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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역사

인천의 외국영사관

by 형과니 2023. 4. 27.

인천의 외국영사관

인천의관광/인천의 옛모습

2008-05-23 12:56:50

 

국제도시로의 변화(3)

- 인천의 외국영사관 -

 

손장원 재능대학 실내건축과 교수/인천시 문화재위원

 

 영사관은 영사가 외교관계를 수립한 다른 나라에 주재하면서 업무를 처리하는 기관이다. 주요 업무는 주재국과의 친선관계유지, 자국민의 보호, 비자와 증명서 발행, 정보수집 등이다. 현재 인천에는 외국 영사관이 전혀 없지만, 개항기에는 사정이 사뭇 달랐다. 개항과 더불어 우리나라에 진출하려는 여러 나라는 인천에 속속 자국의 영사관을 세웠다. 영사관은 단순히 인천에 거주하는 자국민의 보호를 위한 건축물 외에도 경찰서, 우체국, 전보소, 형무소 등을 설치해 우리나라 진출의 교두보로 활용했다. 인천에 영사관을 세운 국가는 일본, 중국, 영국, 러시아 등 4개 나라였으며, 독일과 미국도 건립계획을 갖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4개의 건물은 현재 모두 사라졌으며, 건물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 영국과 중국영사관은 단층으로, 일본과 러시아영사관은 2층이었다.

 

   # 일본영사관

 

 

개항 초기의 일본영사관. 서구의 식민지 건물을 그대로 모방해 지은 르네상스양식의 목조 2층건물.

 

 

 

일본이 인천에 영사관을 건축하던 당시 일본의 건축계는 관청건축을 담당했던 공부성(工部省, 1874~1885)시대 후반기다. 공부성에 일하던 서양건축가들의 지도로 서양건축을 이해하고 있었으나, 당시 서양에서 주로 사용되던 시멘트, 벽돌 등의 공급이 원활하지 못해 주로 목조건축이 유행하던 시기다.

 

일본은 인천에 가장 먼저 영사관을 세웠다. 일본 인천영사관은 18841031일에 준공된 르네상스 양식에 가까운 일본 의양풍 목조건물이다. 건물 전면에 베란다를 두었던 식민지 건축양식의 건물로 정면의 입면은 건물 중앙의 베이(bay)를 중심으로 좌우에 각각 2개의 베이를 둔 좌우대칭으로 총 5개의 베이로 구성되어 있다. 1층은 출입구 앞에 캐노피를 두어 전면으로 돌출시키고 좌우에 각각 2개의 베이를 두었다. 2층의 중앙 베이는 좌우측의 베이에 비해 폭이 약간 작다. 외벽은 목조 비늘판벽으로 마감했으며, 지붕은 모임지붕 위에 일본식 기와를 올렸다. 건물 좌우와 후면의 외부 창문에는 갤러리 형식의 덧문을 달려 있었다.

 

건물 전면에 베란다를 두는 식민지양식의 건축물은 서구제국이 동남아시아를 식민지화 하면서 더운 기후에 적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우리나라의 기후에 적합한 양식은 아니었다. 그러나 당시 일본은 서구의 건축양식을 단순히 수용하는 수준으로 서양식 건축양식을 그대로 따랐다. 이 때문에 인천영사관에 비해 나중에 세워진 부산영사관의 건물 전면은 인천영사관과 거의 유사하다.

 

개항초기의 사진에는 건축물 전면에 베란다가 있지만, 일제강점기에 촬영된 사진에는 베란다가 사라진 것으로 보아 인천부청으로 사용하면서 증축했던 것으로 보인다. 19328월 인천부청을 신축하기 위해 철거되었으며, 건축자재는 매각되어 다른 건물을 세우는 데 사용됐다.

 

 # 중국영사관

 

 

중국영사관(상부의 깃발이 있는 건물이 영사관 건물)

 

중구 선린동 29-8번지 언덕 위에 세워졌던 중()국 인천영사관은 건축적 사료가 거의 없어 많은 것이 베일에 가려져 있다. 건물의 형태 등을 추정할 수 있는 자료는 전해지는 단지 몇의 사진이 전부다. 건물의 구조체는 벽돌조였던 것으로 보이며, 외벽은 회를 발라 흰색으로 마감했다. 지붕은 박공지붕을 틀고 그 위에 주황색의 중국식 기와를 올려 마감했다. 중국의 전통적인 평면구성인 사합원 형식으로 구성했으며, 경계를 위한 별도의 울타리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 영국영사관

 

 영국 인천영사관은 최근 건립 당시의 설계도서가 입수되어 다른 영사관 건물보다 많은 자료가 있다. 설계도는 총 11종이 있으며, 7종은 18849월에 설계된 것이다. 나머지 4가지 가운데 1종은 1884년에 세워진 건축물에 대한 평면도로 보이며, 다른 3종은 건물을 신축하기 위해 18961월 설계된 것으로 평면상 차이가 크지 않은 원안을 변경한 도면이다. 1884년에 작성된 도면의 설계자가 표기되어 있으나, 불분명하고 1896년에 설계된 도면은 Boyce가 교정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영국인천영사관(1884)

 (출처 : 인천광역시 도시재생1)

 

1894년의 작성된 건축물 배치도에는 부영사관 건물, 경찰서 건물, 운동장으로 추정되는 옥외공간이 있다. 건물의 전면에는 식민지양식의 베란다가 있었으며, 외부에서의 진입은 우측 단부에 설치된 7단의 계단을 통하도록 했다. 계단과 연결된 주출입구의 좌측에는 욕실이 달린 2개의 침실과 식당이 있었고, 우측에는 영사실과 식당이 있었다. 각 실로의 출입은 주출입구와 연결된 복도를 통해 이루어졌고, 영사의 전용출입구도 있었다.

 

1896년에 작성된 배치도에는 영사관 건물, 관리인 숙사로 추정되는 건물 등이 있다. 요코세(橫瀨文彦)가 인천잡시에서 영국영사관을 묘사한 산허리 모퉁이에 공관의 기가 나부끼고(岬角翩 公署旅) 붉은 난간 흰 벽이 높다랗구나(朱欄粉壁望巍巍)’에서 건물의 외벽은 흰색이었고, 붉은색의 난간은 베란다를 지지하는 외부 기둥의 색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난방은 벽난로가 이용되었고, 5개의 벽난로가 있었으며, 배연을 위해 3개의 굴뚝이 설치되어 있었다.

 

 1896년에 작성된 배치도에 그 형태나 설치목적은 알 수 없지만 바닷가에 면한 부분에 'Edgar Monument'라는 표기가 있어 관련된 기념조형물이 있었거나, 설치계획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1897년에 세워진 벽돌조 건물은 전면에 베란다가 있는 식민지 양식으로 내부공간은 영사실, 침실, 객실, 식당, 창고 등으로 구성됐으며, 중정도 있었다.

 

건물의 규모는 대략 540정도였다. 건물로의 출입을 위해 주출입구와 부출입구 두 개를 두었으며, 건물 전면의 출입구가 주출입구다. 영사실과 직접 연결된 부출입구는 영사의 전용출입구다. 2중으로 구성된 주출입구 좌측에는 2개의 침실을 배치했고, 우측에서는 객실과 식당이 있었다. 평면구성은 크게 거주공간과 업무공간으로 구분해 건물좌측은 거주공간, 우측은 업무공간이었다.

 

건물 좌측에는 전용 목욕탕이 설치된 침실 2개가 있었고 공용 욕실을 별도로 두어 이 건물에는 3개의 목욕탕이 있었다. 우측의 업무공간에는 영사실, 영사보조원실, 기록실 등이 있었고, 북쪽에는 영사관에서 일하는 용원들의 생활공간을 두었다. 신축된 건물의 난방도 먼저 세워졌던 건물과 마찬가지로 벽난로가 이용됐다. 8개의 벽난로가 설치됐으며, 5개의 굴뚝이 있었다. 용원들의 생활공간에는 벽난로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 러시아 영사관

 

러시아 인천영사관

 (출처 : 인천광역시 화도진도서관)

 

1903년경 중구 선린동 56번지에 세워진 건물로 러시아인 기사 사바찐(Afanasij Ivanobich Seredin Sabatin, 1860~?)이 설계한 것이다. 벽돌조로 2층 건물로 연면적은 약 426정도였다. 건물 전면과 좌측은 건물 중앙의 일부를 돌출시키고 지붕부에는 페디먼트(pediment)로 장식했다. 주출입구 전면에는 캐노피를 두기 위해 약간 더 튀어 나오도록 했다. 지붕은 일본식기와를 올렸으며, 상부는 크레스팅(cresting)으로 장식했다.

 

건물 일부를 돌출시키고 지붕부를 페디먼트로 장식하는 수법은 사바찐이 설계한 러시아 서울영사관, 제물포구락부, 홈링거양행 인천지점에서도 발견된다. 또한 출입구 앞에 설치된 캐노피 상부에 패러핏을 두는 것은 러시아 서울영사관에서도 유사한다.

 

이러한 장식들은 그가 선호하던 수법으로 제정러시아 르네상스풍의 양식이다. 난방에 사용되었던 굴뚝은 사진자료를 통해 2개가 있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으며, 다른 건물과 마찬가지로 벽난로가 설치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건물은 1974년 상가를 세우기 위해 철거했으며, 현재 빈터로 남아 있다.

 

 인천에 세워졌던 많은 근대건축물들이 전쟁의 포화로 소실되기도 했지만, 대불호텔, 조선상업은행인천지점, 인천곡물협회, 러시아영사관, 홈링거양행 인천지점 등은 근대건축물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던 시기에 철거된 것으로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자료제공: 인천시 역사자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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