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서양식 호텔
仁川愛/인천-원조&최초&최고인것들
2007-02-20 04:18:12
최초의 서양식 호텔
인천에 호텔이 생기게 된 것은 물론 개항이라는 사회 변화가 직접적인 요인이었다 개항은 곧 사람의 국내외로의 여행을 의미하는 것이니 필연적으로 여행객을 위한 숙박 시설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특히 제물포항에 도착하는 서양인을 위해서 호텔의 탄생은 당연한 일이었다.
인천의 호텔에 대해 기록을 남긴 사람은 아펜젤러가 최초인 듯하다. 1885년 4월5일 제물포항에 도착한 그는 당일 서울행이 좌절되자 일본인이 경영하는 “다이부츠(大佛) 호텔로 향했다.
놀랍게도 호텔에서는 일본어가 아닌 영어로 손님을 편하게 모시고 있었다”는 말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이 메모로 미루어 인천에는 이미 1885년 4월5일 이전에 호텔이 문을 열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되며, 이것은 인천뿐만이 아니라 한국 호텔사상 최초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흔히 서울 정동의 존타크호텔(1902)을 우리 나라 최초의 서양식 호텔로 꼽는데 규모는 뒤졌을지 몰라도 제물포의 대불호텔이 최초임은 틀림없다. 몇몇 기록처럼 대불호텔의 개업 연도가 1888년이라고 할 때, 아펜젤러의 메모와는 약 3년의 차이가 나지만 그렇더라도 역시 존타크보다는 4년 정도 앞서는 것이다.
이 호텔 음식에 대해 ‘서양 음식이 마련되어 있었고 입에도 맞았다’는 아펜젤러의 기록과, ‘요리에 대해서 차마 기록할 수가 없을 정도다’라는 불란서 외교관 이뽀리트 프랑뎅(Hippolyte Frandin) 등이 ‘En Cor´ee’에 쓴 정반대의 혹평을 볼 수 있다. 프랑뎅은 대략 1890년대 중반 무렵에 제물포에 도착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새 호텔이 좀 퇴락했던 것인지, 아니면 미국 목사와 불란서 외교관의 입맛, 또는 성품의 차이였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대불 호텔이 성업을 이루자 길 건너에 청국인 이태(怡泰)가 스튜어드호텔을 연다.
이 호텔에 대해서는 1894년 제물포를 방문한 영국 여류 지리학자 비숍(Isabella Bird Bishop)이 자신의 저서에서 “나는 스튜어드호텔로 알려진 중국식 여관에 묵게 되었다. 이 여관은 중국인 구역의 중심가 끝에 위치해 일본인 거주지가 내려다보이는 곳이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호텔은 경인 철도 개통과 함께 일시에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조랑말과 가마 외에 다른 교통 수단이 없어 서울을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루 이틀 인천에 묵어야 했는데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대불호텔은 훗날 요릿집 중화루로 전국적인 명성을 날리다가 오늘날은 그 터만 폐허로 남아 있고, 스튜어드호텔 자리는 한때 연탄공장이 되었다가 요즘 다시 중국 음식점이 개업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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