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약도
인천의문화/인천배경책과영화&문학
2007-03-06 13:20:11
작약도 / 한하운(1919~1975)
작약꽃 한 송이 없는 작약도에
소녀들이 작약꽃처럼 피어
갈매기 소리없는 서해에
소녀들은 바다의 갈매기
소녀들의 바다는
진종일 해조음만 가득 찬 소라의 귀
소녀들은 흰 에이프런
귀여운 신부
밥짖기가 서투른 채
바다의 부엌은 온통 노랫소리
해미가에 흥겨우며
귀여운 신부와
한백년 이렁저렁 소꿉놀이
어느새
섬과
바다와
소녀들은 노을 활활 타는 화산불
인천은 밤에 잠들고
소녀들의 눈은 어둠에 반짝이는 별, 별빛
배는 해각에 다가서는데
소녀들의 노래는
선희랑 민자랑 해무 속에 사라져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안녕
또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주)한하운(1919~1975)시인의 <작약도>다.
문둥이 시인으로 널리 알려졌다.
천형의 슬픔을 구슬프게 노래하여 심금을 울렸다.
1950년 3월 부평의 나환자 정착촌 '성계원' 으로 이주한 것이
인천과의 첫 인연. 1952년 성계원 건너편에 '신명보육원'을
창설하기도 했다.
이듬해 인천을 떠났고 인천에 있을때
소나무 숲이 아름다운 작약도를 찾았던 것이다.
그리고 시한편을 남겼다.
또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을 기약하면서... 시인 / 김 철성
작약도 / 全炳浩
월미도 뱃머리
갈매기 울음 끝에
살며시 묻어오는 작은 섬 하나
물오른 처녀 탱탱한 가슴 몬냥 봉긋한
손대면 소스라치게 놀라
물러설 것 같은 둥근 반달섬
섬섬히 박혀 있는 소나무 숲
우로 경서동 화력발전소
너머엔 우람한 영종대교
좌로 영종도 비행장 있어
외롭지 않는 이제는 서러운 섬
먼 옛날 女兒(여아) 하나
아버지 손잡고 작약도 소나무 숲에
조그만 추억 하나 묻어두고 왔다는 회상 속에
딸아이 손잡고 그 섬 바라보고 있건만
너는 그대로 이어라
떠나는 뱃고동 소리에
월미도 가로등 불빛 바다 속에서 출렁이고
붉은 낙조 속에 작은 섬 하나 있어
가슴으로 안고 뒤돌아선다.
어린 날의
동심의 추억을 살며시 묻어두고서
[인천] 뿌리를 찾아서-작약도
작약도는 인천 월미도 문화의 거리에서 바다를 바라보면 영종도 옆으로 바로 보이는 작은 섬이다. 숲이 울창한 이 섬의 원래 이름은 물치도로, 영종도에 있던 군사기지 영종진에 땔나무를 공급하던 곳이었다. 물치도에 대해서는 별로 연구된 바가 없으나 '한강에서 내려온 물이 이 섬을 치받는다'는 뜻을 음차해서 물치도라 불렀다는 설이 있다.
작약도라는 이름은 일제시대 때 일본인들이 지은 것이라고 하는데, 멀리서 이 섬을 보면 모양이 작약꽃 봉우리와 같이 생겼다 해서 붙인 것이라 한다. 병인양요 때는 침입한 프랑스 함대가 자신들의 배 이름을 따서 '보아제'라고도 불렀고
신미양요 때 이 곳에 몰려온 미국 함대는 '섬에 나무가 많다'해서 '우디 아일랜드'라 부르기도 했다. 이들 외국 함대는 모두 작약도 앞에 주력 함대를 정박시켜 놓고 한강을 따라 올라갔다고 하니 이 섬은 조선의 개항과 큰 연관이 있는 셈이다.
일제 때는 '스스기'라는 일본인 개인 소유였고 해방 후에는 화수동에 살던 이종문이라는 사람이 이 곳에 고아원을 설치해 운영했으나 6·25때 없어졌다. 이전에는 경기도 부천군에 속해 있다가 63년 인천시에 편입됐으며 지금은 국유지 일부를 뺀 섬 전체가 전 인천시의원 류복수(유복수)씨의 개인 소유로 돼있다.
30∼40분이면 해변을 따라 한 바퀴를 돌 수 있는 이 작은 섬에는 횟집과 식당 등이 영업중인데 물살이 세서 수영을 하기는 어렵다. 평소에는 연안부두에서 작약도를 오가는 여객선이 하루에 왕복 9차례를 다니지만 요즘같은 피서철에는 17번씩 다니고 있다.< 최재용기자 >
작약도 이름되찾기 운동 전개
인천향토문화사학회(회장·이형석)는 작약도(芍藥島)의 이름을 되찾기 위한 운동을 벌이기로 했다. 15일 인천향토문화사학회에 따르면 작약도라는 이름은 일제초기 한 일본인이 작약도를 사들인 뒤 작약꽃 봉오리처럼 생긴 섬 형태를 보고 작명한데서 유래됐다.
향토사학회는 그러나 대동여지도, 동여도, 경기고지도첩 등 조선시대 후반에 제작된 각종 지도엔 작약도를 물치도(沕淄島)로 표기하고 있는 만큼 앞으론 행정 지명 표기에 작약도 대신 물치도라는 이름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향토사학회는 '물치'란 말이 밀물 때 섬 주변에 물고랑이 생기며 섬을 받치는 이 지역 특성을 별 의미없이 의성화한 말로 보고 있다. 향토사학회는 '작약도 우리 이름 되찾기 운동'의 일환으로 관할 구청인 동구에 명칭 변경 청원서를 제출하는 한편 인천환경산악회, 인천땅이름연구회 등과 함께 작약도 유래비 건립을 추진할 계획이다.
인천 월미도에서 2㎞ 떨어진 곳에 위치한 작약도는 면적 30㎡, 총해안선 길이 1.2㎞의 조그마한 섬으로 휴가철엔 낚시와 해수욕을 하기 위해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丁鎭午기자·schild@kyeongin.com
'인천의문화 > 인천배경문학,예술,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학산과 인천의 산책가들을 찾아서 (0) | 2023.04.04 |
---|---|
詩를 쓴다는 것이 이미 부질없고나 / 김 광균 (0) | 2023.04.02 |
월미도(月尾島) (1) | 2023.03.25 |
<밤> 김소월- 인천의 詩 (1) | 2023.03.25 |
잃어진 메아리/홍예문 [시] - 서봉석 (0) | 2023.03.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