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륵의 ‘무던이’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3-15 04:21:37
이미륵의 ‘무던이’
어려서 우물이네 집에 갔던 무던이는 우물이를 보고 연정을 느낀다. 그러나 나이들어 이웃마을 부잣집 일봉이와 혼인한다. 무던이는 이름처럼 순진하고 얌전한 색시였다. 어느날 남편에게 우물이와 혼인하고 싶었다고 이야기한다. 충격을 받은 남편은 가출하고 집안이 불안에 빠지자 자신 때문이라 여기고 물에 투신한다.
이미륵의 소설 ‘무던이’의 줄거리이다. 소설은 가난하지만 순박하게 성장한 옛 우리 여인네의 기구한 운명을 그리고 있다. 그런 한편 작품을 통해 작가는 예전의 중매과정과 혼례식 그리고 남녀간의 내외하는 풍습 등을 서구인에게 소개한다. 소설 ‘무던이’는 이미륵이 타계한 2년후인 1952년 발표된 작품이다.
1946년 자전적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를 독일문단에 발표 최우수 소설로 선정되는 등 인기를 독점하면서 비로소 알려지기 시작한 이미륵은 본명이 의경이며 미륵은 아명이다. 서울의학전문학교에 재학중 3·1운동에 가담했다가 상해에 망명 독일로 건너가 하이델베르크 대학 등에서 수학하고 뮌헨대학에서 박사학위를 획득했다. 그후 작가생활을 계속했으나 귀국하지 못하고 50년 요절했다.
해주 출신이요 자녀들도 어려서 사망, 직계유족이 없이 인천에 더러 친척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서울에 이미륵박사 기념사업회가 있으며 이미륵상등기면사업을 벌리고 있다. 지난 1일 인천에서도 친족과 기념사업회 정규화 회장 그리고 몇몇 인사의 회고 모임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그의 인간적인 면면들이 소개되었다.
47년 패전 독일이 인플레로 어려울때였다. 베낭에 가득 담을 만큼 지폐로 자료함을 샀는데 다음날 화폐개혁이 되어 전날의 화폐는 휴지가 되었다. 이를 애처럽게 여긴 그는 목수를 찾아가 다시 값을 치렀다. 역시 같은때였다. 배급 전표를 받았는데 다음날에야 그것이 두장임을 알고 담당자를 찾아가 한장을 돌려주었다. 일인으로 오해했던 사람들이 나중에 알고 코리어의 양식을 칭찬했다고 한다. 오늘날 독일서 수학 박사된 유명인들 그늘에 이미륵은 가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