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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광철의 전망차301

열우물의 마을사랑 열우물의 마을사랑 인천의문화/오광철의전망차 2010-09-28 05:28:49 열우물의 마을사랑 동암역 북광장에서 북향하여 고갯길을 넘으면 부평쪽으로 가는 대로를 만난다. 이 길이 원통로이며 인근 일대가 옛 열우물 마을이었다. 예전에 걸어서 부평방면으로 가자면 도화동5거리로 해서 주안을 지나 염전지대요 어찌어찌하여 다다른 동네가 열우물이었다. 샘 잘나는 우물 몇곳이 있어 여름철 길손들은 잠깐 한모금 물 마시고 숨 돌리며 쉬어가는 곳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우물이 여러곳 있어 열우물(十井洞)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인천지지’의 저자 이훈익옹은 그것이 十井이 아니라 十丁의 오기라고 했다. 井이나 丁이 같은 발음이기 때문에 그렇게 쓰였다는 것이다. 이옹의 주장으로는 원래 십정은 인근의 산세가 十자가 되듯 十.. 2023. 6. 14.
백령도 물호돌이 백령도 물호돌이 인천의문화/오광철의전망차 2010-09-28 05:25:23 백령도의 서북쪽 끄트머리에 두무진이 있다. 기암괴석이 병풍 처럼 늘어선 명소이다. 포구에서 유람선을 타고 나서면 곧 왼편으로 돌아 위치하는데 신선바위 코끼리바위 촛대바위 등이 정렬하듯 서있다. 그리고 그것들이 끝나갈 무렵 넓직한 바위들이 물결을 비집고 떠오르듯 잠기듯 한다. 이것이 물개바위요 물범들이 쉬고있는 모습을 발견할수 있다. 희귀종이라는데 관광객들은 미처 느끼지 못하고 물개겠거니 지레짐작한다. 예전부터도 물개라고 여겼으며 주민들은 ‘움푹이’라고 했다. 선녀가 노니는 곳이어서 사람이 근접못할 것으로 알고 녀석들이 그곳에 모여산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녀석들이 출산하는 겨울철 추위가 한창일 무렵 주민들은 사냥에 나섰다. 사람이.. 2023. 6. 14.
45년여름 계산동은 45년여름 계산동은 인천의문화/오광철의전망차 2010-09-28 05:22:45 1945년 여름은 참으로 급박했다. 열한살 어린 것의 눈으로도 짐작할 수 있었다. 진작에 하늘 높이 비행운을 그리는 B-29 공습이 잦더니 학교앞 도원동 작은 공장을 소련 비행기가 폭격했다. 교실에는 빈자리가 점점 많아졌다. 시골에 친척이 있는 어린이들을 소개시키더니 갈 곳 없는 어린이들은 모아 아예 학교가 단체로 피란을 갔다. 창영학교는 여주군 어느 지역으로 갔다고 했다. 4학년의 전망차자는 부평읍내라던 지금의 계산동 외가집으로 갔었다. 그해 8월13일이던가 김포비행장 상공에서 미·일 공군기들이 공중전을 벌였다. 외사촌과 방공호에 피하여 내다보이는 출입구로 일본기가 쫓기는 것을 보고 씁쓸했었다. 일본이 세계 최강이요, 전쟁.. 2023. 6. 14.
1895년 답동성당 주변 1895년 답동성당 주변 인천의문화/오광철의전망차 2010-09-28 05:21:53 지난88년 발간한 천주교 인천교구사 제2집의 사진 한장이 눈길을 끈다. 곧 마라발 신부집 주변도면이다. 주석은 1895년 ‘마라발 신부의 피격사건’의 일본경찰 조서에 첨부되었던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마라발 사건이란 그해의 첫날이던 1월1일 까닭없이 외국인 신부를 구타하는 등 일본인이 저지른 행패를 말한다. 사건의 개요는 이러했다. 그날 오전 11시경 한국인 소년들이 성당 문앞에서 연을 날리고 있었는데 지나가던 일본인들이 연을 빼앗는 등 훼방했으며 마침 신부에게 발견되자 그들은 달아났다. 그러나 일본인이 그들 경찰과 집단으로 나타나 한국인 소년들을 때리고 이를 말리던 마라발 신부를 구타, 수염을 잡아뽑고 옷을 찢으며 .. 2023. 6. 14.
이종화 공립병원장 이종화 공립병원장 인천의문화/오광철의전망차 2010-09-28 05:20:18 인천신문 연재물 김윤식 시인의 ‘인천산책’ 사진자료중에 공립병원이란 간판을 보고 반가웠다. 신흥초교에서 답동광장 그리고 인천우체국을 향한 거리풍경-키네마극장 자리의 외환은행이 건립되기 이전이니 아마도 1960년대초 사진들인듯 하다. 그때 이 도로를 5·16도로라고 했었다. 전쟁의 폐허를 걷어내고 군인시장이 권총 차고 개설했다고 해서 그렇게 불렀었다. 그 이전 검진 지정병원이던 공립병원은 내동 중소기업은행 곁에 있었다. 이종화(李宗和) 원장이셨다. 그분은 때때로 사진기를 들고 촬영을 다니셨다. 그의 소책자 ‘문학산’은 귀중한 자료로 남아있지만 또한 그가 출판한 ‘인천사진문화사’는 별로 아는 사람이 없다. 그것을 펴보면 인천의 사.. 2023. 6. 14.
중화루 가던 길 중화루 가던 길 인천의문화/오광철의전망차 2010-07-24 13:51:08 아마도 1940년대초였으리라.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이었다. 전망차자는 금곡동 샛골에서 중화루가 있던 중앙동까지 혼자서 걸어다녔었다. 아버지의 근무처 K운수사가 중화루 바로 옆집이었다. 지금은 그곳이 세탁소가 되어 있다. 지금으로 치면 항만하역업이라고 할 2층구조의 운수회사에 들어서면 몇개층의 창고가 있고 가파른 돌층계로 내려가면 유모사장의 살림집이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면 또다른 작은 도로가 있고 중화루의 뒷문도 그리로 통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일곱 여덟살 짜리를 거리에 내놓지 않겠지만 그시절 전망차자는 곧잘 그 먼길을 가고 왔었다. 일본인의 ‘노다쇼유’ 간장공장(지금의 동부경찰서)을 지나 배다리와 싸리재 그리고 긴담모퉁이로.. 2023. 6.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