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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염전이야기

천일염전의 효시

by 형과니 2023. 5. 15.

천일염전의 효시 

仁川愛/인천이야기2008-10-31 10:44:21


천일염전의 효시 
조우성의 미추홀
 

중국에서 가장 오랜 제염소는 산서성(山西省) 북쪽에 있었다고 한다. 황량한 벌판과 헐벗은 산들이 이어진 그 지역에서는 끊임없이 전쟁이 벌어졌는데, 소금 밭과 다름없는 운성호(運城湖)를 쟁탈하기 위해서 였다는 것이다.

땡 볕에 호수물이 증발하면 호수 바닥에서 손쉽게 소금을 긁어 모았다는 얘기다. 소금을 비로소 인공적으로 만든 것은 한나라 때 항아리에 바닷물을 넣고 졸였던 것이 처음이라고 '소금'의 저자 마크쿨란스키는 추정한다.

그것이 전통적 제염술이었다. 흔히 전오염(煎熬鹽)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도 고래로 이 방법을 써 왔다. 조선 후기 영종·용유도에 거주했던 염부(鹽夫)들도 염벗에서 온종일 불을 때며 땀깨나 흘렸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전오염은 경비도 많이 들 뿐 더러 생산량도 적어 개항 후에는 값싼 청국 소금을 수입하게 되었다. 1908년 이후 일본계의 인천제염소 등에서는 그것을 재가공해 입자가 고은 백색의 제재염을 출하해 국내 시장을 석권했다.

청일 두 나라가 시장을 석권하자 우리나라의 재래식 생산 업자들은 줄줄이 도산하였고, 그에 따라 구한국 정부는 외국산 소금의 횡포를 막는 동시에 생산 방법의 개량과 증산을 위해 근본적인 대책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천일염전이었다. 1907년 정부가 인천 주안(朱安)에 1정보 규모로 축조했는데 그것이 효시였다. 성공을 거두자 남동, 군자와 평남의 광양만, 덕동, 귀성을 비롯해 충청, 전라 지방까지 퍼져나갔다.(조선전매사) "천일염은 이북의 평안도에서 처음 시작되었다."는 출처 불명의 설은 아무래도 믿기지 않는다.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