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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이야기

두산인프라코어

by 형과니 2023. 3. 24.

두산인프라코어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2-27 15:15:58

 

국내 첫 기계공장 세계 무대 우뚝

 

인천의 향토기업-두산인프라코어

 

 

두산인프라코어(대표·최승철·인천시 동구 화수1711)의 전신인 조선기계제작소는 193764일 일제의 군수품 조달기지의 하나로 동구 화수동 수문통과 무네미 일대의 매립지 위에 세워졌다.

 

국내 최초의 기계공장다운 모습을 갖췄던 조선기계제작소는 1942년에 주물, 주강, 단조, 압연 시설을 새로 갖추고 200t급 잠수함까지 제작하는 등 일본 군국주의 전쟁의 군수물자 생산에 동원되기도 했다.

 

일본의 진주만 공격 전 소형 잠수함 한 척이 미군에 나포되는데 이 잠수함은 조선기계제작소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인천 주물공장 앞에는 1981년까지 잠수함 제작 잔해가 남아있었다.

이 공장은 해방과 함께 정부에 귀속된 후 19515월 국영기업체로 선정됐으며 19635월 국영기업체인 한국기계공업로 새로 태어났다.

 

한국 유일의 종합기계 메이커였던 한국기계공업은 디젤엔진, 지게차, 철도차량 등을 국내 최초로 생산했다.

 

이 시절 종합설계실 직원들은 기계설계도편람산업기계설계도집을 갖고 광산기계부터 건설기계, 운반기계 등을 모두 그려냈다.

 

심지어 국내에서는 본적도 없던 기계 설비들의 도면까지도 그려냈었고 엔진의 리버스 기어, 수상기중기, 데모 진압차까지 설계해 만들었다.

 

이 회사는 1970년대 중반까지 한국의 기계 산업을 대표하는 국내 유일의 종합기계메이커로 직원들의 자부심과 긍지도 대단했다.

 

한국기계공업에 몸담았던 사람들은 이후 한국 중공업계의 각 분야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으면서 기계산업 발전의 견인차가 됐다.

 

1976년 대우는 만성적인 경제악화로 적자에 허덕이던 한국기계공업을 인수한다. 회사명은 대우중공업으로 바뀌었다.

 

대우는 당시 국영기업체로 타성에 젖어 있던 회사의 분위기를 일신하고 관리체제의 내실화와 대규모 계획 생산체제 확립을 통해 인수 첫해에 흑자기업으로 전환시킨다.

 

1970년대 중반 이후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정책과 발맞춰 대우중공업은 본격적인 사업기만 구축과 기술개발에 전력 투구하게 됐다.

 

1975년 건설한 동양 최대의 디젤엔진공장을 중심으로 엔진사업을 중점적으로 추진해 디젤엔진의 국산화 시기를 앞당기게 됐다.

 

특히 정부의 디젤엔진 수입규제조치와 맞물리면서 디젤엔진은 폭발적인 판매를 기록했다.

 

1980년대 초반 제2차 오일쇼크의 여파와 국내 정치의 혼란, 정부의 중화학 투자조정 조치 등으로 인해 대우중공업은 시련을 맞았지만 공격적인 경영으로 이를 극복하고 지속적인 성장을 이뤘다.

 

1983년에는 미국의 캐터필러(CATERPILLA)사와의 지게차 OEM수출사업 계약을 체결해 지게차사업의 획기적인 도약 기반을 마련했다.

 

항공사업에도 새로이 뛰어들어 다음해 미국의 제너럴(GENERAL), 다이내믹스(DYNAMICS)사와 F-16 기체 수출계약을 맺었다.

 

1999년 대우그룹은 IMF관리체제 하에서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같은 해 826일 전체 계열사가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각 계열사는 독자생존의 기로에 서게 됐다.

 

이후 200010월 대우종합기계로 새롭게 출발하게 됐으며 각고의 노력 끝에 경영정상화를 실현해 다음해 11월 기존 대우계열사 중 두번째로 워크아웃을 졸업했다.

 

대우종합기계는 이런 노력에 힘입어 2002년 전 사업부문에서 흑자를 실현함은 물론 전 주력제품이 산자부 선정 세계 일류상품에 지정되고, 2004년에는 10억 달러 수출 탑을 수상하는 등 세계적인 기술력을 보유한 우량기업으로 거듭나게 됐다.

 

20054월에는 두산그룹으로 인수되면서 회사명이 두산인프라코어로 바뀌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인프라서포트사업 분야를 주도하는 핵심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설비투자 및 R&D 투자를 강화하면서 글로벌 경영에 필수적인 인재양성을 통해 성장기반을 확충하는 한편 장기적인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이현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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