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모래(이희철)의 소래포구
인천의문화/인천배경책과영화&문학
2007-07-31 03:26:04
인천이 담긴 詩 ⑦
해님, 달님, 끌고 미는
황해 물줄기
- 흰모래(이희철)의 소래포구
글·김학균 시인
영혼이 맑은 사람, 이렇게 말한다면 적합한 표현일성 싶다. 글은 맑고 구슬을 굴리는 듯 낭낭하다. 조용한 호수, 잔잔히 흐르는 냇물소리, 글 속에 있는 낱말 하나하나가 가슴에 와 닿는 것을 어쩌나.
1975년 9월 초순쯤으로 기억되는 우편물(동시집 바람개비) 겉봉을 살펴보아도 좀처럼 기억이 나지 않는 저자의 이름, 흰모래! 모래도 색깔대로 있나? 아니 검은 모래가 있을까, 이는 다 부질없는 말에 불과하지만, 그때 저자와는 생면부지한 사이로 당황스러움 이전에 참으로 고맙다는 인사라도 간절히 드리고 싶었다. 그 시절만 해도 책을 만든다는 것이 쉽지도 않은 때요, 책을 만들어 배본(더군다나 우편송부) 한다는 것이 힘든 시절 아닌가.
그렇게 그렇게 세월이 지나 76년경, 문협아동문학분과회장을 맡은 흰모래 선생과 마주하던 날 비로소 본명이 이희철 이라는 것을 알고, 글답게 조용한 성품의 저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동문학가로 인천의 문단사에 큰 족적을 남기신 분은 아니더라도 군더더기 없는 동시는 동요에 가깝고 곡을 붙이기 쉬워 많은 작품이 노래로 불려지는 업적(?)을 남긴 분으로「우리 까치야」란 작품이 창작동요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호는 구봉(龜峰), 예명은 흰모래로 22년 강원도 철원 동상면에서 3·1운동의 물결이 가라앉은 잠잠한 시기에 출생하긴 했으나 일제하의 밝지 않은 생활환경에서 자랐다. 곧바로 충남 예산군으로 이주해 5세 때 사종숙(四從叔)의 양자가 되었다. 외톨이로 성장 19세 때 일본으로 건너가 진외가 당숙되는 고암 이응로 화백의 주선으로 그림공부를 했으나 여의치 않아 문학의 길로 접어들었다. 요미우리 신문사 주최 ‘학생백일장’에서 「초동의 계절」이란 산문으로 입선, 글 재주를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해방과 더불어 귀국 교원시험에 합격 후 교직생활 무릇 27년을 아동들과 보냈으니 몸에 밴 것이 아동문학일 수밖에 없다고 한들 뭐랄 사람 있을까. 일본으로 가기 전, 17세에 결혼한 구봉은 강원도에서 태어나고, 충청도에서 성장하고 인천에서 생을 마감한 작가로 남다른 감흥을 가진 아동을 위한 글로 시작해 아동을 위한 글로 끝을 맺은 올곧은 사람이었다.
196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동시 「도시락 밥」으로 입선, 문단에 진출해 88년 ‘아동문학작가상’을 수상하고 동년에 인천문화상을 받았다. 1965년에 쓴 「초가집 낙수물」이 78년 세광출판사의 「세광동요 350곡집」에 박창욱 작곡으로 실려 아직도 어린이들이 입으로 읊조리고 있다는 것은 동심과의 관조를 통하여 순수세계에 접근을 꾀하려는 특색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가장 왕성한 창작의 시기에 펴낸 책으로는 첫 시집 「안신」(雁信, 1952)을 빼고 모두가 인천 이주 이후(1971)이다. 동시집 「바람개비」(1975), 「가을 산바람」(1983), 수필집 「동구나무」(1984), 전래동화집「꿩덕이와 구렁이」(1985), 「원통이 고개」(1986), 동시집 「산돌강돌」(1986), 「높은산 깊은 강」(1987) 등으로 새싹문고 인천지부장을 역임하며 이뤄낸 결과물이다. 1985년 인천의 바다를 보고 지었을 성 싶은 「바다」라는 시는 호기심과 상상력의 극치를 보여준 작품으로 성장기 충남의 교편시절 제자들이 뜻을 모아 세운 시비에 새겨진 시인의 얼굴이다.
한문학에 뜻을 두고 사시와 당시까지 섭렵한 구봉의 유학사상은 인륜주의와 덕치를 표방하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의 도덕 바탕위에 문학을 심은 삶, 영혼이 맑지 않을 수 있겠는가. 동시처럼 쓴 그의 시 ‘소래포구’로 가보자 왕눈이 우럭, 넓적 가오리가 있는.
소래포구
오늘은 봄나들이 소풍가는 날
개나리랑 진달래 꽃 파아란 새싹
언덕빼기 소나무 숲 남촌을 지나
우리가족 다다른 곳 여기는 소래
해님, 달님, 끌고 미는 황해 물줄기
부둣가 멈춰 쉬는 고깃배 위로
짭조름한 갯벌 바람 시원한 오후
손님맞이 여괴꾼의 안내 목소리
왁자지껄 활기 넘친 해산물 장터
한길가 포구 횟집 어항 앞에서
신기한 듯 바라보는 아기 눈동자!
뻐끔뻐끔 반달 큰 입 왕눈이 우럭
하늘하늘 떠오르는 넓적 가오리
위로 높이 솟구치는 바다 붕장어
그가 떠난지 일년이 조금 넘은 세월, 아동문학의 저변이 좁은 인천문단을 들여다보면 참으로 아쉽기 그지 없다. 성장지 충남 예산군 구봉리로 다시 간 시인 구봉. 시비와 더불어 누워 무엇을 생각할까. 창작이 왕성했던 인천의 바다가 흰모래로 반짝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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