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사하라’ 대청도 옥죽동 해안사구
인천의관광/인천의섬
2008-01-23 17:44:22
‘한국의 사하라’ 대청도 옥죽동 해안사구
우리나라에도 사하라사막이나 고비사막처럼 사막여행을 즐길 수 있는 곳이 있다.
인천에서 쾌속선을 타고 세 시간 반 남짓 달리면 도착하는 섬, 대청도가 바로 그곳이다.
‘서해 5도(백령도,대청도,소청도연평도-이상 인천광역시 옹진군/우도-강화군, 1973년 북한이 5개의 섬의 주변수역을 북한 연해라고 주장하면서 사용되기 시작한 용어)’ 가운데 하나인 대청도는 그동안 백령도의 유명세에 가려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못했던 섬이다.
크기 또한 백령도의 3분의 1밖에 안 되는 작은 섬이지만 인간의 손때가 덜 묻은 곳이어서 태고적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대청도의 수려한 경관 가운데 뭐니 뭐니 해도 최고의 자랑은 역시 마치 사막을 연상케 하는 옥죽동의 해안사구이다.
쾌속선이 드나드는 선진포구에서 오른쪽의 해안을 따라 놓인 고갯길을 넘자마자 곧바로 오른편으로 거대한 모래더미가 산 전체를 뒤덮고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한국의 사하라’라고 불릴 만큼 사막을 방불케 하는 모래언덕이 산 전체를 휘감으며 드넓게 펼쳐져 있어 입을 다물지 못할 지경이다. 아직까지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아 원시성 그대로가 잘 보존되어 있는 옥죽동 해안사구는 최근 세상에 알려지면서 찾는 이가 조금씩 늘고 있다.
옥죽동 마을 뒤편으로 멀리 산등성이 허리를 따라 하얀 모래언덕을 이룬 해안사구는 가로 1㎞, 세로 500m에 달하는 상당히 넓은 면적을 차지한다.
옥죽동 해안사구는 해변의 모래가 매일같이 바닷바람에 산기슭까지 실려 날아와 쌓여 형성된 모래언덕으로 국내유일의 모래산이다. 드넓게 펼쳐진 모래더미를 걷노라면 마치 작은 사막에라도 와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모래 한 줌을 손에 움켜쥐면 어느새 밀가루처럼 고운 입자의 모래가 손가락 사이로 소리도 없이 빠져나간다. 이렇게 고운 모래들이 해발 206m의 검은낭큰산의 북쪽 산등성이 약 80m 고도까지 뒤덮여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많은 모래가 황해바다로 난 바람길을 타고 중국에서 날아와 쌓인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는 전혀 터무니없는 소리이다.
이 모래의 고향은 해안사구 바로 앞으로 바라보이는 옥죽포해수욕장과 그 옆 농여해수욕장이다.
물이 빠지는 썰물 때면 드러나는 옥죽포해수욕장과 농여해수욕장의 드넓은 백사장에서 모래들이 강한 바닷바람에 실려 날아와 한 알 두 알 모여서 쌓여 해안사구가 형성된 것이다.
옥죽동 해안사구는 특히 바람이 강하게 부는 겨울철에 크게 성장한다. 겨울철 시베리아 고기압대에 놓여 탁월풍인 강한 북서풍에 의해 흩날린 모래가 멀리 산등성이까지 날아가 쌓인다.
특히 바람이 심한 날이면 모래가 산을 넘어 여객선이 드나드는 선진포구까지 날아가기도 한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의 남해안, 동해안, 황해안 전역에는 이러한 사구의 발달이 현저하다.
그런데 이곳 옥죽동 해안에 발달한 사구는 그 규모와 형태면에서 볼 때 다른 곳에 발달한 사구에 비해 매우 특이하고 수려한 경관을 지녔기 때문에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옥죽동 해안사구의 층의 두께는 아직 조사된 바가 없어 정확히 알 수 없다. 곳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모래가 많이 쌓인 아랫부분은 약 10m를 넘는 곳도 있다.
대청도 해안은 전체적으로 암석해안을 이루는데, 돌출된 곶과 곶 사이의 만에는 여지없이 모래가 쌓여 천혜의 해수욕장을 이루고 있다.
이와 같이 대청도에 형성된 해안의 모든 모래는 바로 규암의 풍화산물이다.
해안절벽에 드러난 규암층의 단면을 보면 인근 백령도와 소청도에 비해 대청도가 유난히도 습곡작용을 많이 받아 지층이 휘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바다로 떨어진 규암조각들이 해저에서 파랑과 조류에 의해 떠밀리면서 마식되어 모래가 생성되고 있으며, 생성된 모래들은 다시 파도에 이끌려 해안으로 공급되고 있다.
한편 옥죽동 모래언덕과 마주보고 있는 백령도의 사곶해안의 모래가 이곳 옥죽포 해안의 모래와 같은 성분이고, 북쪽에서 남쪽으로 남하하는 해류의 흐름으로 보아 상당부분의 모래들이 해류를 따라 백령도 쪽에서 운반되어 온 것으로 생각된다.
이곳 옥죽동에는 ‘모래 서발은 먹어야 시집을 간다’는 옛말이 있다. 예부터 이곳에 그만큼 모래가 많았음을 일컫는 말일 것이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마을 뒤에서 산꼭대기까지 전체가 모래더미로 덮여 있었다. 겨울철 모래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이면 눈을 뜨고 다니기가 어려울 만큼 모래가 넘쳐났다”고 이곳 옥죽포 토박이 장덕찬 씨는 말한다. 그런데 이런 옥죽동 해안사구가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다.
사구에 인접한 대청 1, 3리 주민들은 그동안 날아드는 모래로 인하여 빨래와 식사 등 생활에 큰 불편을 겪어왔다.
옹진군은 모래로 인한 주민들의 이러한 피해를 막기 위하여 1980년대 후반부터 2000년까지 10여 년간 소나무 2,000여 그루를 해안가에 심어왔는데, 그 효과가 최근 나타나고 있다.
10년 전부터 옹진군이 추진해온 사방(砂防) 조림(造林)사업으로 해안에서의 모래유입이 거의 차단되면서 사구의 모래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현재 사구에는 예전처럼 더 이상의 모래가 풍부하게 공급되지 않고 있으며 그 모양도 차츰 바뀌고 있다. 바닷가에 촘촘히 심어놓은 소나무가 차단막 역할을 하면서 사구에 모래가 공급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곳 주민들의 말로는 10여 년 사이에 사구의 크기가 거의 반으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바닷가 모래언덕으로 천혜의 자연경관을 뽐내던 대청도 옥죽동 해안사구도 이제 볼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동백나무섬 대청도
엄동설한에도 피는 꽃은 겨울 꽃의 백미인 동백이다. 하얀 눈을 맞은 채 피어 있는 동백꽃을 보고 있노라면 냉혹한 환경에서도 꿋꿋한 생명력을 이어가는 자연의 섭리 앞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동백나무는 차나무과의 따뜻한 난대성 수목으로 추위에 약하기 때문에 가장 추운 1월의 평균기온 0℃이상에서 자라는 특성이 있다. 그래서 동백나무는 우리나라의 따뜻한 남쪽 해안과 섬일 대에서 주로 자란다.
그러나 해양성 기후를 반영한 따뜻한 기후인 동해의 경우에는 울릉도, 황해의 경우에는 대청도 부근의 중위도에서도 자라고 있다.
그러나 울릉도와 대청도 이북에서는 춥기 때문에 더 이상 자라지 못한다. 따라서 대청도와 울릉도는 동백나무가 자연적으로 자랄 수 있는 자생 북한계로서 식물 분포학상 가치가 높다. 이런 이유로 특히, 대청도에 자라고 있는 동백나무는 천연기념물 제66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대청도 사탄해수욕장에서 내동으로 넘어가는 고개 정상부 못 미쳐 오른편으로 동백나무 자생지를 알리는 푯말이 나타난다. 이곳에서 계단을 따라 약 5분가량을 내려가면 산비탈 암벽에 기대어 뿌리를 내린 동백나무 60여 그루가 보인다.
1930년대에는 지름 20cm 크기의 동백나무 150여 그루가 커다란 군락을 이루고 있었으나 불법채취로 마구 뽑혀 나가고 지금은 모진 세월의 풍랑을 이겨낸 60여 그루만이 남아 있다.
대청도의 동생인 소청도에는 대청도보다 더 많은 수의 동백나무가 예동리 뒷산자락에 자라고 있다. 반면 더 북쪽에 위치한 백령도에도 동백나무가 자라고 있어 북한계선이 점차 북상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백령도에서는 수십 년째 남쪽에 위치한 화동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 동백나무를 찾아볼 수 없어 백령도에서도 남쪽과 북쪽 사이에 기온차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사하라사막이나 고비사막처럼 사막여행을 즐길 수 있는 곳이 있다.
인천에서 쾌속선을 타고 세 시간 반 남짓 달리면 도착하는 섬, 대청도가 바로 그곳이다.
‘서해 5도(백령도,대청도,소청도연평도-이상 인천광역시 옹진군/우도-강화군, 1973년 북한이 5개의 섬의 주변수역을 북한 연해라고 주장하면서 사용되기 시작한 용어)’ 가운데 하나인 대청도는 그동안 백령도의 유명세에 가려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못했던 섬이다.
크기 또한 백령도의 3분의 1밖에 안 되는 작은 섬이지만 인간의 손때가 덜 묻은 곳이어서 태고적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대청도의 수려한 경관 가운데 뭐니 뭐니 해도 최고의 자랑은 역시 마치 사막을 연상케 하는 옥죽동의 해안사구이다.
쾌속선이 드나드는 선진포구에서 오른쪽의 해안을 따라 놓인 고갯길을 넘자마자 곧바로 오른편으로 거대한 모래더미가 산 전체를 뒤덮고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한국의 사하라’라고 불릴 만큼 사막을 방불케 하는 모래언덕이 산 전체를 휘감으며 드넓게 펼쳐져 있어 입을 다물지 못할 지경이다. 아직까지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아 원시성 그대로가 잘 보존되어 있는 옥죽동 해안사구는 최근 세상에 알려지면서 찾는 이가 조금씩 늘고 있다.
옥죽동 마을 뒤편으로 멀리 산등성이 허리를 따라 하얀 모래언덕을 이룬 해안사구는 가로 1㎞, 세로 500m에 달하는 상당히 넓은 면적을 차지한다.
옥죽동 해안사구는 해변의 모래가 매일같이 바닷바람에 산기슭까지 실려 날아와 쌓여 형성된 모래언덕으로 국내유일의 모래산이다. 드넓게 펼쳐진 모래더미를 걷노라면 마치 작은 사막에라도 와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모래 한 줌을 손에 움켜쥐면 어느새 밀가루처럼 고운 입자의 모래가 손가락 사이로 소리도 없이 빠져나간다. 이렇게 고운 모래들이 해발 206m의 검은낭큰산의 북쪽 산등성이 약 80m 고도까지 뒤덮여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많은 모래가 황해바다로 난 바람길을 타고 중국에서 날아와 쌓인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는 전혀 터무니없는 소리이다.
이 모래의 고향은 해안사구 바로 앞으로 바라보이는 옥죽포해수욕장과 그 옆 농여해수욕장이다.
물이 빠지는 썰물 때면 드러나는 옥죽포해수욕장과 농여해수욕장의 드넓은 백사장에서 모래들이 강한 바닷바람에 실려 날아와 한 알 두 알 모여서 쌓여 해안사구가 형성된 것이다.
옥죽동 해안사구는 특히 바람이 강하게 부는 겨울철에 크게 성장한다. 겨울철 시베리아 고기압대에 놓여 탁월풍인 강한 북서풍에 의해 흩날린 모래가 멀리 산등성이까지 날아가 쌓인다.
특히 바람이 심한 날이면 모래가 산을 넘어 여객선이 드나드는 선진포구까지 날아가기도 한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의 남해안, 동해안, 황해안 전역에는 이러한 사구의 발달이 현저하다.
그런데 이곳 옥죽동 해안에 발달한 사구는 그 규모와 형태면에서 볼 때 다른 곳에 발달한 사구에 비해 매우 특이하고 수려한 경관을 지녔기 때문에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옥죽동 해안사구의 층의 두께는 아직 조사된 바가 없어 정확히 알 수 없다. 곳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모래가 많이 쌓인 아랫부분은 약 10m를 넘는 곳도 있다.
대청도 해안은 전체적으로 암석해안을 이루는데, 돌출된 곶과 곶 사이의 만에는 여지없이 모래가 쌓여 천혜의 해수욕장을 이루고 있다.
이와 같이 대청도에 형성된 해안의 모든 모래는 바로 규암의 풍화산물이다.
해안절벽에 드러난 규암층의 단면을 보면 인근 백령도와 소청도에 비해 대청도가 유난히도 습곡작용을 많이 받아 지층이 휘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바다로 떨어진 규암조각들이 해저에서 파랑과 조류에 의해 떠밀리면서 마식되어 모래가 생성되고 있으며, 생성된 모래들은 다시 파도에 이끌려 해안으로 공급되고 있다.
한편 옥죽동 모래언덕과 마주보고 있는 백령도의 사곶해안의 모래가 이곳 옥죽포 해안의 모래와 같은 성분이고, 북쪽에서 남쪽으로 남하하는 해류의 흐름으로 보아 상당부분의 모래들이 해류를 따라 백령도 쪽에서 운반되어 온 것으로 생각된다.
이곳 옥죽동에는 ‘모래 서발은 먹어야 시집을 간다’는 옛말이 있다. 예부터 이곳에 그만큼 모래가 많았음을 일컫는 말일 것이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마을 뒤에서 산꼭대기까지 전체가 모래더미로 덮여 있었다. 겨울철 모래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이면 눈을 뜨고 다니기가 어려울 만큼 모래가 넘쳐났다”고 이곳 옥죽포 토박이 장덕찬 씨는 말한다. 그런데 이런 옥죽동 해안사구가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다.
사구에 인접한 대청 1, 3리 주민들은 그동안 날아드는 모래로 인하여 빨래와 식사 등 생활에 큰 불편을 겪어왔다.
옹진군은 모래로 인한 주민들의 이러한 피해를 막기 위하여 1980년대 후반부터 2000년까지 10여 년간 소나무 2,000여 그루를 해안가에 심어왔는데, 그 효과가 최근 나타나고 있다.
10년 전부터 옹진군이 추진해온 사방(砂防) 조림(造林)사업으로 해안에서의 모래유입이 거의 차단되면서 사구의 모래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현재 사구에는 예전처럼 더 이상의 모래가 풍부하게 공급되지 않고 있으며 그 모양도 차츰 바뀌고 있다. 바닷가에 촘촘히 심어놓은 소나무가 차단막 역할을 하면서 사구에 모래가 공급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곳 주민들의 말로는 10여 년 사이에 사구의 크기가 거의 반으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바닷가 모래언덕으로 천혜의 자연경관을 뽐내던 대청도 옥죽동 해안사구도 이제 볼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동백나무섬 대청도
엄동설한에도 피는 꽃은 겨울 꽃의 백미인 동백이다. 하얀 눈을 맞은 채 피어 있는 동백꽃을 보고 있노라면 냉혹한 환경에서도 꿋꿋한 생명력을 이어가는 자연의 섭리 앞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동백나무는 차나무과의 따뜻한 난대성 수목으로 추위에 약하기 때문에 가장 추운 1월의 평균기온 0℃이상에서 자라는 특성이 있다. 그래서 동백나무는 우리나라의 따뜻한 남쪽 해안과 섬일 대에서 주로 자란다.
그러나 해양성 기후를 반영한 따뜻한 기후인 동해의 경우에는 울릉도, 황해의 경우에는 대청도 부근의 중위도에서도 자라고 있다.
그러나 울릉도와 대청도 이북에서는 춥기 때문에 더 이상 자라지 못한다. 따라서 대청도와 울릉도는 동백나무가 자연적으로 자랄 수 있는 자생 북한계로서 식물 분포학상 가치가 높다. 이런 이유로 특히, 대청도에 자라고 있는 동백나무는 천연기념물 제66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대청도 사탄해수욕장에서 내동으로 넘어가는 고개 정상부 못 미쳐 오른편으로 동백나무 자생지를 알리는 푯말이 나타난다. 이곳에서 계단을 따라 약 5분가량을 내려가면 산비탈 암벽에 기대어 뿌리를 내린 동백나무 60여 그루가 보인다.
1930년대에는 지름 20cm 크기의 동백나무 150여 그루가 커다란 군락을 이루고 있었으나 불법채취로 마구 뽑혀 나가고 지금은 모진 세월의 풍랑을 이겨낸 60여 그루만이 남아 있다.
대청도의 동생인 소청도에는 대청도보다 더 많은 수의 동백나무가 예동리 뒷산자락에 자라고 있다. 반면 더 북쪽에 위치한 백령도에도 동백나무가 자라고 있어 북한계선이 점차 북상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백령도에서는 수십 년째 남쪽에 위치한 화동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 동백나무를 찾아볼 수 없어 백령도에서도 남쪽과 북쪽 사이에 기온차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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