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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광철의 전망차

부평교육 1번지

by 형과니 2023. 4. 17.

부평교육 1번지

인천의문화/오광철의전망차

2007-10-14 09:08:54


부평교육 1번지


넓지 않은 학교 운동장에 늙은 은행나무 두 그루가 서 있었다. 500년 되었다는 수령이 가리켜주듯 밑동은 삭아 금방이라도 쓰러질듯 했다. 마을사람들은 그것이 벼락맞아 그리 되었다고 했고, 일제강점기 일인교사가 하늘로 오르는 용을 베어 생긴 자국이라고도 했다. 그런데도 동편의 암나무는 은행을 몇 가마씩 열어주었다. 가을 비오는 아침이면 어린 것들이 모여 열매를 주웠다.


그리고 맑게 개인 어느날 은행나무를 의지하여 만국기를 띄우고 운동회가 열렸다. 새벽부터 옹기종기 나와 서성대던 어린이만의 날은 아니었다. 시골학교 운동회는 온동네 잔치였다. 인근에서 음식 보따리를 인 아낙들이 모여들고 노인들은 진작부터 거나하게 취해 있었다. 새옷으로 차려입은 총각들은 할 일 없이 서성이며 처녀들을 살피느라 바빴다. 하루해가 서산으로 기울 무렵이면 은행나무를 타원으로 달리는 계주가 아이들 함성으로 피날레를 장식했다.


계산동 부평초등학교의 예전 모습이다. 지난 1999년 개교 100년을 기념하여 만든 ‘부평백년사’의 서두 사진집에서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색바랜 사진들에서 만국기 늘어진 은행나무도 아이들의 함성도 읽을 수가 있다. 그때의 계산동은 계양산 자락이 흘러내리는 넓은 둔덕에 초가들이 듬성듬성 보이고 그 가운데에 부평초등학교가 있었다.
 
위치는 지금도 그대로이다. 경내엔 옛 부평도호부 청사가 자리하고 임금님이 김포 장릉 참배길에 들러 목욕과 활쏘기를 했다는 욕은지와 어사대가 있다. 지금 계산동은 계양구 관내요 별도의 부평구가 있으면서도 교명이 부평초등학교인 것은 그곳이 옛 부평읍이었던 곳이며, 그때의 교명을 그대로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교 몇주년’이라는 표기가 아니라도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기에 충분함은 졸업생들의 명단을 보아서도 짐작이 가능하다. 이영호(의료인) 심덕기(전 시의회의장) 이훈익(향토사학자) 이익진(계양구청장) 조기준(전 부평문화원장) 이흥우(언론인)씨 등 일일이 거명하자면 한이 없다.


#학교 #계산동 #부평구 #부평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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