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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염전이야기17

주안 염전 / 국내 최대의 천일염 산지 주안 염전 / 국내 최대의 천일염 산지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2022-03-26 01:29:52 한국 최초의 천일염 산지였던 주안(朱安) 염전의 광활한 모습. 인부들이 소금을 채취하고 있다. 주안 염전 / 국내 최대의 천일염 산지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아침저녁으로는 한기마저 찾아들고 하늘도 높고 푸르러졌다. 60년대식 인천 정서로 말한다면, 낙섬이나 주안 염전에 순백의 소금이 쌓여 가는 그런 풍요의 계절이다. 여기저기 봉곳이 솟아 있던 소금더미들과 창고가 어우러진 모습은 인천의 이색 풍물이자, 청정(淸淨)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주위에 염전이 사라진 지도 꽤 오래인 것 같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인천의 소금 산지는 원래 서구와 계양구 해안 일대였다. 여기서 생산되는 소금은 곡.. 2023. 7. 8.
천일염전의 효시 천일염전의 효시 仁川愛/인천이야기2008-10-31 10:44:21 천일염전의 효시 조우성의 미추홀 중국에서 가장 오랜 제염소는 산서성(山西省) 북쪽에 있었다고 한다. 황량한 벌판과 헐벗은 산들이 이어진 그 지역에서는 끊임없이 전쟁이 벌어졌는데, 소금 밭과 다름없는 운성호(運城湖)를 쟁탈하기 위해서 였다는 것이다. 땡 볕에 호수물이 증발하면 호수 바닥에서 손쉽게 소금을 긁어 모았다는 얘기다. 소금을 비로소 인공적으로 만든 것은 한나라 때 항아리에 바닷물을 넣고 졸였던 것이 처음이라고 '소금'의 저자 마크쿨란스키는 추정한다. 그것이 전통적 제염술이었다. 흔히 전오염(煎熬鹽)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도 고래로 이 방법을 써 왔다. 조선 후기 영종·용유도에 거주했던 염부(鹽夫)들도 염벗에서 온종일 불을 때며.. 2023. 5. 15.
인천의 마지막염부 강성식씨 인천의 마지막염부 강성식씨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2011-10-24 21:03:47 인천의 마지막염부 강성식씨 염판 위 바람 머물면 소복이 소금 꽃송이 2011년 10월 06일 (목) 14:00:04 안재균 기자 ajk@kihoilbo.co.kr “바닷물을 끌어들여 소금을 만들려면 절차가 꽤나 복잡하고 시간도 많이 걸려요. 우선 저수지로 바닷물을 끌어들였다가 증발지로 보내 햇볕과 바람으로 물을 증발시킨 후 난치(제1증발지)와 누테(제2증발지)를 거치면서 염도가 높아진 물을 결정지로 보내면 그제야 소금이 일어나게 돼요.” # 인천의 마지막 염부 해와 물, 그리고 바람은 자연만물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벼가 익어 가기 위해, 과일이 영글어 가기 위해, 그리고 음식의 맛을 내는 소금을 만들기 위.. 2023. 5. 1.
주안 염전 / 국내 최대의 천일염 산지 주안 염전 / 국내 최대의 천일염 산지 한국 최초의 천일염 산지였던 주안(朱安) 염전의 광활한 모습. 인부들이 소금을 채취하고 있다. 주안 염전 / 국내 최대의 천일염 산지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아침저녁으로는 한기마저 찾아들고 하늘도 높고 푸르러졌다. 60년대식 인천 정서로 말한다면, 낙섬이나 주안 염전에 순백의 소금이 쌓여 가는 그런 풍요의 계절이다. 여기저기 봉곳이 솟아 있던 소금더미들과 창고가 어우러진 모습은 인천의 이색 풍물이자, 청정(淸淨)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주위에 염전이 사라진 지도 꽤 오래인 것 같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인천의 소금 산지는 원래 서구와 계양구 해안 일대였다. 여기서 생산되는 소금은 곡식이나 돈보다 얻기 어려운 귀물이어서 그 옛날 인천 경제에 큰.. 2023. 5. 1.
인천 소금 인천 소금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2-20 04:13:47 인천 소금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인천’ 하면 곧장 소금을 떠올리던 시절이 있었다. 한국 최초로 천일염을 제조한 곳이었기 때문에 소금이라는 말이 차라리 인천을 지칭하는 별명처럼 붙었던 때였다. 1907년 일본인들이 주안에 염전을 만들어 시험 제조에 성공한 뒤 남동, 소래, 군자 등지에 이르는 방대한 지대에 염전을 축조했으니 인천과 소금이 자동으로 연상될 만도 한 것이었다. 물론 ‘인천 짠물’ 운운하는, 듣기에 다소 곱지 않은 별칭은 개항과 광복, 6.25 사변 등 급격한 사회 변화를 겪을 때마다인천 땅에 밀어닥친 외지 유입 인구와 함께 각박해지는 인심을 빗대던 칭호라고 하겠는데, 그것이 마침 소금물로 상징화되었던 것이다. 인천이 전국 최대의.. 2023. 3. 20.
최병관의 추억속의 염전(12 - 20 최종회) 최병관의 추억속의 염전(12 - 20 최종회) 인천의문화/최병관의 추억의 염전 2007-01-25 01:31:17 최병관의 추억속의 염전(12 - 20 최종회) 어느 날 아랫집에 사는 달리기 잘하는 ‘병오’의 꾐에 넘어가 누런 닭 알 한 개를 슬쩍해서 엿을 바꿔 함께 맛있게 먹었다. 설령 아버지가 아시면, 한 마리가 병이 나서 알을 못 낳았다고 할 판이었다. 무사히 하루가 넘어가길 빌고 또 빌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버지는 저녁상 앞에서 어느 놈이 알 하나를 먹어치웠느냐고 이실직고 하라는 것이었다. 매일매일 둥지에서 알 꺼내는 일은 내 몫이었기 때문에 화살이 나에게 올 것은 뻔한데 그 생각을 못한 것이 후회가 되었다. 눈치를 챈 어머니가 옆에서 “오늘은 한 마리가 알을 낳지 않았는데 왜 그러우” 하셨다... 2023. 3.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