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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염전이야기17

최병관의 추억속의 염전(5) 최병관의 추억속의 염전(5) 인천의문화/최병관의 추억의 염전 2007-01-25 01:24:19 최병관의 추억속의 염전(5) 송 이병은 염전의 힘겨운 노동으로 근육질이 단련되어 있었으며, 인상이 험악하고 온 몸이 검둥이처럼 검게 타 있었다. 매사에 침착한 그였지만,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야 너 이리와. 그래 나 인천 짠물이야. 그런데 너희들에게 무었을 잘못했다고 말끔 마다 인천 짠물이라고 석죽이냐” 라고 하면서 그는 큼직한 두 손으로 김 이병을 번쩍 들더니 문 밖으로 내동댕이치는 것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어서 말릴 틈도 없었다. 그의 힘은 대단 했다. 염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80㎏ 짜리 소금자루를 거뜬히 어깨에 메고 다니는 것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의 힘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그.. 2023. 3. 13.
최병관의 추억속의 염전-2. `인천짠물' 훈련병의 용기 최병관의 추억속의 염전-2. `인천짠물' 훈련병의 용기 인천의문화/최병관의 추억의 염전 2007-01-25 01:20:11 최병관의 추억속의 염전-2. `인천짠물' 훈련병의 용기 훈련병들은 정해진 시간 내에 머리를 빡빡 깍아야 했기 때문에 그 광경은 요지경이었다. 머리 깍는 기계는 이빨이 듬성듬성 빠져있는 엿장수에게나 줄 녹슨 고물이었다. 아프다거나 “잘 좀 깍아!” 라고 하면, 그 무서운 조교가 언제 달려왔는지 “인천 짠물 대가리 박는다. 복창 실시!” 조교의 호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맨땅에 머리를 곤두박아야 하니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오죽하면 인천에서 태어 난 것을 후회하는 장병들이 있었을까. 필자는 다행히 머리를 빡빡 깍고 입소를 한 탓에 이발사로 뽑혔지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2023. 3. 13.
최병관의 추억속의 염전(1) 최병관의 추억속의 염전(1) 인천의문화/최병관의 추억의 염전 2007-01-25 01:09:18 인천사람들 대명사 `짠물' 최병관의 추억속의 염전(1) 최병관씨 작품 중 `소래 염전' 인천은 소금과 성냥공장으로 알려진 고장이었다. 특히, 인천사람들은 군에 입대를 하는 날부터 제대를 하는 날까지 ‘짠물’이라는 별명이 귀신처럼 붙어 다녔다. 자대로 배치를 받으면 고참병들이 “짠물! 성냥공장 아가씨 노래를 불러봐.” 라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인천사람들을 ‘짠물’로 몰아부치며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본다는 것이었다. 필자는 1971년 2월 머리를 빡빡 깍고, 수인역에서 논산으로 직행하는 병력수송용 기차에 몸을 실었다. 병역의 의무를 위해 논산훈련소로 가기 위해서였다. 밖에서는 부모와 얼싸안고 전장으로 떠나는 것도.. 2023. 3. 12.
주안염전 주안염전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1-14 20:07:48 인천 주안 염전은 해방후 1960년대 까지만해도 초등학교 교과서에 우리 나라 최초의 염전으로 소개되었던 우리 고장의 자랑스런 염전이었다. 주안 염전은 1907년 현 주안 산업단지 지역의 옛 간사지에 1정보 규모의 천일제염 실험 염전을 설치하였다. 운영해 본 결과 성공을거둠으로써 우리 나라 서해안 여러 지역에 근대적인 천일제염 염전이 확대 보급되는 계기를 마련한 염전 개척의 선구지가 되었다. 1. 우리의 전통적 제염 방법 우리 고장은 남북으로 길게 발달한 103.8km의 해안선을 갖고 있고 또한 해안 전체가 넓은 갯벌로 되어있기 때문에 썰물이 되면 넓게 발달한 갯벌이 전부 노출되어 장관을 이루고 있어서 일찍부터 이 갯벌을 이용하여 소금을 생산하.. 2023. 3. 10.
주안 염전 주안 염전 仁川愛/인천이야기 2022-04-09 01:10:30 주안 염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소금이 만들어진 곳은 당시 경기도 주안(현 부평구 십정동 588의 7 서울제강(주)앞)이었다. 자연증발식으로 소금을 얻을 수 있는 천일염전이었던 주안염전은 당시 재염업계에 일대 혁명적인 일이라 할 수 있었다. 국민생활에 미치는 영향 또한 막대했다. 생산비를 휠씬 줄이면서도 질 좋은 소금을 대량으로 거둬들일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 그 생산과 판매를 정부가 관장했기 때문이다. 주안염전이 생기기 전까지 우리나라의 소금은 민간 업자들이 농축된 바닷물을 가마솥에 넣고 끓여 얻어냈다. 그러나 이 같은 방식으로 생산된 소금은 국내 소비량의 3분의2밖에 충당할 수 없었다. 나머지는 주로 중국과 일본 등지에서 수입한 소금으로 .. 2023. 3.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