단에서는 자연스런 옛 정취를 찾기 어렵다. 이렇게 일반에게 널리 알려져 과거의 흔적이 많이 사라진 계단 외에도 일반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탓에 과거의 흔적을 간직한 채 남아 있는 계단도 있다.

 

제물포구락(초기) 사진. 중앙의 계단은 지금도 남아 있지만 일본식 건물에 가려 역사자료관 안에 들어가야만 볼 수 있다.

 

 

알려지지 않은 계단 중에는 건물에 가려서 보이지 않는 것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통행하는 계단임에도 그 의미가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도 있다. 구 제물포구락부를 오르내리던 계단은 일본식 주택에 가려서 현재는 육안으로도 확인하기 어렵고, 통행도 불가능하다. 그런데 여러 사람들이 통행하는 계단임에도 각국조계지와 일본조계지의 경계부분에 만들어진 계단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공자상과 국적불명의 석등이 들어서 원래의 모습과 정취를 잃어버린 청일조계지 계단을 보노라면 인천시 지정 문화재라는 말이 무색하게 느껴진다. 이에 비해 각국지계 경계계단은 과거의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을 뿐 아니라, 주변의 석축과 조경수가 그윽한 정취를 연출하고 있다. 현재 관동 1, 2가 및 송학동 1, 2가의 경계인 이 계단은 총 136개의 층계에 6개의 계단참이 있어 계단전체는 7개로 나누어져 있다.

 

이처럼 응봉산에 설치된 계단 중 가장 긴 이 계단에는 2개의 도로가 지나고 있고, 건강한 사람이라도 단숨에 오르기 쉽지 않아 천천히 뒤를 돌아보며 걷게 된다. 첫 번째에서 여섯 번째 계단은 돌로 되어 있는데, 그 정확한 연유는 알 수 없지만 맨 위에 있는 계단은 콘크리트이다.

 

이 계단은 해안가에서 응봉산을 오르내리는 주요 통로인 동시에 현재의 관동일대에서 전동으로 통행하는 세 개의 통행로 가운데 하나였다. 1908년 홍예문이 개통되면서 통행량은 많이 줄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이후에도 인천유치원이나 데쉴러 주택을 개조하여 만든 우로꼬라는 음식점을 출입하는 사람들도 이곳을 이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각국지계 경계계단 모습. 사진 좌측에 보이는 일본식 석축은 헨켈 주택의 석축이다.

 

 

또한 지금은 석축만 남아 있지만, 이 계단 주위에는 서양식과 일본식 고급주택이 들어서 있었다. 계단 좌측에는 이마무라(今村) 주택, 헨켈(Henkel) 주택, 우측에는 경찰서장 관사, 우리탕(吳禮堂) 주택, 데쉴러 주택 등이 있었고 세창양행 사택에 거주하던 외국인들도 이 계단을 통행했다.

 

아직 개발의 손이 미치지 않아 과거의 모습을 많이 간직한 이 계단은 청일조계지 계단 이상의 가치가 있음에 틀림없다. 리모델링이라는 이름으로 계단의 모습이 변질되기 전에 문화재로 지정·관리하여 그윽한 정취가 오래도록 이어지길 기대한다.

 

* 필자는 재능대학 인테리어디자인과 교수로 재직 중이면서 해반문화사랑회의 인천정체성 찾기 운동에 참여했고 문화재청이 지원한 근대문화유산 지킴이양성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오랜 준비 끝에 다시 쓰는 인천 근대건축’(간향미디어랩)이란 책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