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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이야기

바다 개척의 해안 매립

by 형과니 2023. 3. 10.

바다 개척의 해안 매립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1-14 20:07:02


우리 고장 인천은 일찍이 해안수면을 개척하여 생활터전을 넓혀 온 매우 오래 역사의 뿌리를 갖고 있다. 1883년 개항이 된 인천은 근대적인 새로운 도시로 탈바꿈하면서 항만과 도로 철로와 주택지를 확보하기 위해 부족한 땅을 많이 마련하고자 우리 나라 최초로 본격적인 해안 매립사업이 추진되었던 자랑스러운 고장이기도 하다.  옛날부터 해안을 매립하여 온 이 땅의 역사나 연대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개항 후 제물포항 주변 해안을 매립하기 훨씬 이전부터 현 서구 해안을 중심으로 오랜 세월동안 소규모의 간사지 매립이 이루어져온 것 같다.  이 고장에 해안 매립이 본격적으로 추진된 시기는 대개 개항 이후부터라고 보여지는데 이 매립사업은 그 후 100 여년 동안 계속 이어져 오고 있으며 앞으로도 2000년대 이후까지 이어질 것 같다. 그동안 인천 지역에서 추진해 온 해안 매립사업을 다음과 같이 크게 4단계로 구분하여 정리해 보고자 한다.

첫째, 개항 이전의 서구 해안 간척지
둘째, 개항 이후 제물포 해안 매립
셋째, 60년대 이후 종합적인 공유수면 매립
넷째, 2000년대를 향한 공유수면 매립
 

 1. 개항 이전의 서구 해안 간척지

인류역사를 살펴보면 해안을 이용한 간척사업은 먼 옛날부터 이루어져 왔다. 서구 해안 지역은 일찍이 간척지가 많이 개발되어 농경지로 이용되어 온 고장이다. 이 해안에 간척지가 자연 발생적으로 많이 생겨나게 된 까닭을 살펴보면 무엇보다도 해안의 입지적 조건이 좋았던 것 같다. 서구 지역의 예 해안은 크고 넓은 갯벌이 해안에서 멀리 수 km씩 넓게 퍼져있어 바다물이 나가는 간조 시에는 거수 해안 일대가 모두 육지로 변하는 수심이 얕은 해안을 갖고 있어 간척지가 일찍이 발전할 수 있는 조건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1) 모월곶면 해안

원창동에서 신현, 백석동에 이르는 해안은 반달모양으로 길게 반원을 그리고 있어 옛날에는 이 해안을 모월곶면(毛月串面)해안이라고 불려졌으며 또한 이 해안이 들쑥날쑥한 크고 작은 굴곡이 심해 마치 반달에 빗살모양의 털이 많이 생긴 해안과 같다 하여 모월곶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도 한다.  이처럼 들쑥날쑥한 해안의 갯골을 이용하여 제방을 쌓고 간사지를 만든 곳이 많아 지명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방죽명 또한 많은 고장이기도 하다.

이곳 해안은 간척지를 이용한 농지뿐 아니라 염벗을 비롯해 염전이 많이 개척된 해안이 있고 또한 이 해안의 넒은 갯벌은 어패류가 풍부하고 철새 도래지로도 유명하다.  특히 이곳에 날아드는 재두루미는 시조로 지정되어 보호받기도 했다.

그러나 국토종합개발 계획의 일환으로 이곳 서곶 해안은 1980년 초 동아개발이 이 해안을 매립하기 시작하면서 아름다웠던 해안은 모두 사라지고 광활한 육지로 변해 이제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어 아쉬움 또한 크다.

 

 2. 개항 이후 제물포 해안 매립

개항 후 제물포 지역은 외국인들이 들어와 자리를 잡으면서 청·일·미·영국 등 여러 나라 조계가 생기고 근대적인 도시로 새롭게 탈바꿈하는 건설 공사가 활발하게 진행되어 상가가 생기고 외국인들의 무역 거래 또한 날로 증가되어 자연히 이를 수용할 수 있는 항만 시설을 비롯한 도로 화물 하치장이나 대형 창고를 건설할 넓은 땅이 필요하게 되어 이러한 땅 문제를 해결하고자 제물포항 주변인 중앙동, 해안동, 신포동, 용현동에 이르는 해안을 매립하게 되었고 이어서 제물포항 서쪽 지역인 만석동 그리고 북쪽의 송현동, 송림동에 이어지는 해안까지 매립 공사가 이루어졌다.  이처럼 개항기로부터 시작된 해안 매립사업은 해방 전까지 이어지는 60년동안 계속 되었다. 이 기간에 이루어진 매립사업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응봉산 서쪽

남동쪽에 이르는 해안매립 만석동, 중앙동, 신포동, 용현동, 학익동에 이르는 해안지역

2) 일본인 거류지앞 해안

일본인 거류지는 현 중구청 지역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일본인들은 계속되는 인구 증가로 생활터전을 넓히고자 고심한 끝에 1887년(고종 24년) 조선정부에 해안 매립 신청을 받아 공사를 시작하기까지 여러 조계공사의 반대에 부딪쳐 한 대 계획이 지연되기도 하였으나 1898년에 해안 매립 공사를 착공하여 폭 57m 길이 258m의 해안 땅을 1899년 5월 완공 4천평의 땅을 넓혔다.

3) 인천 철도역 해안

1897년 3월 현 하인천 철도부지를 확보하기 위해 현 자유공원 서쪽 해안에 이르는 산기슭을 헐어 해안을 매립하였다.

4) 터진개 앞 해안

터진개 앞 해안을 현 신포동 앞 사도, 문도, 장의리 해안 지역에 이르는 지역으로 3만 여 평의 땅이 매립되었다. 1902∼1906. 4. 1)

5) 사동 해안

사동 해안은 2천평을 매립하여 화물창고 부지가 마련됐다.(1904∼1905)

6) 만석동해안

만석동 일대 간사지 46,980평을 매립하여 공장 부지를 확보하였다.(1905. 7∼1906. 9)

7) 현 오림포스호텔 언덕 주변 해안

인천 철도역쪽 해안과 오림포스호텔 언덕 주변 해안을 매립하여 18,000평을 확보 세관청사, 창고, 항구 잔교시설을 확장하고 하인천 철도를 해안 부두까지 끌어들여 화물수송을 원활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1906. 9. 23∼1909. 11. 11)

8) 각국 조계 앞 해안

세관 부두에서 터진개에 이르는 5천평을 매립.(1905. 8∼1909.10)

9) 어시장 해안

북성동 해안 끝 옛 월미도 육교 출발점 동편 해안 돌출부 3,668평을 매립하여 어시장이 들어섰다. (1929. 11. 1∼1931. 3. 2)

10) 대한제분 터 해안 

인천 철도역 뒤편 외국인 묘지에서 현 대한제분 공장일대 해안 64,727평을 매립하였다.(1904∼1943)

11) 학익동 앞 해면 : 234,688평 매립

12) 용현동 앞 해면 : 122,421평 매립

13) 제물포 북쪽 해안 매립

괭이부리에서 송현, 송림, 북쪽 해안과 인천교를 지나 주안공단(옛 주안염전)에 이르는 해안지역

14) 화수동 북쪽 해안

괭이부리에서 현 이천 전기 공장지역 30,567평을 매립 조선장 위험물 시설을 이곳으로 옮김.

15) 송현동 해면

송현동 수문통 하천(갯골) 변의 갯벌 해면 매립 7천평을 주거지로 이용(1939.6. 9 준공)

송현동 26,325평 매립(1941∼1943)

16) 송림동 북쪽 해면

1930년 : 6,700평

1939년 : 5,431평

 

 3. 60년대 이후 종합적인 공유수면 매립

1960년대 경제개발 계획이 추진되면서 1966년부터 5개년 계획으로 인천항 전면 도크화 사업으로 '토크'주변의 해수면이 매립되어 월미도와 소월미도가 육지로 변하고 연안부두에서 남항에 이르는 새로운 땅이 생겨나게 되었으며 1970년대에는 인천 해안을 종합적으로 매립하기 위한 기초조사를 통해 공유수면 매립 가능지 2,673,741평이 책정되어 이 계획을 토대로 연차적으로 임해공업단지 매립사업이 추진되었다.

 

 4. 2000년대를 향한 공유수면 매립

◀ 동아 매립지

인천이 1995년 광역시로 승격되면서 다시 한번 인천의 종합적인 토지개발 계획이 수립되어 임해지구 여러 곳의 공유수면을 매립하는 2000년대를 대비한 다양한 토지활용 계획이 구상되고 있다. 현재 바다 개척의 새로운 구상을 살펴보면 매립 가능한 5천 800여만 평의 공유수면이 책정되어 지난 해수면 매립 100년 역사 못지 않게 새로운 해수면 매립공사가 더욱 활발하게 추진될 전망이다.

1) 서구 해안 매립

동아매립지는 1980년 1월 농수산부로부터 농경지용으로 매립 허가를 받아 1980년 6월에 착공 11년만인 1991년 1월 준공되어 여의도 크기의 6배인 5백만 평의 새로운 터전이 생겼다.

2) 인천국제공항 건설을 위한 해수면 매립 

1992년부터 1999년 계획으로 영종도와 무의도 사이에 펼쳐져 있는 넓은 갯벌을 매립하여 16,990천평의 새로운 땅을 마련하는 인천 역사상 최대의 토목공사가 추진되고 있다.  앞으로 이 매립지가 완성되면 2020년까지 우리 고장 인천은 동북아시아 국제 항공교통의 중심지로 부상되는 아시아 최대의 공항을 갖게 될 것이다.

3) 송도 해수면 매립

송도 앞바다를 매립하여 국제첨단 교역정보 통신기능이 완비된 신도시를 건설 국제회의장, 종합무역센터, 국제물류센터를 마련할 수 있는 535만 4천 평의 해상도시를 2001년까지 건설할 계획이 추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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