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보는 세상-수천명 한국처녀와 한명의 서양처녀
仁川愛/인천사람들의 생각
2007-03-20 08:28:39
마음으로 보는 세상-수천명 한국처녀와 한명의 서양처녀
이승욱-닙부타의 숲 상담 클리닉 원장
동양인으로,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이 이렇게 서럽고 분할 때는 흔치 않은 것 같다. 대만이나 중국에서 꽃다운 처녀들이, 그리고 그 보다 더 많은 수의 조선 처녀들이 일본 군인들의 강제에 의해 위안부가 되었다. 일본 군인들의 정액받이가 되었다.
하루에도 수 십 명을 상대해야 했고 임신하면 죽여 버렸단다. 전쟁이 막바지에 다달았을 때는 총알받이로 사용되었다. 남태평양 곳곳의 전선에서 궁지에 몰린 일본 군인들이 절벽에서 투신자살할 때도 애꿎게도 우리 조선 처녀들을 같이 데리고 갔다.
오늘도 아침 저녁이면 깔깔 재잘거리며 학교 앞으로 쏟아져 들어가고 나오는, 고등학생 무렵의 우리 딸들이 그렇게 끌려가 속살을 찢기고 더럽혀지고 짐승에게 유린당했단 말이다.
아, 타국의 민간인 처녀들을 그렇게 조직적으로 끌고가 자국 군인들의 정액받이로 쓸 생각을 한 군대가 일본 말고 또 있을까. 필자가 과문하여 들어 본 일이 없다.
필자가 외국 생활을 하면서 겪어 본 일본인들에게서는 몇 가지 특징적인 집단 심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두드러지는 것은 수의 우위에 따라 자신의 행동양식이 표변한다는 것이다.
즉 자기 그룹의 숫자가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적을 때는 예의 바르고 타인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자기들 숫자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많다 싶으면 안하무인이 되어 버린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영어권 국가에는 영어 연수를 온 동양인 학생들이 많다. 영어 어학원은 당연히 한국 중국 일본 동남아 등지에서 온 학생들이 주류를 이룬다. 그런데 일본인 학생들은 자신이 속한 반에 일본인의 수가 적으면 이들은 언제나 예의 바르고 수동적인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어쩌다가 그 반에 일본인 학생이 전입을 많이 들어오고 기존에 있던 다른 나라 학생이 그만두게 되면서 일본 학생 수가 많아지면 그전의 예의 바르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언제 그랬느냐는 듯 고성으로 떠들고 심지어 수업시간에조차 눈치보지 않고 잡담을 하는 등, 안하무인이 되어 버린다. 그러다가 다시 일본인 학생 수가 줄어들어 숫적 열세가 되면 다시 그 고분고분한 모습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일본인들에게서 쉽게 찾아지는 또 다른 집단심리는 서양인들에 대한 뿌리깊은 열등감과 위축감, 이에 대한 반동으로 보이는 경외감과 추종이다. 이건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최근 일본 정부가 한 명의 서양인 위안부 할머니 때문에 보이는 비열한 모습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네덜란드 출생의 얀 오헤른 할머니는 2차 대전 당시 자바섬에 가족과 살고 있다가 수용소에 갇힌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전쟁 말기, 불행히도 21살 그 찬란한 나이에 위안부로 끌려 갔다.
그녀는 거기에서 3개월 간 죽음보다 더 끔찍한 일을 겪어야만 했다. 소녀적부터 수녀가 되려 결심했던 얀 할머니는 그 꿈을 접어야 했고, 자신이 겼었던 사실을 50년 동안 숨기고 살았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과거를 망각하고 눌러 두고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어느 날 우연히 한국인 위안부 할머니들의 수요집회가 TV에서 방영되는 것을 보고 그는 자신의 과거를 더 이상 묻고 갈 수는 없다는 생각을 했단다. 그리고 그 때부터 적극적으로 자신이 어떻게 위안부로 끌려 갔으며 거기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 세상에 밝히기 시작했다.
지난 2월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한국인 위안부 할머니들의 751번 째 수요집회에는 얀 할머니도 참여했다. 이 모임에서는 일본 대사관에 항의서를 전달하기로 되어 있었다. 한국 땅에서 항의 집회가 750회 열리는 동안 일본 대사관 관계자는 단 한번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날 집회에는 시드니 영사관 부영사가 나와서 항의서를 받아 갔다고 한다.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이 서럽고 분하다. 일본인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한 서양인들 때문이기도 하다. 그 동안 위안부 문제에 대해 거의 언급을 하지 않던 서양권 국가들이 얀 할머니의 활동에 자극 받아 전향적으로 이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호주, 미국 의회에서도 일본정부에 사과를 촉구하는 결의안 채택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단다.
수 천명 한국 처녀들의 한 맺힌 오랜 절규가 한 서양 처녀의 그것보다 이리도 반향이 적은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수 천명의 위안부와 비참히 죽어 갔던 마루타와 수십만의 조선 징병, 강제 징용자들, 그리고 일제 식민지를 겪어야 했던 우리의 모든 할머니 할아버지들 부모님들…. 우리에게 국가는 무엇일까.
'인천사람들의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철새가 찾는 남동공단유수지를 위해 (0) | 2023.04.02 |
---|---|
국제적 도시 걸맞는 용어 사용 (0) | 2023.03.31 |
왜색지명 ‘송도(松島)’ (1) | 2023.03.28 |
식민의 트라우마 (0) | 2023.03.27 |
인내심의 한계 (0) | 2023.03.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