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력쌓기, 그 오싹한 재미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3-10 17:57:58
담력쌓기, 그 오싹한 재미 / 오정희
한낮의 기온이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고 있다.
여름이다.극장가에 공포영화가 나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왜 더운 여름이 되면 으스스한 공포물을 찾는지 알수가 없다. 하지만 아이들에겐 어른들이 모르는 자기들만의 짜릿한 공포체험이 있기마련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여름밤. 그날 저녁에 담력쌓기를 하자고 약속한 것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이층마당에 모였다. 동생들을 공평하게 나누어 데리고 이층마당을 지나 철길로 통하는 골목으로 향했다.
"괜찮아, 괜찮을꺼야." 서로를 격려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긴장감이 맴돈다.
지금은 소방도로가 뚫리고 큰도로가 생기느라 없어져 버린 골목들과 똥바다 철길은 우리들의 담을 튼튼하게 해줄 담력쌓기의 장소였다. 당연히 할 수 있다고 호기를 부리는 아이들도 있었고, 하고 싶기는 하지만 무서워서 눈물을 훔치는 아이들도 있었다.
똥바다로 이어지는 골목의 끝에 도착했다. 누가 먼저 갈건지 정했다.
한바퀴돌기. 만만치 않다. 지금처럼 넓은 길도 아닌데다가 양쪽으론 공장담이 막고 있고철길 양쪽 가장자리엔 강아지풀이며, 이름모를 풀들이 허리깨까지 자라있다.
벌래소리는 어찌나 크고 우렁찬지 기가 눌렸다. 그리고 그때 한창 '전설의 고향'이 유행했던지라 드문드문 가로등이 있는 똥바다철길은 아이들끼리라도 함부로 다닐수 없는 장소였다.
하지만 한낮의 철길은 풍부한 놀잇감을 안고있는 평화로운 곳이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빨간벽돌과 시멘트벽돌, 흙과 모래로 양념을 만들었고, 깨진 항아리조각이나 스티로폼, 돌들은 훌륭한 반찬그릇이 되었다.
철길옆으로 자라는 풀들은 손으로 뜯기도 하고, 돌로 빻기도 해서 소꿉놀이를 재미있게 했다. 방학숙제로 곤충채집이 있으면 어김없이 똥바다 철길로 향했었다. 메뚜기, 방아깨비, 나비, 잠자리 등 곤충이 아주 많았다.
하지만 담력쌓기를 하려고 온 똥바다는 한낮의 평화로움은 온데 간데 없이 무섭기만 했다. 드디어 내차례가 되었다.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안무서운척, 아무것도 아닌척 철로를 밟으며 걸었다. 중얼중얼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눈알을 굴리며 여기저기 살피기도 했다. "뛰면 안된다, 안된다"다짐을 하며 뒤도 안돌아 보고 걸었다. 그 철길이 왜이렇게 긴지 한참을 걸은 것 같은데 끝이 안보인다. 귀를 막았다. 될 수 있는 한 빨리 걸었다. 드디어 가로등이 켜져있는 도로에 도착했다. 도로를 돌아 다시 동네로 들어갔다.
저앞에 아이들이 보인다. 한시름놨다. 표정에 여유가 생긴다. 별거 아니라는 듯 웃으며 다음아이의 손을 친다. 도전을 했다가 포기한 아이들의 표정엔 존경심마저 감돈다. 어깨에 힘이들어가고 며칠간 난 영웅이 됐다.
풀벌레소리, 풀피리, 이따금 지나가는 화물기차, 갯벌위에 조심스럽게 놓인 썩은 나무다리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공장에 둘러쌓여 공장의 소음과 함께 잠을 자고 생활했던 우리에게 똥바다 철길은 우리들만의 장소였다. 오물조물 소꿉놀이하는 재미를 아이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을 때가 있다. 그리고 그때의 똥바다를 보여주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 그곳은 살아있는 곳이 아니다. 큰차와 도로옆의 철길은 아주 초라하게 보인다. 우리들이 장소가 사라져가는 것을 보며 참 가슴아팠던 기억이 난다.(오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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