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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사람들의 생각

어른의 탐욕을 가르치는 ‘급식’에 대한 명상  

by 형과니 2023. 4. 6.

어른의 탐욕을 가르치는 급식에 대한 명상            

仁川愛/인천사람들의 생각

 

2007-04-03 04:11:06

 

다음 세대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는 시대

어른의 탐욕을 가르치는 급식에 대한 명상            

<전문가 기고 - 임병구의 교단통신>

 

당나라에서 사신이 왔다. 겉모습이 똑같은 말 두 마리를 놓고 고구려 조정을 시험한다. 이 중에 어느 말이 어미고 어느 말이 새끼인가? 고구려 조정이 들끓는다. ! 지혜로운 신하가 이리도 없단 말인가? 한 신하의 어미가 쉽게 문제를 해결해 준다. 밥을 줘 봐라. 자식은 제 입만 생각하고 어미는 자식이 배를 채운 뒤 남은 밥을 먹는다.

 

나는 딸과 함께 그 옛 이야기를 읽으면서 지구상에 살아남은 종족들의 위대함을 명상한다. 한 세대가 다음 세대를 위해 양보하는 이 없다면 인간은 물론이려니와 어떤 종족도 남아 있을 리 없었을 테니, 어미 된 자가 자식을 위해 군침을 삼키면서도 참을 수 있는 절제는 도덕보다 위대한 본능의 힘이다. 자식이 먹는 것만 보고서도 어미의 배가 부른 경지는 씨를 남기려는 생존 본능의 한 절정인 것을.

 

그런 개체들의 눈물겨운 노력을 보다 못해 인간은 도덕을 만들어 사회적 공생을 모색한다. 그 도덕률이 생긴 이후 밥을 둘러싼 욕망은 저열하게 취급된다.고상한 인간일수록 그깟 밥 문제로 다투지 않는다. 거룩할수록 밥에서 멀고 밥을 양보할수록 선에 가깝다. 밥을 양보하는 것이 인간적이고 그를 차지하려는 짓은 동물보다 못하다. 학교는 그런 도덕을 전달해야 하는 의무에 충실하게 밥을 금욕의 대상으로 삼도록 가르친다.

 

초등학교는 먹기 싫은 반찬도 먹어야 하는 욕망의 절제를 영양의 균형을 위해서 받아들여야 한다고 훈련시킨다. ·고등학교는 제 돈을 내고 먹는 밥인데도 국가에서 주는 밥인 듯이 착각하도록 모든 용어를 급식으로 통일한다. 식당의 명칭도 밥을 주는’, ‘급식실이다. 급식이라는 용어는 누군가 나를 위해 공급해 주는 밥이라는 의미를 담아 학생을 수혜자로 바꾼다

 

실상 학교에서 이뤄지는 급식은 제 돈을 내고 사먹는 매식이다. 하지만 돈이 욕망의 다른 이름인 이 시대에 제 돈 내고서도 그 욕망을 내세워선 안되는 게 급식의 논리다. ‘푼돈내고 밥 얻어먹으면서 군소리하지 말라그게 이 용어에 담긴 금욕의 법칙이다. ‘주는 밥이므로 고맙게 먹고 투정하지 말지니, 이 곳은 밥에 대해 경건해야 할 교육의 장일지니. 밥을 시빗거리로 삼는 일은 불경한 욕망이며 드러낼수록 네 인간적 가치는 하락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는 전제가 있다. 다음 세대를 위해 자기 세대를 희생하는 고매한 도덕성이 담겨야 한다. ‘우리 세대를 희생해 너희들에게 주는 것이니 비록 성에 안 차더라고 참고 견뎌라. 이게 우리가 너희에게 베푸는 최선이다. 그러니 다소 부족하더라도 나눠 먹어라. 그렇게 견디는 배고픔이 너희를 구원하리라.’ 이쯤 되어야 밥은 인간적 품격을 얻어 도덕적 논의의 대상이 된다.

 

급식에서 칼날이 나오고, 썩어가는 고기가 음식물이 되는 순간, 그 밥은 한 세대의 탐욕을 다음 세대에게 가르친다. 학생들이 밥을 앞에 놓고 투정하거나 밥을 모독하지 않는 대가로 어른 세대는 탐욕의 배를 채운다설익은 밥도 고맙게 먹어야 한다거나 반찬이 부족하고 간에 맞지 않아도 거룩한 밥이기에 참고 먹어주는 도덕률의 성과는 소수에게 돌아간다그러면서 세상에 믿을 놈 없다는 조숙한 가치관을 익힌 세대는 다음 세대를 약탈하며 사는 우리 시대의 처세법을 먹으면서 익힌다

 

누가 이런 시대가 올 줄 알았으랴사람이 자기 먹을 것을 갖고 태어나던 시대가 가고 사람이 자기만 먹고 다음 세대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는 시대가 올 줄이야먹을 것을 물려주기는 커녕 애도 낳지 않는 세대가 올 줄이야

 

 

* 필자 임병구 님은 인천기계공고에서 학생들과 동고동락하시면서 인천교육개혁연대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