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기계공고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3-10 18:53:25
인천기계공고
‘인천의 MIT’
63년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인천기계공고는
그동안 인천기계공고가 배출한 전문생산인력이 3만8천명에 이르니..
우리나라 산업의 근간을 이루는 전문생산인력을 양성해온 곳이기에
붙여진 별명이 바로 ‘인천의 MIT’다...본문중에서
<지금 우리학교는>기계공고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가족의 생계를 이어가야 한다는 일념으로 대학진학의 꿈을 포기하고
상업계 또는 공업계 고등학교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70∼80년대.
대학에 진학한 친구들은 캠퍼스에서 꿈과 낭만을 즐기는 동안 이들은 낡은 교실과
낙후된 장비들을 이용해 사회로의 진출을 위한 땀을 흘렸다.
이들의 땀과 노력이 있었기에 인천지역 산업발전은 물론 선진국으로 도약하는데
밑거름이 됐다는 점을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올바른 인성 교육과 철저한 실습위주의 체험 학습, 전문화된 기술교육을 바탕으로 한
교육방침을 내세운 인천기계공업고등학교(교장 은철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63년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인천기계공고는 현재 정보통신기술(ICT) 활용교육을 통해
정보화·국제화 사회에 대응하는 기술인을 육성하고 있으며 지역 산업체와의 자매결연 및
인적·물적 자원교류의 활성화로 산학협동체제를 구축, 지식산업사회를 선도하고 있다.
인천기계공고는 이를 위해 14개 분과(교과)를 통한 ICT활용 교수 및 학습과정안을 개발하고
학교 홈페이지에 교과자료실을 마련, Q&A를 통해 쌍방향 상호 교육을 실시했다.
학교의 노력은 많은 곳에서 결실을 맺고 있다.
1979년 에이레에서 개최된 제 25회 국제기능올림픽(2년마다 개최)에서 금메달 획득을 시작으로 금메달 20개,
은메달 4개, 동메달 2개, 장려상 2개를 획득한 명실공히 세계를 제패한 학교로 정평이 나 있다.
특히 올 6월에 개최될 제 37회 국제기능올림픽에 선반·CNC 직종에 인천기계공고 학생이
국가대표로 선발돼 이 분야에서 세계제패의 영광을 재연하려고 땀을 흘리고 있다.
또한 1998년 기포 자동제거장치 및 비교 실험기를 발명, 98년도 대한민국학생발명전시회 특별상을 수상했으며
제 20회와 21회 연속 인천시 학생과학발명품경진대회 우수상을 차지하는 등
다수의 발명품으로 인천시를 비롯해 전국대회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올리고 있다.
이밖에 지난 77년도부터 참가한 전국기능대회에서도
금탑수상(84년·88년) 2회, 은탑수상(83년·86년) 2회, 동탑수상 7회 등
21개 대회에서 11차례에 걸쳐 동탑 이상의 성적을 거두었으며
지방대회(21개 대회)에서 금 184개, 은 162개 동 119개 등 대부분의 메달을 휩쓸어
이 분야 최고의 명문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외에도 학생들 스스로가 참여해 지방 소프트웨어공모전에서 금 1, 은 1, 동 4개를 획득했으며
전국 소프트웨어공모전에서는 은상을 수상했다.
이같이 인천기계공고의 교사와 학생의 하나된 노력으로 인천시교육청으로부터 교육정보화 시범학교(2001년 3월1일)로
지정된 데 이어 교육정보화 우수학교로 선정됐으며 정보통신기술(ICT)활용
우수교과연구회 운영 교육부장관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인천기계공고의 또 하나의 특성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다는 것.
선배들이 일궈놓은 명성에 안주하지 않고 산학협동체제를 구축, 지역산업체와의 자매결연을 통해
해당 업체의 실력자를 산학겸임교사로 활용하고 있으며 자율직무연수에 학생들을 참여시키고 있다.
또한 학과별 실습작품 전시회 및 작품전을 개최해 학생들에게 용기와 기회를 심어주고 있으며
일본(고꾸라 공고), 중국(제2 직업고급중학교) 등의 학교와 자매결연을 맺어 세계화, 국제화에 대비하고 있다.
◇은철기 교장 인터뷰
-정보통신기술(ICT) 활용교육이 활성화 돼 있다. 비결이 있다면.
▶우선적으로 교단선진화기기 확충 및 학내망의 안정적 구축과 교수·학습 자료의 데이터베이스화를 들 수 있다.
이를 위해 14개 분과를 통한 ICT활용 교수 및 학습과정안을 29개 교과, 925개 소단원으로 개발해 수업에 활용하고 있다.
또한 다양한 정보화 관련 기공 ICT 등의 동아리를 운영하고 있으며 학급별 2명씩의 정보도우미를
선정해 교육정보화 활용을 활성화하는 등 학생들로 하여금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이에 우리 학교는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창의적 기술인 육성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지난 14일 치러진 60회 졸업식이 이색적이었다는데.
▶기존 졸업식은 형식에 치우친 학교를 위한 행사였다면 지난 14일 치러진 제 60회 졸업식은
학생과 학부모를 위한 졸업식이다.
물론 큰 틀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학생 밴드부의 연주회와 사물놀이 한마당,
후배들의 졸업 축가송 등 공연분위기를 최대한 살리려 노력했고 학부모와 학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번 졸업식은 학교와 학부모, 학생과 교사의 신뢰감과 공감대를 형성했다는데 의미를 두고 싶다.
-앞으로 학교 운영방침을 말해달라.
▶우리 인천기계공고는 60여년에 걸친 우리나라 산업인력 역군의 산실로써
우수한 인재를 길러내 국가와 지역사회발전에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창의적인 기술인 양성'이라는 목표아래
전 교직원이 전통과 역사를 빛낼 인재 양성에 열심히 노력할 것이다.
◇우리학교 발자취
1940. 5. 10. 인천 공립 직업 학교 개교(3년제, 9학급)
1946. 9. 1. 인천 공립 공업 중학교로 개편(6년제, 18학급)
1951. 5. 21. 인천 공업 고등학교로 개편(3년제, 15학급)
1976. 3. 1. 인천 기계 공업 고등학교로 개편(야간 특별 과정부 병설)
1976. 12. 2. 특성화 공고로 개편(42학급)
1990. 9. 28. 공동 실습소 개소
1995. 7. 4. 공장 자동화실(FMS) 설치
2000. 5. 10. 개교 60주년 기념식
2002. 9. 1. 제 18대 은철기 교장 취임
2003. 2. 14. 제 60회 졸업식 739명 졸업(졸업생 누계 3만7천382명)
◇자랑스런 졸업생
“인천기계공고인으로서의 자긍심을 가지고 상호 협동해 우리의 모교가 우리나라는 물론
국제적으로 명실상부한 명문학교로 거듭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동문 모두 성실하고,
창조하며, 협동하자는 교훈아래 한마음 한 뜻으로 우리 모두 하나가 됩시다.”
권문택(전기 18회·일진건설 대표) 총동문회장의 신년 인사말처럼 60여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인천기계공고의 동문회가 동문회보를 발간하는 등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며
모교 발전과 후배양성에 앞장서기로 했다.
이밖에 정·관계 인사인 윤태진(건축 24회) 인천시 남동구청장과 신원철(화공 18회) 전 연수구청장을 비롯해
신경철(토목 28회) 인천시의회 의장, 김성호(방직 14회)·박용렬(토목 16회)·송병억(화공 29회) 인천시의원,
김왕규(토목 27회) 시흥시의회 의장, 박명석(화공 34회)시흥시의회 부회장, 이후진(자동차 31회)·이영복(건축 33회)·
정윤상(기계 36회)·전종식(방직 16회)·박민수(자동차 20회)씨 등 인천지역 기초의원들이 있다.
또 허명재(기계 23회) 인천대학교 대학원장, 학교 대표 육상선수였던 한상철 인천시체육회 사무처장,
이해춘(기계 16회·두남금속 대표), 최명규(토목 16회·한일금속 대표), 강영구(화공 34회·신안콘크리트공업 대표),
조광호(기계 36회·인천꽃 백화점 대표)씨 등도 동문회 참여 활동이 활발하다.
이외에도 이호창(건축 28회) 총무부회장, 장인철(토목 27회) 재무부회장, 이운학(기계 27회) 홍보부회장,
고상원(토목 28회) 사무총장 등 총문회 임원을 비롯해 조성현(토목 25회), 김수남(기계 24회), 정성수(전기 21회)
각 과별 동문회장 등도 모교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
임명수 (mslim@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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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기계공고...
‘인천의 MIT’
3천여 업체가 들어서 있는 남동공단에서 인천기계공고 출신을 만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1940년 개교 이래 지난 63년동안 인천기계공고가 배출한 전문생산인력이 3만8천명에 이르니 그럴만도 하다.
중소기업 사장에서 부터 말단 사원에 이르기까지. 인천기계공고는 인천은 물론,
우리나라 산업의 근간을 이루는 전문생산인력을 양성해온 곳이기에 붙여진 별명이 바로 ‘인천의 MIT’다.
특히 기계과는 ‘인천공립직업학교’로 개교한 이래 지금까지 인천기계공고의 역사와 함께 한 산증인.
일제시대 병참기지화 된 인천에서 일본군의 군수물자와 무기 등을 생산해야 하는
식민지 국민의 수모를 겪기도 했으며, 60·70년대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에 따라
‘기술한국’의 명성을 세계에 알리는 선두주자로 활약하기도 했다.
지난 1979년 에이레에서 열린 국제기능올림픽 대회 정밀기기제작 부문에서
김종원씨(38기)가 금메달을 딴 것을 시작으로 그동안 국제대회에서 금메달 20개,
은메달 4개, 동메달 2개, 장려상 2개를 획득, 명실공히 세계를 제패한 학교로 정평이 나 있다.
1989년 영국에서 열린 국제 기능올림픽 대회에서는
손대호씨(46기·현 코스모스엔지니어링 대표)가 최고 득점자로 MVP의 영예를 안았다.
70년대 당시 학교의 명성은 전국적이어서 인천을 제외한 경기도와 충청도 출신학생들이
전교생의 절반을 차지하기도 했다.
당시 인천지역 700여개의 공장의 실질적인 기간요원 중 인천기공 출신이 1/3을 넘었다.
이런 학교의 명성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1회 졸업생들은 ‘입사후 3년동안 이직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학교장에게 제출,
성실근무를 약속했고 이를 지켰다.
이후에도 이런 전통은 한 동안 이어졌으며 ‘인천기계공고 출신은 근면·성실하다’는
정평과 함께 학교의 가치도 올랐다.
60년대 말 쌀 한가마(80㎏·3천5백여원)를 살 수 있는 월급을 받던
‘공원’ 시절을 겪기도 했지만 ‘잘 살아야겠다’는 의지는 굽히지 않았다.
기름때에 젖은 작업복을 입고 하루종일 차가운 철과 씨름해야 했던 이들이
한국 자동차 산업의 효시라 할 수 있는 신진자동차(현 GM대우)를,
인천제철(현 INI스틸)을 이천전기(현 일진중공업)를, 포스코를 지금의 모습으로 끌어올린 바탕이다.
때론 생산직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이 싫어 다니던 회사를 박차고 나와
기계 한 대로 사업을 시작한 ‘공원’이 지금은 어엿한 ‘사장’이 되기도 했다.
현 기계과 총동문회장을 맡고 있는 김수남(24기) 경인기업 대표나 세진기계 이창원(14기),
동진기계 임동창(14기), 두남금속 이해춘(16기), 경인기계 권태서(17기) 대표
그리고 문영국(19기) (주)선광 전무이사 등이 그렇다.
공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야간대학에 다니거나 재수를 해
‘교수’가 된 ‘공고생’은 한정수(8기) 중앙대 공대교수와 남승의(16기) 홍익대 부총장,
임광철(20기) 아주대 교수, 이강춘(22기) 성균관대 약대 교수 ,
권문택(22기) 경희대 사이버대학장, 허명재(23기) 인천대 대학원장 등이 있다.
정하성(16기) 전 인천기계공고 교장을 비롯해 임갑철(17기) 부평여자공고 교장,
송석정(19기) 운산기공 교사, 노승화(18기) 인천시 교육청 장학관 등 중·고등학교 선생님들도 많다.
공직사회에는 우광균(9기) 연일학교 치과보건관리소장, 이순영(13기) 전 인천시 건설국장,
김낙철(23기) 남동구 사회경제국장 등이 활동하고 있고 곽재영(9기) 인천시 육상경기연맹 회장이나
박장원(14기) 전 인천시의원, 황정석(14기) 남인천농협 조합장,
유춘선(19기) 인천생활체육회 회장 등이 지역사회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
김수남 기계과 총동문회장은 “기계를 만지는 직업을 갖고 있다보니 때론 ‘옹고집’이란 혹평도 받고 있지만
지금껏 성실히 살아왔다”며 “단단한 철을 다듬어 생활 필요한 물건을 만드는 ‘장인’들이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생산직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이 사라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난 3년여간 좋지 않은 일로 동문회가 침체기를 맞았었다”며
“올해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동문회를 활성화하는데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주희기자> kimjuhee@incheo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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