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무(田耕武)선생
仁川愛/인천의 인물
2007-11-14 15:18:11
전경무(田耕武)선생
미추홀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로마의 복구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복권을 발행한 이후, 인류는 그 마력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듯 싶다. 자본주의 국가야 그렇다 치고, 공산주의 제국도 예외 없이 복권을 발행하고 있어 하는 말이다.
복권 중 가장 인기가 있는 것은 '로또'다. 1500년 무렵 이태리 제노바공화국에서 매년 90명의 정치가 중 5명을 추첨해 의원으로 선출한 것에 착안해 90개 숫자 중 5개를 뽑는 5/90 게임 복권이 나왔는데, 그게 로또의 효시라고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복권은 1947년 12월 올림픽후원회가 발행한 '올림픽 후원권'이다. 1948년 제16회 런던올림픽대회의 참가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것이었다. 140만매를 찍었는데, 1등에게는 당시 집 한 채 값인 100만원을 주었다.
이 복권에는 독립 운동가 전경무(田耕武) 선생을 추모하는 유영(遺影)이 특별히 디자인돼 있어 눈길을 모은다. 선생은 1906년 부모를 따라 하와이로 이주해 미시간 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내내 독립 운동에 몸을 바친 분이다.
광복 후 귀국해서는 올림픽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아 우리나라가 IOC 정식 회원국이 되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으나 1947년 5월 스웨덴 스톡홀름 IOC 총회에 참석차 비행 중 일본 후지산 부근에서 추락해 별세하고 말았다.
이번 '인천시민의 날'에 시 초청으로 선생의 손자 스컷 던(Scott H. Dunn) 씨가 내인했다. 그는 고서숙 하와이 국제자문관을 통해 할아버지 전경무 선생의 자취가 담긴 희귀 사진 자료들을 이민사박물관에 기탁해 주위를 흐뭇하게 했다. 사진들에는 장한 나라사랑을 몸소 실천해 온 역정이 역력했다. 정부는 1995년 선생에게 건국훈장을 추서했고, 2004년 유해를 대전 국립묘지에 안장했다.
/조우성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