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관문 '팔미도
인천의관광/인천의섬
2008-05-29 10:36:05
변화의 바람 인천 관문 '팔미도'
역사의 소용돌이 품고 새시대 비춘다
김도현
■ 변화의 바람 인천 관문 '팔미도'
근·현대사에서 인천이 한반도의 관문이었다면, 그 인천의 관문은 팔미도다. 국내 최초의 등대가 설치돼 일제의 대한제국 침략사를 고스란히 지켜보고, 한국전쟁의 전세를 단번에 뒤바꿔 놓은 인천상륙작전의 신호탄이 쏘아 올려진 곳도 바로 팔미도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군부대가 주둔하면서 일반인들의 접근이 차단돼 분단의 역사를 실감할 수 있는 장소로, 관문이라는 운명을 타고 난 팔미도는 그렇게 시대의 흐름을 온전히 반영하고 있다.
그런 팔미도가 또다시 변신을 준비하고 있다. 근·현대 역사를 보존한 채 21세기 새로운 트렌드를 반영, 해양문화공간으로 탈바꿈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편집자주>
팔미도는 인천항에서 남쪽으로 13.5㎞ 떨어져 있다.
사주(沙洲:해안 근처에 모래와 자갈로 이뤄진 퇴적지형)에 의해 연결된 두 개의 섬이 마치 여덟 팔(八)자처럼 뻗어내린 꼬리와 같아 팔미도(八尾島)라는 이름을 얻었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팔미도는 고산자 김정호의 '청구도'와 '대동여지도'에 그 존재를 드러내면서 격동의 근·현대사 한가운데 서게 된다.
인천을 기점으로 대한제국 침탈을 모색하던 일제는 1901년 대한제국에 등대 건설을 강권, 1903년 6월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가 팔미도에 들어선다. 물론 일본 선박을 안전하게 운항하기 위해서였다.
높이 7.9, 지름 2의 원통형 석유등대였는데, 일본인이 설계하고 대한제국이 자금과 인력을 부담했다. 우리 스스로 일제의 침탈을 도와준 아픈 역사의 상징물인 셈이다.
팔미도의 운명은 그러나 50년 뒤에 정반대로 뒤바뀐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9월, 연합군은 전세를 역전시키기 위한 묘안으로 인천상륙작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수간만의 차가 큰 인천 앞바다에서 261척의 함정과 7만5천명의 병력이 상륙작전을 펼치는 것은 도박에 가까웠다. 작전의 성패를 쥐고 있던 것은 다름아닌 팔미도 등대.
상륙작전을 앞두고 영흥도를 중심으로 첩보활동을 하던 캘로(KLO)부대에 등대의 불을 밝히라는 임무가 떨어졌다.
'9월 14일 저녁 7시, 고성능 무전기에 "15일 0시에 팔미도 등대에 불을 밝혀라"라는 맥아더 사령관의 암호명령이 들어왔다. 저녁 8시경 특공대 6인조는 팔미도를 향해 출발했다. 그리고 15일 0시 12분 등대에 불이 켜지고 성조기가 게양됐다. 인천항 외항에서 대기 중이던 연합군 함대에 발진명령이 떨어졌다. <팔미도등대 해양문화공간 조성 현상공모 당선작의 '팔미도등대 활약상 디오라마' 내용 중 일부>역사의 소용돌이를 맴돌던 팔미도가 이제 관광과 문화가 숨쉬는 자연 휴식공간으로 변신을 준비하고 있다.
팔미도 소유주인 인천지방해양항만청은 올해부터 향후 5~6년에 걸쳐 팔미도를 해양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킨다는 계획이다.
현상공모를 통해 등대를 비롯한 여덟 가지 테마를 배경으로 펼쳐진 아름다움을 의미하는 '팔미(八美)'와 신비함을 뜻하는 '원더랜드(WONDER-LAND)'를 결합한 '팔미(八美) 원더랜드(WONDER-LAND)'로 개발방향을 잡았다.
그 첫 사업으로 오는 9월까지 '팔미도등대 홍보관 및 야외 문화공간' 조성사업을 완료할 예정이다.
지상 4층 규모인 등대 홍보관에는 디오라마 영상관이 설치돼 인천상륙작전 당시 팔미도 등대를 중심으로 한 역사적 상황을 방문객들에게 생생하게 들려주게 된다. 항로표지 역사관도 마련돼 등대를 중심으로 하는 해양문화와 항로표지 발달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등대 퍼즐 맞추기와 틀린그림찾기 게임 등 체험코너도 개설한다.
▲ 팔미도 등대
팔미도에서 등탑을 제외하고는 가장 높은 장소인 홍보관 4층은 바다를 조망하고 기념사진을 남길 수 있는 전망대로 활용된다. 야외 문화공간은 근·현대사에서 한복판에 섰던 팔미도 등대를 중심으로 한 역사적 사실을 감상하고 체험하는 공간으로 조성된다. 관광객을 위한 진입도로와 야외 화장실 등의 설치 공사도 연말까지 마무리지을 계획이다.
팔미도에 주둔 중인 군부대의 폐쇄회로TV 및 보안펜스 설치 문제도 연말까지는 타결될 것으로 보여 군부대를 제외한 팔미도 모든 지역이 내년 1월에는 완전개방될 전망이다.
팔미도 개방이 가시화하면서 유람선 업계도 특수를 기대하고 팔미도를 경유하는 크루즈상품을 선보이는 등 벌써부터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팔미도는 그동안 민간인 출입이 제한돼 칡과 해송, 담쟁이넝쿨, 패랭이꽃 등 수려한 경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낙조와 어우러지는 팔미도의 자연경관은 그야말로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정상에 서면 인천항을 오가는 선박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팔미도. 침략과 금단의 역사를 뒤로 하고 새로운 변신을 마친 팔미도, 그 섬에 빨리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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