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수부두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1-16 11:03:36
쪼그라든 할머니 젖가슴… 화수부두
부두는 노쇠한 모습으로 추억에 잠겨 있고
<인천 포구기행 ② - 화수부두>
30여 년전만 해도 만선의 깃발을 휘날리며 싱싱한 고기를 가득 실은 어선이 이곳에 배를 델 때면 사람 몇은 인파에 밀려 바다로 떨어질 판이었다. 지금은 북항 개발 등으로 인한 매립으로 뱃길이 점점 좁아지고 부두마당이 찌부러지고 있는 쇠락한 포구, 화수부두. 손가락 빨던 꼬맹이가 어른이 되었을 무렵 부두는 노쇠한 모습으로 추억에 잠겨 있다.
그곳이 6, 70년대 우리나라의 3대 어항이었다는 말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 대우종합기계 뒤편에 있는 화수부두는 한때 연평도 조기잡이 배를 비롯해 옹진, 강화, 충청도 앞바다에서 잡은 생선을 가득 실은 만선의 뱃고동이 울려 퍼지던 이름 난 포구였다. 수협공판장, 얼음공장, 어구상점, 식당 등이 즐비했고 부둣가에는 사람과 돈이 넘쳐나던 곳이었다.
화수부두는 6, 70년대 우리나라의 3대 어항이었다.
지금은 소래포구에 그 명성을 빼앗겼지만 한동안 화수부두는 새우젓항으로도 이름을 날렸다. 새우젓 배들이 입항하면 큰길까지 비릿한 난장이 서곤했다. 아직도 그곳에 가면 새우젓을 담았던 드럼통들이 녹슨 채 나뒹굴고 있다. 포구로서의 여백이 얼마 남아있지 않지만 아직도 몇 척의 어선들이 이곳을 근거지로 갈매기를 벗 삼아 물때 맞춰 바다로 나서고 있어 포구로서의 정취는 잃지 않고 있다.
기운 해처럼 황혼길에 접어 든 화수부두 곳곳에는 인천인들의 추억이 비린내 만큼이나 강렬하게 스며있다. 북적이던 사람들이 총총 사라지면 부두와 배위에 아무렇게나 자리잡은 이들이 대나무 낚시대로 망둥이를 낚아올리던 풍경도 화수부두의 일상이었다. 90년대 말까지 망둥이 낚시 대회가 이 곳에서 열리기도 했다.
잠시의 단상에서 퍼뜩 정신을 차려 출출한 속을 달래고 싶을 땐 주변에서 '꺼리'를 찾을 수 있다. 부두 안쪽에는 ‘서울식당’(772-4538)이라는 횟집이 망부석처럼 화수부두를 끝까지 지키고 있는데 이 집의 복요리는 상호에 걸맞게 서울까지 알려져 있을 만큼 맛이 좋다.
부두는 노쇠한 모습으로 추억에 잠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