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이 담긴 詩 ⑧ - 최경섭의 바다
인천의문화/인천배경책과영화&문학
2007-08-10 10:36:07
인천이 담긴 詩 ⑧
소리쳐 부르기 전에 네가 먼저 나를 손짓하였다
- 최경섭의 바다
글·김학균 시인
연당 최경섭 선생께서 돌아가시기 전까지 필자를 놀라게 한 일이 세 번 있었다. 1957년 인천으로 오신 후 줄곧 교직에 몸담으신 기간 40년 동안에 우여곡절이 참 많았다. 신흥동 안국아파트에 사실 때 차남이 정신이상으로 옆집아이를 폭행한 사건 때문에 정신을 놓을 뻔 하신 일을 시작으로 정년 후의 생활은 참으로 어려웠다.
장남은 H개발(주)를 따라 중동현장으로 갔다가 아예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부모자식간 단절로 실의에 빠진 선생을 생각하며 우리는 “뭐 그런 자식이 다 있어” 하는 입에 담아서는 안될 욕까지 하게 되었다. 그로 인해 주공아파트 관리비 등 제세공과금이 수년간 체불되어 압류될 처지인 것을 해결했던 두번째의 사연. 그리고 부인과의 사별이 세번째 사연이다.
지나간 시절의 이야기지만 70년대 까지만 해도 문인들끼리 모인 술자리에서의 훈훈한 인정나누기는 그리운 일로 남아 지금도 되돌아가고 싶다. 80년대의 어느날 신포동의 ‘미미집’에는 하나 둘 모인 술꾼들로 화기애애 했다. “오늘 술값은 학균이가 계산한다” “다만 손대가리(손설향)와 연당 선생께서 많이 어려우니 십시일반 좀 해보자”하며 갹출한 돈이 꽤 되어서 30만원, 40만원으로 나누어 보탬을 드렸던 일이 기억에 생생하다. 아마 지금 같으면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일이지만 살맛 났던 그 시절 그때의 일이다.
정년 후의 생활이 왜 그토록 어려우셨을까. 아마도 후학과 제자라면 너무 믿었던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귀가 얕은것 또한 빠질 수 없는 흠으로 일시불로 탄 퇴직금을 송두리째 사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때문이리라. 법 없이도 살 분이 바로 이분이신데 어느 몹쓸 놈의 인간이….
인천에 거주지를 두고 문인활동을 한 시인들을 보면 (외지에서 온 사람들 포함) 한두 편의 인천을 주제로 한 시가 있을 법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아 더러 실망스러울 때가 있다. 연당 선생 또한 그러한 분으로 어렵게 찾아낸 ‘바다’라는 시를 소개할까 한다.
1976년 ‘경기문예’가 창간 될 때로 기억되는 이 작품은 인천의 서지학에 뜻을 둔 신연수씨에 의해 발견된 글로 연희전문 재학시절 월미도를 다녀가면서 쓴 시로 꽤 오래된 작품이다. 바다 바람이 이 염복의 계절에 청량감 있게 다가올 줄 누가 알겠는가.
바다
바다야
내가 소리쳐 부르기 전에
네가 먼저 나를 손짓하였다.
너는
나를 가까이 오라고 해서는
자꾸만 내 옷깃을 헤쳐 놓았다.
너는 나를 시골뜨기로만 아는 모양이다.
내가 대견하여 어루만져 주려고 하면
와 와 밀려와선 와락 떼밀고 달아나고
내 발끝 손끝을 철썩 입맞추고는 내뺀다.
바다야
너는 그렇게도 놀려대기가 좋으냐?
내 입술이 왜 이렇게도 짜냐?
너는 온통 가슴뿐이로구나!
한나절 속속들이 들여다보아도
네 검푸른 마음을 알 길이 없어
나는 모래밭을 거닌다...갈매기를 부른다.
평북 희천 출생(1910년)으로 농업고를 거쳐 연희전문 문과를 졸업하고 일본유학과 해방을 겪고 잡지사 편집기자, 1955년 중앙일보 문화부장을 끝으로 57년 교직에 입문, 인천에서 작품활동을 하며 정년을 넘기셨다. 1937년 ‘조광지’에 ‘초추’를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고 38년 첫시집 ‘풍경’을 간행하였으며 긴 휴식기 뒤 68년 제2시집 ‘종·종·종’을 간행했다. 이 시집은 저자의 인간적 수련과 경험, 인내의 과정을 잘 묘사한 글로 평가 되었다.
1969년 경기도 문화상을 수상하였으며 경기도 문인협회장을 역임하기도 한 연당 선생은 시인의 소양을 가지고 있는 분으로 역량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또다른 시간속에 살았다면 시인으로 대성할 사람이라고 칭송이 자자했었다.
연당선생의 종(鍾)은 쉬지않고 소리를 내고 있다.
지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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