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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이야기

35년의 침묵 금해호 총성의 진실-고약하게 꼬인 안일병 운명

by 형과니 2023. 4. 9.

35년의 침묵 금해호 총성의 진실-고약하게 꼬인 안일병 운명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5-19 15:58:01

 

무심코 꺼낸 수류탄 2발 처리 조바심···비극으로

 

35년의 침묵 금해호 총성의 진실-고약하게 꼬인 안일병 운명

 

 

금해호 참사는 수류탄 2발이 고약하게 꼬이면서 빚어낸 비극이었다. 205 전투경찰대 제1소대 2분대에 소속돼 해안초소와 막사 경비를 담당했던 안모(20) 일경은 1972710일 오후 430분쯤 3분대 막사 안에서 자물쇠를 잠그지 않은 수류탄 보관함을 봤다.

 

 

 

 

(금해호 사건으로 197412월 사형수로 처형된 안모 일병이 쓴 탄원서 일부의 모습. 김성중기자 jung@i-today.co.kr)

 

서울시 동대문구에서 떡 방앗간을 하던 집안이 갑자기 기울면서 다니던 공업고등학교를 그만두고 입대를 해야 했던 안 일경은 자괴감에 빠져 있던 상황이었다. 대학에 다니는 친구들은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었고, 잘 사는 집을 보면 이유 없이 증오했다.

 

그러던 그는 무심코 무기함에 손을 대 수류탄 2발을 꺼냈다. 수사기관이 재판부에 보고했던 것 처럼 일본으로 밀항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범행도구로 사용하기 위해 수류탄을 몰래 훔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일본말도 할 줄 모르고, 그렇다고 일본에 친척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안 일경은 훔친 수류탄을 막사 근처의 땅 속에 묻었다. 상관과 동료들에게 발각될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없애야 한다는 조바심에 바닷물에 빠뜨릴까 고민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88일 안 일경은 다음 날 오후 5시까지 얻은 정기외출 때 수류탄을 가방 속에 숨겨 부대를 나왔다. 부대와 멀리 떨어진 곳에 버리기 위해서였다.

 

이날 집에서 저녁식사를 한 안 일경은 수류탄을 버릴 곳을 물색했지만 마땅한 곳을 차지 못하고 친구 집에서 그냥 하룻밤을 보냈다. 아무데나 버렸다가는 폭발로 죄 없는 사람들이 다 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안 일경은 수류탄을 처리하지 못 한 채 귀대시간을 넘겼다. 수류탄이 없어진 사실에 부대 안이 발칵 뒤집혔을 생각을 하니 안 일병은 도저히 부대에 복귀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정처 없이 떠돌던 안 일병은 서울시 종로구의 큰 기와집에 들어가 딸과 아버지를 협박한 뒤 현금 5만원과 1만원권 수표 3, 시가 7천원 상당의 일본제 시계를 빼앗았다. 자신의 행동에 자괴감을 느낀 안 일경은 딸과 아버지를 옷장에 가두고 빼앗은 돈은 그 자리에서 찢은 뒤 부엌에 있던 곤로를 방으로 가져와 석유를 뿌린 뒤 불을 질렀다.

 

큰 죄를 저지른 안 일병은 삼화고속을 타고 인천으로 내려왔다. 아무도 자신을 못 알아보는 일본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군복차림에 전투경찰마크 군복차림을 한 안 일병은 검문 없이 승객들에 묻혀 금해호를 탔다.

 

인천서 동검도까지 2층 갑판에 혼자 있던 안 일병은 선장실 뒤 방에 들어가 목적지까지 편히 가라는 선원의 말에 따라 선장실로 들어갔다.

 

안 일병은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아 선장 권모(당시 38)를 위협해 금해호의 뱃머리를 인천 쪽으로 돌렸다. 그러나 한눈을 판 사이 선장은 선장실에서 빠져나와 몸을 피했고, 안 일병은 객실 안으로 들어갔다.

 

수류탄을 들어 보이면 움직이면 수류탄을 터트리겠다고 협박한 뒤, 잠시후 객실 분위기가 진정이 되자 매점의 사이다와 빵을 객실마루 한 가운데에 놓고 앉아 승객들에게 건네며 안심시켰다.

 

승객들의 설득이 이어졌고, 안 일병도 헝클어진 마음이 한층 누그러졌다. 인천에 도착해 자수를 한 뒤 죄 값을 달게 받겠다는 결심도 했다. 하지만 바로 그때 해군 경비정의 사격이 시작됐고, 가슴에 총상을 입은 안 일병은 수류탄을 바닥에 떨어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