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의 침묵 금해호 총성의 진실-(2)남겨진 가족들의 고통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5-19 15:35:17
아이들 억울한 죽음 보상은 커녕 악몽만
35년의 침묵 금해호 총성의 진실-(2)남겨진 가족들의 고통
“어머니는 두 딸의 주검조차 못 봤다. 피투성이가 된 자식의 시신을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어서가 아니었다. 군의 작전이 어린 목숨을 앗아갔듯, 두 딸아이의 장례 역시 어미도 모르게 작전하듯 치렀기 때문이었다.
자식의 마지막 가는 길조차 볼 수 없었던 어미의 심정은 어떻겠어요. 돌덩이처럼 굳은 한이 가슴을 짓누르는데…” 맏딸 기숙(당시 11세)과 둘째 기연(당시 8세)을 잃은 슬픔에 이순자(67·인천시 서구 석남동)씨는 3년 동안 통곡의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 두 딸이 차디찬 땅 속에 묻힐 때까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어미의 통한이었다.
몸은 점차 말을 안 들었고, 1년 동안을 걷지도 못했다. 한꺼번에 두 딸을 잃은 억울함과 영문조차 모른 채 천륜을 끊어야만 했던 허탈함 때문이었다. 억장이 무너져 내린 아버지 염필주(71)씨도 허구한 날 술로 살았다.
염씨 부부의 기구한 운명은 이렇게 시작됐다. 서울서 직장생활을 하던 조카(당시 20세)가 동구 화수동에 살던 염씨 집에 들렀다. 하룻밤을 묵고 다음 날 금해호를 타고 강화군 길상면 선두리의 집에 갈 요량이었다.
기숙과 기연은 ‘강화에 간다’는 고종사촌 오빠의 말에 “따라 가겠다”며 밤새 매달렸다. 사촌 오빠의 집에서 얼마 안 떨어진 곳에 할아버지가 있는 큰 아빠의 집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한국유리 일용직 사원이었던 아빠와 3개월 된 젖 먹이 아들을 돌봐야 했던 엄마는 ‘오빠를 따라 큰집에 가고 싶다’는 두 딸의 간청을 두말없이 받아들였다.
다음 날 금해호에 오른 기숙과 기연은 짧은 생을 접어야만 했다. 3발의 총탄은 기숙의 왼쪽가슴을 뚫고 나갔고, 수류탄 파편은 기연의 왼쪽 윗배에 박혔다. 두 아이 모두 그 자리에서 숨을 거뒀다. 다행히 사촌 오빠는 ‘객실 뒷문을 지키라’는 안 일병의 지시로 용케 목숨을 건졌다.
(▲기숙,기연(왼쪽부터))
“그 날 자정 무렵쯤 일거예요, 경찰관이 사촌조카를 데리고 집에 왔더라고요.” 경찰관은 다짜고짜 염씨를 중구 율목동 인천기독병원으로 데려갔다. 피투성이의 두 딸은 이미 싸늘한 주검으로 변한 뒤였다.
“딸들의 죽음조차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어요. 경찰관이 매일 같이 찾아와 입단속을 종용했으니까요.” 이씨는 딸들이 가는 마지막 길조차 지켜보지 못했다. 3개월 된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어 다음 날 병원에 가서 볼 참이었으나 경찰이 벌써 장례를 치른 것이었다.
이 씨는 두 딸이 묻힌 곳이 부평공동묘지라는 사실도 나중에 알았다. 두 딸을 잃은 염씨 부부에게 돌아간 것은 병원비에 위로금 50만원씩 100만원이었다.
염씨는 아들(당시10세)과 딸(당시 13세)를 잃은 K(85)씨와 함께 해군본부와 국방부, 국무총리실 심지어 청와대까지 찾아다니며 원인조차 모르는 딸들의 죽음에 대해 진상을 밝혀 줄 것을 호소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관계기관에 면밀한 조사처리후 결과를 회신토록 지시했으니 기다려라’는 답변 뿐이었다. 진정서와 탄원서를 거듭낼 수록 염씨와 K씨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외압이 옥죄어 왔다.
‘금해호 사건’이 외부에 알려지면 세무조사를 벌이겠다”는 경찰의 압력을 받은 K씨의 누이 남편은 K씨를 매일같이 찾아와 ‘아무 말 말고 조용히 사는 것이 나를 살리는 길’이라며 애원했다. K씨의 누이 남편은 당시 인천시내에서 유명한 개인병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무슨 보상을 받아요. 그 때 사고로 오른쪽 팔꿈치가 으스러지고 양쪽 무릎에 총상을 입어 병원과 한약방을 하루가 멀다하고 나니고 있어요.” 주소지를 옮기지 않아 강화의 작은 집에 머물면서 예비군 훈련을 받고있던 남편(61)의 얼굴을 보기위해 100일 된 아들을 엎고 시할머니(당시 58세)와 금해호에 탔다가 사고를 당한 백모(55)는 보상 한푼 받지 못했다. 백씨는 아직도 끔찍했던 그 때의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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